순창보물여행(43) 흙 내음 배부른 양, 방긋 웃는 ‘옥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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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보물여행(43) 흙 내음 배부른 양, 방긋 웃는 ‘옥출산’
  • 전예라 해설사
  • 승인 2018.07.12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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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떠나는 ‘순창보물여행’

 

▲풍산면 대가리와 옥과면의 경계를 이루는 옥출산은 옥이 많이 났다하여 이름붙었다. 바람 솔솔 부는 정자 모습.

온 산과 들녘에서 초록빛 연가를 부르는 7월이다. 한동안 내린 장맛비에 뽀송한 냄새가 진동하는 허공, 간간히 스치는 바람 사이로 높다랗게 떠가는 새털구름이 향가마을을 향해 손짓했다. 아이스 잔에 시원한 헤이즐넛 향을 한 모금씩 챙겼다. 도로가에 차를 세우고 소롯길을 따라 옥출산을 올랐다.

 

걸어가면 길이 된다는 표어를 앞세우고 길이 난 길을 걸었다. 연둣빛 바람이 발길에 채였다. 솔향 머문 숲이 마냥 싱그러웠다. 숨소리가 땀방울 사이로 새어나왔다. 흙 내음에 배부른 양 방긋 웃는 들꽃이 앙증스러웠다. 나태주의 <풀꽃>이란 시가 날숨에 섞여 저절로 새어나왔다.
기다란 치마폭을 펼치고 있는 형태라나?
옥출산은 풍산면 대가리와 옥과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이름 그대로 특별히 옥이 많이 났단다. 영원불변함이 특징인 옥은 오히려 금보다 귀하게 취급했단다. 하얀 색을 띠면 연옥(軟玉), 파란색을 띠면 벽옥(碧玉), 노란색을 띠면 황옥(黃玉), 초록색을 띠면 취옥(翠玉), 옥출산의 옥은 궁중에 진상되었고 일본과 중국에 수출되었다. 이 옥을 보호하기 위해 쌓았다는 옥출산성은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다.
삼한시대에 군량미를 저장해 두기 위해 쌓았다는 설이 있는가 하면, 혹자는 임진왜란 당시 적을 막기 위해 쌓았다는 말도 있다. 삼국시대에 처음 쌓은 토성으로 추정되지만 조선 초기부터는 그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보면 이 무렵을 전후해 산성으로서의 기능이 상실되지 않았을까 추측된다는 말이 있기도 한다.
정유재란 당시 남원성을 함락한 일본군이 순창을 포위했을 때의 일이다. 이 성을 끝까지 지켰던 사람들, 끝까지 저항하다 고립무원의 상태에 치닫자 결국 모두가 전사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한편 좋은 요새로 이름 있는 이 옥출산성의 존속에 대한 고민은 한다. 복구하기엔 벅차고 그냥 두기엔 아쉬움이 크단다. 계륵(鷄肋)이라고 해야 할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제법 경사진 산을 올랐다. 혹여나 그 때 흘린 옥 한 덩이라도 나오지 않을까 큰 눈을 부릅뜨고 촉촉해진 살갗으로 삐져나오는 숨소리를 눌렀다.
마침 지나가던 솔바람이 이마의 땀방울을 씻어주었다. 푸른 웃옷을 벗어던진 채 가로 누운 나무 한 그루가 우리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 쭉쭉 뻗어가는 동료들을 바라보던 이 나무는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기꺼이 우리의 안식처가 되어 주는 배려를 하는 그의 마음을 애써 헤아렸다. 자연은 더 없는 스승이 아니겠냐는 웅얼거림을 나무기둥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에 묻어 놓고 정상을 향해 몸을 일으켰다. 한참을 쉬고 나니 길이 더 경사져 보였다.
정상에 오르니 시원스럽게 조망터가 펼쳐졌다. 옥출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적성 뜨락, 고요로운 평원에 연이은 탄복을 했다. 저만치 북쪽으로는 회문산이 보였다. 사방에서 달려드는 평화로움이 순창 일대를 보듬고 있었다. 드넓게 펼쳐진 풍산의 옥토와 옆구리에 끼고 흐르는 섬진강이 마치 그림 같았다. 옥출산을 감고 휘돌아 흐르는 섬진강 줄기와 강천산을 거쳐 흐르는 강천 줄기의 은은한 흐름, 사천과 경천의 만남, 물빛이 주르륵 쏟아질 듯한 공명의 추임새를 넣는 거대한 정원 앞에서 시구가 저절로 읊조려졌다.

옥출산 정상에서    / 전예라 

눈 비비며 바라본
탁 트인 뜨락  치맛자락

살포시 돌리는 새악시처럼
수줍듯 흐르는 섬진강 물줄기 옆구리에 끼고
가만히 품은 시간 너머로
솔바람 잦아든다 

술렁임마저 멈춘 듯
두꺼비 전설 꿈틀대는 물길 위로
잔잔한 저 대지의 풍요
순창의 오늘을 빗질하고 있다

솟아오른 침묵
그 심오함에 차라리
털퍼덕 주저앉아 버린 무아지경

후미진 골짜기 돌고 돌아
깊은 사연 보듬은 채
동으로 동으로 흐르는
저 절규 같은 사랑

솔내음만 자욱한
이 정상에 우뚝 서 있다. 

 

젖은 감성을 발자국에 찍으며 전망대를 내려왔다. 또 다시 호젓한 오솔길이 우리를 안내했다. 무명의 묘지를 지났다. 키 작은 나무 너머로 펼쳐지는 아까 본 그 뜨락, 황홀한 모습을 담아내는 카메라 터지는 소리가 허공을 울렸다. 아쉬움을 카메라에 담아 내려오는 길, 제법 가팔랐다. 강태공이 꽤나 다녀갔겠다 싶은 동편으로 보이는 향가마을, 병풍의 그림 같은 산수가 한 눈에 들어왔다. 퍼즐을 맞추듯 빼곡하게 차 있는 소나무, 툭 떨어져 내리면 차라리 포근할 것만 같았다.
‘황소가 배가 불러 누워있는 형상이 금산이라나.’
남겨진 여운을 툭툭 뱉으며 솔잎 쌓인 내리막길을 미끄러지듯 걸었다. 기다란 치마폭을 펼치고 있는 형태, 즉 옥천골을 내려다보는 여인이 양 다리를 편 채 베를 짜는 형상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혼자서 구시렁거리는 사이 아까 세워놓은 차를 향해 걷고 있었다. 옥출산을 가로질러 뚫린 터널, 그 향가 터널 안으로 들어섰다. 에어컨을 켠 듯 시원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 사람들이 수탈을 위해 순창과 담양을 잇는 철길을 내다가 해방이 되면서 중단된 철로다.
세월의 주름이 깊이 팬 애환 서린 현장, 터널 안의 벽화들, 그날의 흔적들이 발자국의 보폭마다 지워지지 않는 어떤 금을 긋고 있었다. 열꽃 위로 스치던 바람 한 점 짜릿하게 스쳐간다. 그날의 무수한 상처들이 상처를 부축하며 아득히 걸어가는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전예라 문화관광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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