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에서서(34)/ 만하 타오 보니 타 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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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에서서(34)/ 만하 타오 보니 타 만하
  • 선산곡
  • 승인 2018.07.25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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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아침 기온이 초여름답지 않게 쌀쌀했다. 딸아이가 사는 마을에서 지하철 몇 정거장, 공원이름이 <부뜨 쇼몽>이라했다. 공원으로 가는 길 공터에 장이 열려 있었다. 영화배우 못지않게 아름다운 아가씨가 소시지, 순대를 팔고,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가 꽃을 팔기도 했다. 웬만한 것은 다 있는 아침시장에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다.
“따따 따 따 따 따 따따 땃 따 땃다 따아-.”
우주복처럼 한통으로 된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큰 소리로 따따따를 외치며 우리 앞을 스쳐 지나갔다. 물건을 배달하고 돌아가는 듯 활기 찬 걸음이었다. 시장 밖 도로에 주차된 특장차 문을 닫다가 문득 우리를 보더니 싱긋 미소를 띄었다.
“봉쥬르.”
이어 별 스스럼없이 그가 우리 쪽에 말을 건넨다. 그들 보통의 인사법인 것은 알고 있지만 적응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겨우 미소를 보내는 수밖에 없다. 간단한 인사법이라고 굳이 적어준 딸아이의 메모를 자세히 쳐다본 적도 없었다. 어차피 한 마디 한다 해도 내 서툰 불어발음을 누가 알아듣겠느냐는 생각에 거들떠보지도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꼬레.”
어디서 오신 분들이냐고 물었다는 것을 짐작한 것은 딸이 대답한 ‘꼬레’라는 말을 듣고서였다.
“오, 꼬레!”
그러고 나서 온갖 손짓몸짓을 다하며 한참 동안 무슨 말인가를 그는 계속하고 있었다. 나중에 들으니 한국이 동계 올림픽을 치룬 좋은 나라로 알고 있으며 자기는 한국 옆에 있는 필리핀은 가봤노라고 했단다. 한국 옆에 있는 나라 필리핀? 웃어넘길 수밖에 없었지만 그들에게 동양권은 모두 이웃이었을 것이다. 사진을 찍는 바람에 늘 걸음이 뒤처진 내가 그 남자에게 되지 않은 말 한마디를 건넨 것은 스스로 생각해도 뜻밖이었다.
“만하 타오 보니 타 만하 Manha tao boni ta Manha?”
남자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말은 통하지 않았다. 그 동안 꿀 먹은 벙어리처럼 현지인들과 대화가 거의 없었던 나로서는 괜스레 한마디 했네, 속으로 머쓱해진 기분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 그의 눈과 입이 크게 벌어진 것을 보니 내 말 뜻을 알아차렸다는 증거가 되었다. 오, 오! 뒤에 무슨 말인가 더 하는 것도 같은데 역시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아니었다.
남자가 조금 전 따따따 하며 불렀던 음률은 영화 <카니발의 아침>의 주제가 서주(序奏)였다. 그 노래의 첫 음절의 가사를 나는 서툴게 지껄여 봤던 것이다. 이 노래를 좋아하지만 가사는 그 ‘만하 타오 보니 타 만하’ 밖에 나는 모른다. 어느 나라 말인지는 물론, 뜻조차 알고 있지 않다. 감독이 프랑스 거장 마르셀 카뮈라는 것과, 작곡자는 브라질의 루이스 본파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감독은 프랑스인이지만 작곡자는 브라질, 영화의 무대 또한 브라질이니 모든 것을 정리하기는 어렵다. 내가 공교롭게도 그의 ‘따따따“가 <카니발의 아침> 곧 <흑인 올훼>의 서주인 것을 알아차린 것이었다.
이 40대의 프랑스 남자는 한국에서 온 동양남자가 자기가 부르는 노래의 곡을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한 경의를 충분히 표현해 주고 있었다. 멀어져 가는 나에게 함박웃음을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는 ‘올훼’처럼 흑인이 아닌 훤칠한 키의 백인이었다.
말이 아닌 음악으로 얻었던 공감대는 신나는 일이었다. 날씨는 쌀쌀했고 하늘은 흐려있었지만 쇼몽 공원을 걷는 내내 나는 기분이 좋아져 있었다. 그 짧은 에피소드를 가족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왠지 감추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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