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속시한줄(15) 님의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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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속시한줄(15) 님의침묵
  • 조경훈 시인
  • 승인 2018.08.16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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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그림 : 조경훈 시인ㆍ한국화가
 풍산 안곡 출신

 

한용운(1879~1944)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입맞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源泉)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만해 한용운은 수난의 역사 속에서 한 시대를 밝힌 빛이셨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로 활동하셨고, 새롭게 불교 유신을 제창한 수행자였으며, 시의 형식을 혁신할 만큼 시인의 의식을 새롭게 적립시킨 원천이 되시기도 했다.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혁명가로서 그 울분과 통한을 시로 써서 1926년 세상에 내놓으니 그것이 ‘님의 침묵’이다. 시 속에 있는 만해의 님은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전부였다. 또 중생과 민중이 그 주인이었고, 잃어버린 나라, 빼앗긴 주권이 곧 님이었다. 그때도 아니 오늘도 항상 깨달음 속에서 님을 노래했다. 그리운 나라, 님을 찾아 헤매며 유심(惟心)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자 한 것은 불교 특유의 상상력이 있어 가능했기에 이별의 경계도 무너뜨렸다. 그래서 이별이 기쁨이 되고 아름다움도 되고 창조가 되기도 했다.
“아아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였습니다.” 이것은 현실 속 보다는 마음속에 존재하고 있는 님을 더 가치 있게 사유하는 만해의 심학사상과 관계가 있다. 한마디로 조국을 상실한 암흑기에 시인으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다했다 할 것이다. 그 후 사람들은 만해 앞에 만해 없고 만해 뒤에 만해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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