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보물여행(45) 밤낮을 지킨 ‘순창객사’와 아름드리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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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보물여행(45) 밤낮을 지킨 ‘순창객사’와 아름드리 느티나무
  • 전예라 해설사
  • 승인 2018.08.16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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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떠나는 ‘순창보물여행’

 

▲조선 22대 임금 영조 35년(1759년)에 세워진 순창객사는 고을의 모든 민원을 담당했던 공공기관이었다.

군청 옆 순창초등학교에 가보셨는지요. 1908년 8월 23일 개교일이니 110여년을 훌쩍 넘겼네요.
와! 교문을 들어서면 떡하니 버티고 있는 객사 건물과 아름드리 느티나무는 도대체 몇 백 년 동안이나 순창의 낮과 밤을 지내며 지켜보았을까요?
순창객사는 조선 22대 임금 영조 35년(1759년)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객사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고을에서 일어나는 모든 민원 등을 담당했던 공공기관, 외국 사신이나 중앙에서 내려온 관원을 묵게 하려고 각 고을에 설치했는데 객사에 머물면서 왕의 교지를 전했답니다. 이 객사를 8ㆍ15 광복 이후 1970년대까지는 순창초 교무실로 사용하다가 1990년대 초 현재 모습으로 복원했고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48호로 등록되었지요.
왼쪽 건물을 정당, 오른쪽 건물을 동대청이라고 합니다. 물론 서대청도 있었겠지요? 서대청을 비롯, 중문과 외문 등은 대부분 일제강점기 때 불타 없어졌답니다.
정당 안에 임금을 상징하는 ‘전하만만세(殿下萬萬歲)’라 쓴 궐패(闕牌)를 봉안하여 초하루와 보름 그리고 나라에 일이 있을 때 궁궐을 향해 절을 하였다고 합니다.
망궐례는 지방에 근무하는 관리들이 왕을 직접 배알할 수 없었기 때문에 왕이 있는 북쪽을 향해 절을 하며 충성심을 보이는 예식이랍니다. 국상을 당했을 때나 새로 부임한 고을 수령은 반드시 이곳을 찾아 예를 올렸다고 합니다.
순창객사는 순창의 역사와 군정사를 상징하는 대표적 목조 문화재로, 남아있는 유일한 순창관아 건물이지요. 오른쪽 동대청 건물에 걸린 ‘옥천지관’이란 현판 자리에 2014년 이전까지는 ‘순화아문(淳化衙門)’이 걸려 있었죠. 순창관아 출입문이었던 수옥루에 걸려있던 현판이었는데 8ㆍ15 광복 후 이 현판을 찾을 수가 없답니다. 순창객사를 제대로 의미하는 현판을 걸어야 한다는 여론을 택한 것이 지금 걸려있는 ‘옥천지관’ 현판인데요. 향토사학자들이 뜻을 모은 결과 마한시대 순창의 지명으로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옥천(玉川)’을 사용한 '옥천지관(玉川之館)'으로 정하고, 2014년 12월 30일에 새로 현판을 걸었답니다.
옥천은 순창의 옛 지명으로 물이 맑은 고을이라는 뜻이죠. 이 옥천고을이 영원히 번창하라는 의미가 바로 순창(淳昌)이랍니다.

 

 

▲해방을 기념하는 바위.


병설 유치원 쪽으로 가다보면 순창의병항일 의적비가 있고 뒷면에는 글씨가 빼곡히 적혀 있습니다. 큼지막한 도끼를 메고 상소하였던 면암 최익현의 선비정신과 항일 의병투쟁을 벌인 최익현과 13 의사의 의로움이 있는 곳이 순창객사이기 때문입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최익현은 분연히 일어나 을사5적의 처단을 주장하는 ‘청토오적소’‘(請討五賊疏)와 ’창의토적소‘(倡義討賊疏)를 올립니다. 전국 방방곡곡에 포고문을 발표하여 항일투쟁을 호소합니다. 1906년 6월 4일 정읍 태인서원에서 호남 최초의 의병 투쟁을 결의하고 순창으로 향하지요. 복흥 구암사에서 유숙하며 세력을 넓히고, 11일 순창에 도착하여 약 800여 의병을 모으게 되지요. 곡성에서 투쟁을 하고 남원 진위대가 온다는 소식에 순창으로 재집결하게 되지요. 구림면 화암리에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가 동족인 진위대(대한제국군)와 싸울 수 없다고 하여 스스로 군대를 해산하고 투항합니다. 결국 끝까지 함께하고자 했던 13인의 의사와 함께 일제에 의해 일본 대마도로 이송되게 되지요. 

 

“나도 성공하지 못할 것을 안다. 그러나 국가에서 선비를 기른 지 500년, 힘을 내어 적을 토벌하고 국권을 회복함을 의로 삼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면 얼마나 부끄럽겠는가?”

절대 권력도 두려워하지 않던 선비가 성공할 가망이 없다는 말에 이렇게 답하였답니다. 대마도에 가면 최익현 의병장 순국비가 있습니다. 적군의 나라에 순국비가 세워졌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요? 
어떠신가요? 숙연해지지요. 객사 부근에 응향지라는 연못이 있었답니다. 군청 앞마당에서부터 현재 설양수 법무사 사무실, 병설유치원까지 이어져 경천으로 연결된 연못인데요, 상당히 큰 연못으로서 흰 연꽃이 만발했답니다. 달 밝은 밤이면 더욱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객사에는 사신이나 관리들이 머물렀다고 했지요? 그래서인지 연못 주위로 아름다운 정자와 누각이 많았었답니다. 너무너무 아름다운 곳이었는데 산업이 발달하면서 마을에서 함부로 버린 오물이 쌓이고 악취가 나자 1980년 매몰하였다고 합니다. 참 아쉬운 이야기죠? 약 300년 긴 세월 동안 객사 옆에 서서 많은 것을 보아 온 아름드리 느티나무는 어떤 일을 보고 슬퍼하고 어떤 일을 보고 기뻐했을까요? 순창 모습이 긴 세월을 지난 후에도 흐뭇한 모습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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