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패도지/ 사람을 잘못 써 나라를 말아먹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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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패도지/ 사람을 잘못 써 나라를 말아먹으니
  • 정문섭 박사
  • 승인 2011.03.03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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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 한 일, 敗 패할 패, 塗 바를 도, 地 땅 지
정문섭이 풀어 쓴 중국의 고사성어 3

 

중국 정부가 ‘신농촌운동’을 대대적으로 추진하던 2005년 여름 필자는 홍콩 인근에 위치한 한 현장(縣長)의 초청을 받아 ‘한국의 새마을 운동’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한 후 만찬에 참석하게 되었다. 대화의 주제가 ‘홍콩반환 8주년’으로 옮겨가자 한 교수가 물었다. “홍콩의 역사를 아는지? 임칙서(林則徐)를 어떻게 보는가?” 필자는 우선 외교적인 말부터 했다. “중국이 1839년 아편전쟁에 패해 영국에 홍콩을 할양하게 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영국은 세계 인민과 중국인 앞에 나와 사죄해야 한다.” 이어 사견임을 전제로 다시 말을 이었다. “청나라 조정이 임칙서를 광동 광서지역 흠차대신(欽差大臣)으로 보낸 것은 잘못된 것이다. 임칙서가 기개와 아편에 대한 적개심이 있다고 여겨 파견했겠지만 그는 우선 영국의 군사력이 얼마나 우세한지를 파악하는데 소홀했고 만약 지면 어떻게 될지에 대한 판단도 없이 전쟁을 벌인 사람이다.

결국 백성을 도탄에 빠지게 하고 땅을 뺏기고 나라를 ‘종이호랑이’로 전락시켰으니 본인의 잘못이기에 앞서 청나라 조정이 사람을 잘못 뽑은 것이다.”
좌중에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 교수가 결론을 내듯 이렇게 말했다. “일패도지(一敗塗地)!”
사기ㆍ고조본기(史記·高祖本紀)에 나오는 일패도지(一敗塗地)는 보통 전쟁에서 쓰던 성어로, ‘장수를 잘못 써 패해 전사자의 으깨진 간과 뇌가 흙과 범벅이 되어 땅을 도배하다’로 해석된다. 나중에는 여지없이 패하다. 철저히 패하여 돌이킬 수 없다. 더 나아가 사람을 한 번 잘못 쓰면 일이 잘못되어 수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다 는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후세 사람들은 ‘앞으로 그런 인물이 나와서는 안 되며 사람을 쓸 때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한다’는 뜻으로 새겨듣고 있다.
 

진(秦)나라 시황제가 죽고 2세 황제 원년에 벌써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이 진나라에 반항하는 군사를 일으킨데 이어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당시 패현(沛縣)의 현령은 반진(反秦)의 대열에 합류하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겠다고 판단해 명망이 높은 유방(劉邦)을 끌어들이려고 했다. 막상 부하들을 거느리고 성문 앞에 다다른 유방을 본 현령은 자신의 지위가 흔들릴 것이라는 예감이 들어 성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러자 유방이 봉기할 것을 호소하는 편지를 화살로 쏘아 성 안에 보내니 성 안의 다수가 응해 현령을 죽이고 유방을 새 현령으로 추대했다. 그러나 유방은 사양하며 이렇게 말했다. “천하형세가 지극히 소란한 지금 곳곳에서 영웅들이 나서고 있습니다. 이럴 때 훌륭한 인물을 현령으로 뽑아놓지 않는다면 철저히 패하게 돼 앞으로 큰일을 성공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내 능력이 부족해 여러분의 생명을 보호해내지 못하면 그 때 후회해도 소용없습니다.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뽑으시오.”
 

그런데도 소하(蕭河)와 조참(曹參)을 비롯한 성 안의 유지들이 재삼 간청하자 유방은 마지못해 현령을 맡기로 했다. 유방은 이를 토대로 얼마 지나지 않아 수천의 군사를 모아 기병할 수 있게 됐고 뒷날 난세를 평정하고 한(漢)나라의 고조(高祖)가 되는 기반을 마련했다.

글 : 정문섭 박사
     적성 고원 출신
     육군사관학교 31기
     중국농업대 박사
     전) 농식품부 고위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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