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요긴했던 싸리빗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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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요긴했던 싸리빗자루
  • 림양호 편집인
  • 승인 2011.03.03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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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겨울은 유난히도 눈이 많았다. 당시는 군인이라는 신분이어서 그렇게 기억되는 것이겠지만.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겨울을 나기위해 화목(땔나무)을 준비했던 일을 기억한다. 하긴 요즘 내무반 시설은 현대화(?)돼 나무나 석탄을 때는 난로는 없어져 실감이 나지 않겠다. 어쨌든 그 때 겨울은 춥기는 했지만 요즘처럼 대책이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화목과 함께 기억나는 것은 싸리비다. 긴 겨울동안 내리는 눈을 치우는데 싸리비만큼 요긴한 것은 없었다.

그 시절은 가을에 시골 야산 기슭 양지 바른 곳을 걷다보면 넘실대는 연보라빛 꽃을 피우며 군락을 이뤘던 싸리나무가 참 많았다. 키(높이) 2~3미터 정도, 굵기도 한 2~3센티미터까지 자라는 싸리나무는 속이 단단하면서도 탄력이 있고 잘 썩지 않는 나무다. 그래서 소쿠리로, 광주리로, 삼태기를 만들어 유용하게 쓰였다. 개구쟁이 아이들의 눈물을 쏙 빼는 회초리가 되어 훈도했던 기억은 내 어린 시절에도 자리 잡고 있다. 말리지 않아도 불에 잘 타고 화력도 좋아서 땔감으로도 그만이었다, 옛날 가난했던 시절에는 싸리나무 어린 싹을 나물로 해 먹거나 씨를 갈아서 죽을 만들어 먹었다고 하니 이야말로 민초의 삶과 애환이 고스란히 담긴 ‘이웃’같은 식물이다

그 때는 겨울이 다가오면 싸리나무를 잘라 싸리비를 만드는 어르신들의 손놀림이 바빴다. 나무를 말린 뒤 잎을 털어내고 키를 맞춰 끈으로 묶으면 보기도 좋고 요긴한 빗자루가 완성됐었다. 시골 집 마당에 어지러이 널린 낙엽을 쓸 때도, 겨울 새벽 소복하게 쌓인 함박눈을 쓸 때도 싸리비는 안성맞춤이었다. 상상만으로도 정감이 넘치는 기분 좋은 추억이다. 싸리비는 그렇게 제 몸 하나 닳아 없애며 한 철을 보낸 후 종국에는 아궁이에서 한 줌의 재가 됐다. 요즘은 플라스틱 빗자루에 밀리고 중국산 대나무 빗자루에 밀려 찾기 쉽지 않지만 싸리비로 흙 마당을 쓸면 가지런한 결이 생겼다. 싸리비를 든 손에 힘을 주면 줄수록 그 결은 깊고 선명하게 파였다. 비질을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할 수도 없었지만 천천히 부드럽게 해야 낙엽도 흰 눈도 잘 쓸렸다.

세상일이 어수선하다. 구제역이 난무하고 있는 자의 비리가 끊이지 않고 여기저기 충돌과 갈등이 소리가 들린다. 그 지저분한 일들을 싸리비로 싹싹 쓸어내 그 싸리비를 쏘시개 삼아 태워 버리면 좋겠다. 그 시절 싸리비를 만들던 어르신들의 마음이 그랬을까. 어지러운 것들을 쓸어내고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하나 둘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까. 정치하는 사람들이 사욕을 버리고 차분하게 경제를 살려 도시에 나간 자식과 손자들의 삶이 나아지게 하는 날은 언제일까. 위기에 직면한 농촌에 희망의 불씨를 살려주기를 간절하게 바라는 촌로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날은 올까. 그 시절의 싸리비처럼 국민의 고통과 불안을 말끔하게 쓸어 내주는 위정자를 기다리는 것은 욕심인가.
 
오늘 우리는 심각한 정치 불신과 정치인 혐오에 빠져 있다. 우리는 수시로 정치인을 욕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인에 줄 대고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많다. 그것은 정치가 좋다기보다는 현재의 우리 삶이 너무도 고단하고 힘이 들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지금 현재 고달프고 고통스러울지라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던져 줄 정치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싸리비의 요긴함과 그 진정한 의미를 아는 정치가, 자치가 지금 이 혼탁한 세상에도, 이 편협한 지역에서도 효능을 발휘하는 희망찬 일이 펼쳐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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