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재(206) 행복은 영혼의 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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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재(206) 행복은 영혼의 길에 있다
  • 박재근 고문
  • 승인 2018.09.06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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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존재에는 형체를 가진 육신이라는 ‘나’가 있고 형체를 갖지 않은 영혼이라는 ‘나’가 있다. 형체를 갖지 않는 영혼은 신적 가치를 추구하고 형체를 가진 육신은 물질적 가치를 추구한다. 물질적인 가치는 제한되어 상극적이며 정신적인 가치는 무제한하여 상생적이다. 영혼은 신을 의식하며 신의 속성인 비움을 몸으로 삼아 인류통합과 화해 진리와의 소통을 지향한다. 신을 의식하는 영혼은 절대적 가치관인 도리를 추구하며 육신적 가치관은 사람을 의식하는 상대적 가치관을 추구한다. 육신은 본능적 욕구에 의지해 사물을 대하고 영혼은 욕구를 비우고 소통과 화해로 사물을 대한다. 영혼은 한울과 신을 닮아 자아를 비우고 공존의 가치인 조화를 추구한다. 영혼은 도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사물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경중을 측량하고 판정한다. 보이지 않는 영혼이 보이는 육신을 부리는 것은 영혼이 주(主)고 육신은 영혼의 도구임을 말한다.
모든 죄악은 순리를 거역하여 주아(主我)인 영혼을 부아(副我)인 나에게 종속시키면서 발생한다. 영혼은 보이지 않는 내면의 가치와 실속을 위해 내공을 확대하려 하고 육신은 보이는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고 남에게 보이기 위해 외면을 장식한다. 육신적 가치관은 상대를 의식하면서 부귀를 비교하고 사람을 상하로 구분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불필요한 사치를 추구한다. 육신에 속한 가치관은 삶의 의미와 사물의 가치 기준을 보이는 것에서만 찾기 때문에 사람을 돈, 지위, 명예 등 보이는 외모로 평가하여 빈부귀천으로 차별한다. 육신적 가치관에서 나온 차별은 남과 자기를 비교하면서 남을 의식하게 되고 남을 의식하면서 거짓과 위선이 발생한다. 아무도 없는 자연공간 속에서 사람은 남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진솔해지며 남을 의식하지 않기 때문에 포장하며 장식하고 화장할 이유가 없어진다.
남을 의식하면서 의식주는 몸의 건강을 위해 추위와 더위 비바람으로부터 자기를 방어하는 본질적 목적에서 벗어나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장식용 과시용으로 변질된다. 육신을 돈과 지위로 포장하고 명예로 장식을 하게 되면서 무리한 포장과 장식에 소용되는 비용은 인생에 힘에 겨운 짐을 만든다. 빚에 쪼들리고 생활고를 비관하여 자살하는 등의 비극의 대부분은 자기 포장과 장식에 분수를 넘는 과대한 지출을 한 육신적 인생관이 만들어 낸 결과이다. 남에게 존중 받고자 하는 마음은 자기를 허장성세로 장식하려는 불필요한 허영심을 만들고 허영심은 필요를 확장한다. 필요는 욕망을 자극하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아지며 막히는 일이 많아지면 스트레스가 과중되면서 몸과 마음은 병들며 지혜의 눈은 흐려지고 속은 좁아지며 실의에 빠지고 절망과 좌절의 불행이 오게 된다.
남과의 비교는 허영심을 부추기고 허영심은 육신적 노동을 경멸하며 진솔하고 검소한 삶을 거부하고 멸시하며 불로소득을 원하고 사치와 낭비를 부추겨 인생을 버겁게 하는 무거운 짐의 빚을 지게 한다. 허영심은 영혼적인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는 환경과 처지와 상황에서도 불만스러워 한다. 현상유지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변화를 시도하여 불확실성을 택하면서 자기를 잡는 함정을 만들고 빚더미에 의해 무너진다. 허영심은 내면 정신세계의 황폐화에서 온다. 영혼의 마비로 인한, 육신적 욕망에서 생긴 병으로 마음을 부실하게 하여 진정성과 진실을 잃게 하여 삶의 목적을 외면의 포장과 장식으로 삼는다. 
신에게는 거짓과 위선과 속임수가 통하지 않고 오직 진실과 진리만이 통하므로 화장하며 포장하고 장식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신의 길에는 비용이 들지 않는다. 금은 도금을 필요로 하지 않듯이 속이 꽉 찬 사람은 외면을 포장하려 하지 않는다. 남이 어떻게 보든지 금은 금이기 때문이다. 영혼을 진정한 나로 알고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몸의 건강을 지킬 정도의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재산이면 충분하다. 그의 검소함은 물욕의 구속으로부터의 해탈을 준다. 파리도 날고 벌도 날고 새도 난다. 마음이 날지 못하는 것은 육신에 대한 집착의 무게 때문이다. 육신의 길로 사는 것은 자동차로 길을 가는 것과 같아 위험이 상존하지만 영혼은 비움의 공간을 길로 하기에 충돌의 위험이 없다.

글 : 박재근 전북흑염소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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