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주고슬/ 고집불통의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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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주고슬/ 고집불통의 결과
  • 정문섭 박사
  • 승인 2018.09.06 14: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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膠 갖풀 교, 柱 기둥 주, 鼓 북 고 칠 고, 瑟 큰 거문고 슬
정문섭이 풀어 쓴 중국의 고사성어 184

《사기》 염파·인상여(廉頗·藺相如)열전에 나온다. 거문고의 기둥을 아교를 붙여 연주한다는 뜻으로, 고지식하고 규칙에 얽매여 융통성이 조금도 없는 사람을 비유한다.

중학교 시절, 읍내 시장통에서 조무래기 대여섯 놈들한테 얻어맞은 뒤, 분한 마음에 바로 태권도장을 찾았다. 한 두어 달 쯤 지난 어느 날, 사범이 보이지 않더니 그 이튿날 얼굴 여기저기에 상처가 난 모습으로 나타났다. 읍내 한 조폭두목과 단둘이 한 판 붙었는데 사범이 좀 맞았다는 소문이 쫙 깔렸다. 사범이 3단인데? 선배들이 수군거렸다.

“실제로 싸움이 붙으면 5단도 실전에 강한 깡패한테는 안 되는 거지.”

대련연습이 끝날 무렵 사범이 단상으로 올라갔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맞았고 졌다. 굳이 변명하자면, 만약 싸움이 커지고 그 깡패가 맞았다면 경찰서에 가야 되고, 하여튼 복잡해지고 그러다가 도장이 문을 닫게 될까 걱정도 되고 해서…. 하지만, 난 우리 단원이 어디 가서 맞았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다. 품새도 중요하지만 이제부터는 실제에 맞는 대련에 더 많은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싸우면 이겨야 하지 않겠나?”

우리들은 그의 말에 모두 공감하면서 발차기 보다는 상대방과 몸이 부딪쳤을 때 태국 복싱처럼 주먹, 무릎, 팔꿈치를 사용하는 방법 즉, 변칙적인 싸움기술과 호신술을 배우는 대련에 열중하였다. 도장의 분위기가 예전보다 활기차고 신들이 났다. 시장통에 들어 갈 때 자신감도 생겼다. 도장에는 단원들이 더 많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전국시대 말, 조에 조사(趙奢)라는 훌륭한 장군이 있었다. 그에게 괄(括)이라는 아들이 있어 병서를 가르쳤는데 매우 영리하여 뛰어나게 병법을 잘 알았다. 가끔 아버지와 용병(用兵)에 대해 토론을 벌였는데 오히려 아버지가 이론에 몰리곤 했다.

조사의 아내가 아들의 총명함을 알고 장군의 집안에 장군이 났다며 기뻐하였다. 그러나 조사가 죽기 전에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전쟁이란 생사가 달린 마당이오. 이론만으로 승패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요. 그런 것을 철없이 이론만 갖고 가볍게 이러니저러니 하는 것은 가장 삼가야 할 일이오. 앞으로 괄이 대장이 되는 날 조나라는 망하는 변을 당하게 될 것이오. 부디 대장이 되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

진이 조를 치러 왔다. 명장 염파가 나가 싸웠는데 진에 비해 힘이 모자라고 불리하므로 진지를 다지고 방어에만 힘을 썼다. 진이 어찌할 방법이 없자, 반간(反間, 첩자)을 들여보내 헛소문을 퍼뜨렸다.

“진은 조괄이 조의 대장이 되면 어쩌나 하고 겁을 먹고 있다. 염파는 이제 늙어서 싸움을 회피만 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도 두렵지 않다.”

조 왕이 방어만 하고 있는 염파에 대해 불만과 의구심을 갖고 있던 차에, 마침 이런 유언비어가 나오므로 그만 이 소문을 믿고 염파를 내려오게 하고 조괄을 대장으로 임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당시 왕의 신임을 두터이 받고 있던 인상여(藺相如)가 극력 반대하였다.

“왕께서는 그 이름만 믿고 조괄을 대장으로 임명하려는 것은 마치 거문고의 기둥을 아교로 붙여 두고 거문고를 타는 것과 같습니다. 조괄은 한갓 그의 아버지가 준 병법을 읽었을 뿐, 때에 맞추어 변통할 줄을 모릅니다.”

조괄의 어머니도 왕에게 남편 조사의 유언을 말하며 ‘아들의 대장 임명’을 철회해 달라고 간곡하게 아뢰었다.

그러나 왕은 인상여와 조괄의 어머니 말을 듣지 않고 조괄을 그대로 대장에 임명하여 출병시켰다. 조괄은 대장이 되는 그날로 병서에 있는 대로 하여 전부터 내려오는 군영들을 뜯어고치고 참모들의 의견을 듣지도 않고 자기주장대로만 작전을 전개했다.

조괄의 이러한 행동을 알게 된 진의 백전노장 백기가 거짓으로 달아나는 꾀를 내고 양도(糧道)를 끊어 군사를 분단시켰다. 실전 경험이 전혀 없는 조괄은 이론만으로 작전을 감행하므로 병사들이 많이 죽어나가니 내심 불만을 갖고 잘 따르지 않는 부하들이 생겼다. 결국 병사들의 군기가 빠지고 사기가 크게 떨어졌다. 급기야 적군에게 40여일이나 포위당해 병사들이 굶어 죽어 나갔다. 조괄이 포위를 뚫으려 전력을 다했으나 크게 대패하여 죽고 나머지는 모두 항복하였다. 진은 항복한 모든 군사를 잔인하게 구덩이에 묻어 죽였다. 40만이라는 대군이 모두 죽는 중국 역사상 최대 최악의 참패를 가져왔다. 이후 조나라는 급격히 쇠약해져 결국 진에 의해 멸망되었다.

거문고 줄을 가락에 맞추어 타려면 줄을 받치고 있는 기둥을 이리저리 옮겨야만 한다. 그런 것을 한번 가락에 맞추었다 해서 아예 기둥을 아교풀로 꽉 붙여 버리면 가락에 맞는 소리를 낼 수 없다. 이처럼 무슨 일에 성공했다 해서 언제나 그 방법이 성공하는 길인 줄 알고, 때와 장소에 따라 뜯어 고칠 줄 모르면 영영 다시는 가망이 없는 것이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는 ‘4대강 사업’공약에 대해 각계 전문가들의 비판과 우려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뭔가 큰 업적을 남기려는 듯 전혀 귀 기울이지 않고 ‘반대를 위한 반대’ 라고 우기고 무조건 몰아붙였다. ‘영혼’이 없다고 오욕의 상처를 입은 수많은 공무원들을 양산하면서까지…. 몇 년이 지난 지금, 결국 사업시행과정 중에 수많은 비리가 양산되고 수십조 원의 국민혈세를 탕진하고 토목업체들만 배부르게 했다는 비판들이 나왔다. 결국 강물오염, 환경훼손 등 후대에 나쁜 영향을 준 ‘크게 실패한 지도자’로 자리매김 된 것 같다.

지금 정부도 ‘최저임금 만원’ 공약 때문에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경제적 약자들의 삶을 개선한다는 고상한 목표는 좋았지만 요즘 현실의 벽 앞에서 흔들리고 있는 것 같다. 최저임금 인상의 빠른 보폭은 5백만 자영업자들의 능력 범위를 벗어나면서 자영업자들의 삶이 위태로워지게 하고 있다고 보도되고 있다. 과포화 상태인 자영업 시장, 이들의 낮은 이윤과 장시간 노동,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다양한 구성과 이해관계라는 현실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고 있다는 비판의 글도 보인다.

어떤 공약이든 ‘절대 바꿀 수 없다.’고만 할 것이 아니다. 이제라도 현실을 직시하고 비판과 우려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중도포기와 조정에 아쉬워하지 말고 선의의 융통성을 발휘할 때다. 가능한 한 시장에 맡겨 최선의 방안을 마련하고 필요시 ‘조정의 미’를 살리는 ‘교주고슬’의 교훈이 필요한 때인 것이다. 물론 공약(空約)이었다며 거센 비판이 있더라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나무보다는 숲을 봐야할 것이 아니겠는가?

글 : 정문섭 박사
     적성 고원 출신
     육군사관학교 31기
     중국농업대 박사
     전) 농식품부 고위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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