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보물여행(47) 예향천리 마실길 … 양사형이 지은 ‘어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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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보물여행(47) 예향천리 마실길 … 양사형이 지은 ‘어은정’
  • 황호숙 해설사
  • 승인 2018.09.13 14: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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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떠나는 ‘순창보물여행’

 

▲양사형이 지은 어은정. 김태현 순창군문화관광해설사 그림(스케치).

 

오늘도 섬진강으로 마실 떠나볼까요? 지난주에는 백일홍이 가득한 양배의 구암정, 오늘은 그의 증손자인 양사형이 지은 어은정으로 떠나려 합니다.
새벽녘 느끼는 가을바람이 제법 선득선득합니다. 가을이구나! 가슴이 속삭입니다. 9월을 안도현 시인은 <농촌 아이의 달력>에서 ‘방아깨비 허리 통통해지는 달’로 명명했고 인디언은 ‘검정나비의 달ㆍ사슴이 땅을 파는 달ㆍ풀이 마르는 달ㆍ작은 밤나무의 달ㆍ옥수수 거두어들이는 달’이라고 했지요.
일철이 돌아왔구나! 마음만 무거워지는 순간, 훌훌 털어버리고 친구와 함께 마실 한번 제대로 떠나고픈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마음 든 적 있으시지요. 자! 그럼 떠나볼까요?

마실은 마을의 방언으로 마실 가다는 “마을에 가다”, “마을로 향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구미교는 섬진강과 벌통산을 한 자락 끼고 도는 예향천리길을 시작하는 곳입니다. 산길, 들길, 강길이 어우러져 친구 만나 수다 떨면 기분이 환해지듯 마음과 몸이 스르르 풀어지며 기운을 받고 가는 길, 순창 마실길입니다. 섬진강 물줄기와 적성면 산자락을 따라 조성된 마실길은 총 4코스가 있는데 오늘은 1코스 끝에 있는 어은정을 소개하도록 하지요.
‘어은’은 어지러운 세상을 등지고 고향으로 돌아온 선비들이 섬진강에서 낚시를 하며 자연을 벗 삼아 유유자적한 삶을 살아갔다는 의미라고도 합니다.
먼저 섬진강 공부부터 해볼까요. 섬진강의 원래 이름은 모래내 또는 다사강이었다네요. 1385년 고려말기 우왕때, 경남 하동 쪽에서 왜구들이 강을 건너오려는 시기에 진상면 섬거에 살던 두꺼비 수십만 마리가 다압면 섬진마을 나루터로 떼를 지어 몰려와서 진을 치고 울부짖자 왜구들이 그만 놀라서 도망쳤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두꺼비 ‘섬(蟾)’자를 따서 섬진강이라 칭하였으니 550리(225킬로미터) 길을 흘러 흘러 매화꽃 피는 광양만에서 끝내지요. 정말 좋은 것은 섬진강 길 중에서도 가장 예쁜 구간이 순창 땅을 경유한답니다.
어은정을 향해 걷다 보면 구암정이 보이고 예전에는 어은정까지 이어진 숲속 계단과 산책로가 있었는데 지금은 도로가 뚫려있지요. 물이 흘러간 자국 그대로 바위가 맨살을 드러내고 옹기종기 어우러져 있는 풀들이 화려한 꽃들보다 예쁘게 느껴지는 곳이 바로 여깁니다. 아쉽지만 다시 호젓한 산길을 걸어가 강 쪽으로 고개를 돌려볼까요? 내월 취입보입니다.
어도가 특이하게 생겼죠. 이곳 섬진강에는 은어와 꺽치 등 1급수들이 살고 있죠. 수달도 나타날 정도로 깨끗하죠.
그래서 저는 이 길을 어릴 적 소꿉친구와 도란도란 걸으며 솨악솨악 거리는 바람 소리처럼 그냥 걸어가는 길이라고 봐요. 먼지 뒤집어쓰고 콩 타작하다가 반가운 친구가 나를 보러왔다는 문자를 보는 느낌, 몸빼 바지 입은 채로 헐레벌떡 뛰어나가 친구 손 꼭 잡고 구경시켜 주고픈 길입니다. 오붓이 난 숲길에서 바라보는 섬진강은 친근한 엄마 얼굴 같다가도 들깨향기 온몸에 밴 보고픈 사람으로 변하기도 하네요.
어은정은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 제132호로 어은 양사형이 조선 명종 22년에 구미마을에서 이곳 구남 마을로 분가하면서 지은 정자랍니다. 처음에는 양하정이라고 이름 지었다가 후손들이 어은정으로 이름을 바꿨는데 모두 양사형의 호입니다. 양사형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벼슬을 사임하고 남원에 낙향하였지만, 왜적이 침범하자 떨쳐 일어섭니다. 고경명(高敬命)이 담양에서 의병을 일으키자 군량을 모아서 도움을 줍니다.
큰 공을 세우고 선무원종 공신이 되었다가 죽은 뒤에 승정원 도승지에 봉해졌고 순창 화산서원에 배향되었죠.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죠. 정자는 여러 차례 고쳐 지었는데 지금 있는 건물은 1919년에 고쳐 지은 것이랍니다. 흘러가는 섬진강을 수놓는 백일홍이 필 때 풍경은 보는 사람마저 황홀하게 한다고 합니다. 저 멀리 채계산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어서 예로부터 수많은 시인 묵객 등이 풍류를 즐겼다고 합니다.
어은정에서 바라보는 섬진강은 아름답지만 소박하게 흘러갑니다. 수십그루 배롱나무(백일홍) 고목들이 서있는 정자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놀러와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지켜보았으리라. 채계산을 바라보며 섬진강 자전거길을 타고 흠뻑 역사와 풍류에 취해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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