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에서서(38)/ 아버지의 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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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에서서(38)/ 아버지의 손길
  • 선산곡
  • 승인 2018.10.04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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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캠핑 중이었다. 첫날 우리자리 건너 리어카를 단 자가용이 들어왔다. 젊은 남자, 딸 하나에 아들 둘을 가진 가장으로 보였다. 캠핑을 하는 동안 이웃 간에 말은 별로 나누지 않지만 그 가족의 분위기는 눈여겨보아지는 법이다. 자세히 보니 아빠 혼자 아직 어린 아이들만 데리고 짐을 풀기 시작하고 있었다.
나는 캠핑 고수들을 쉽게 알아보는 편이다. 혼자서 그늘 막을 치는 것, 하다못해 설거지, 그릇 하나 챙기는 것만 봐도 그 깊이를 단박에 알아차린다. 장비들은 고가의 것들이지만 천막기둥도 제대로 세우지 못하고, 줄도 팽팽히 잡아당기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그 허세를 금방 판명해 낸다.
이 젊은 아빠는 혼자서 능숙하게 텐트를 쳤고 그늘 막 가운데엔 큰 자리를 깔아 먼저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자리부터 마련해 주고 있었다. 바깥주변에 키친 테이블, 취사용 가스기구, 아이들 놀이상자 등을 가지런히 정돈하는데 시간이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이들은 셋이 앉아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고 아빠는 드디어 쉬는 듯 텐트 안에 들어가 한 숨 늘어지게 자고 있었다.
물론 시종일관 훔쳐 본 것은 아니었다. 남의 도움 없이 젊은 아빠 혼자 자식들을 위해 빈틈없이 준비하고 관리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을 뿐이었다. 이웃자리 그늘 막 아래에 앉아있던 우리 부부의 궁금증은 제멋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혼자 애들을 돌보는 것을 보니 상처를 했거나 아니면 이혼을 했을 거라는 부담스런 상상까지는 하지 않았다. 젊은 아빠의 야영장비 구색이 잘 갖추어져있어 혼자라는 궁색함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함께 하지 않은 야영, 자식들은 잠깐이나마 그 자리가 허전할 것이다. 급작스레 생긴 일 때문에 엄마는 늦게 나타날지 모른다는 것으로 우리는 관찰을 끝내기로 했다. 그런데 느낌이 이상하다. 이유야 어땠건 아빠 혼자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살짝 안쓰러워 보인다는 점이었다. 음식을 만들어 주고, 씻기고 재우며 다독거리는 저 아빠의 손길을 자식들은 훗날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어렸을 때 배앓이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아버지가 내 배를 쓰다듬으며 불러주신 노래.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아버지는 원래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셨다. 그러나 그 서툰 음정과 손길의 부드러움을 나는 평생 잊지 않았다. 아버지의 손이 원래 비단결같이 부드러우신 것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이발소를 데리고 가 주셨고 무등 태워주신 기억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빠라고 불러본 기억이 거의 없다. 내가 겨우 철이 들었을 때 아버지는 하얗게 늙으신 모습이었다. 근엄하시지는 않았지만 아버지께 쉽게 어리광을 부릴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일찍 깨달은 셈이었다.
입대 전 목욕탕에서 아버지의 등을 밀어드린 적이 있다. 세월이 준 고난을 고스란히 지닌 아버지의 여윈 등이 가슴 아팠다. 아버지는 노쇠하셨고 자식인 나는 아직 어렸다. 그때의 내 손길을 아버지는 어떻게 느끼셨을까. 나도 목욕탕에서 내 등을 설렁설렁 비누질했던 고사리 같았던 아들 손의 감촉을 잊지 않고 있다. 그 아들 손은 지금의 내 손보다 더 크다. 아버지와 자식이 서로의 손길을 잊지 않고 있음을 알 것 같은데 어쩐지 가슴은 먹먹해진다.
아버지에 대한 노래도 많다. 그러나 내 회상에 맞는 그 어떤 노래도 아직 나는 만나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버지에 대한 묵언의 깊이를 그 무엇으로도 흉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를 생각하는 노래들은 내 감상과 달라 어쩐지 듣기가 거북할 뿐이다.

다음 날 아침 그 텐트에 눈을 돌렸다. 엄마는 오지 않았다. 그러나 결론을 짓기로 했다. 아빠는 아이들을 데리고 캠핑을 왔고, 엄마는 그 동안 가사에 지친 몸을 집에서 푹 쉬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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