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제일고 중국 수학여행을 다녀와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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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제일고 중국 수학여행을 다녀와서 (1)
  • 한유민(제일고 2년)
  • 승인 2018.10.04 1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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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행적 보며 애국심 다진 여행

지난 9월 8일부터 9월 12일까지, 순창제일고 2학년 학생들은 4박 5일 동안 중국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주 여행지는 항저우와 상하이 두 곳이다. 알찬 일정만큼 우리 마음도 가득 채워 돌아온 여행이었다. 여행 일주일 전부터 우리 모두는 들뜬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는 분위기였다. 서울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중국으로, 여행지와 일정이 여러 번 바뀌면서 기대와 실망이 교차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 대부분이 해외여행은 처음이었고, 여행 첫날부터 매일 밤마다 다음 날에 대한 부푼 기대감으로 하루하루 일정이 참 즐거웠다. 특히 여행기간 동안 한국말을 정말 잘하는 조선족 현지인 가이드가 동행하면서 자세히 설명을 해주셨는데, 한국과 중국을 연관 지어 설명을 해주셔서 더 유익했던 것 같다.

항저우 임시정부…아픈 역사 흔적 보며 감사한 마음

가장 먼저 간 곳은 항저우 송성테마파크였다. 송나라의 역사를 재현한 중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이라는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나니 중국 역사에 대해 이해가 더 잘 되었다. 이튿날 첫 일정인 아름다운 호수 서호에서 작은 유람선을 타며 성황각을 보고, 청하방 옛 거리에서는 기념품 쇼핑도 했다. 그 다음은 항저우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임시정부청사를 방문했다. 입구로 들어갈 때부터 ‘도대체 이런 곳 어디에 청사가 있다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 정도였던, 청사라는 단어와 거리가 먼 건물을 보니 독립운동이 평탄한 길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감시와 탄압 속에 모든 것이 비좁고 불편한 그곳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을 떠올리며 지금 우리가 넓고 쾌적한 환경 속에서 공부하며 생활 할 수 있는 것이 모두 그 분들 덕분이라는 걸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우리나라의 가슴 아픈 역사를 직접 느끼며 독립 운동가들께 다시 한 번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곳이었다. 중식 후 세 시간 버스를 타고 상하이에 도착해서 황포강 유람선에서 보는 아름다운 상하이의 야경을 즐길 수 있었다.

상하이 동포 자긍심 확인…우리는 우리나라를 사랑할까?

불과 백오십년 전에는 작은 어촌에 불과했던 상하이가 현재는 삼천만이 넘는 인구가 사는 큰 도시가 되었고 이 변화의 역사 속에는 제국주의 열강들의 침략에 의해 아편전쟁에 패하면서 영국과 억지로 체결한 난징조약이라는 불평등한 조약이 오히려 상하이에 무역과 인구 그리고 중국 제일의 경제력을 안겨주었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우리 조선족 가이드는 설명을 덧붙이시면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발전 덕분에 가이드로 일 할 수 있어 너무 좋고 자기도 자긍심을 갖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타국에서 태어난 동포가 우리나라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데 우리는 얼마나 우리나라를 사랑하고 있는가 하는 반성이 들기도 하였다.
3일차는 아시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상하이 디즈니랜드에서 친구들과 행복한 추억을 쌓았다. 하루 종일 신나게 놀고 마지막 하이라이트인 불꽃놀이까지 보고 숙소에 돌아오니 열시가 넘었고 기진맥진해져 눕자마자 잠에 골아 떨어졌다.
이튿날 아침에 오늘이 마지막 일정이라고 생각하니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부터 들었지만 마지막 일정까지 즐거운 경험으로 채우리라 마음먹고 상해 시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높이 468m 동방명주타워로 향했다. 타워 전망대는 바닥이 유리로 되어있어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이 아찔했지만 총으로 쏴도 멀쩡한 방탄유리라는 설명에 무섭지 않은 척 여러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세계에 대한독립 알린 윤봉길 의사

다음 행선지는 윤봉길 의사 의거지, 홍커우 공원이다. 이곳은 윤의사가 일본 수뇌부를 향해 폭탄을 던지며 독립을 외쳤던 곳이다.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을 천천히 살펴보며 나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25세 젊은 나이에 그런 결심을 하고 두렵지는 않았는지, 가족들에 대한 걱정도 적지 않았을 텐데 그가 했을 수많은 고민을 상상하니 눈물이 날 뻔 했다. 그가 어린 두 아들에게 남긴 유언은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너희도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짧지만 불꽃처럼 살다 가신 윤봉길 의사의 순국은 한국인의 자주 독립을 전 세계에 알린 거룩한 의거였다.

두 곳 임시정부 역사…보람찬 공부

홍커우 공원을 나와서 남경로와 신천지, 상해 옛 거리를 돌며 중국의 현재와 과거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었다. 신천지에서는 외국인들을 상대로 인터뷰도 하며 중국에 대한 다른 나라 사람들의 생각을 알아보는 경험도 했다. 내가 속한 조에서는 ‘드론’을 주제로 인터뷰했는데 우연치 않게 외국 유명 풋볼 선수를 만나 훨씬 재미있는 대화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상하이에 온 가장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인 상하이 임시정부청사에 갔다. 그곳 역시 항저우 임시정부청사처럼 좁은 곳이었다. 일제의 눈을 피해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광복을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한 그곳에 와보니 독립투사들의 진실한 염원이 전해지는 것 같아 또 한 번 마음이 뭉클해졌다. 좋았던 점은 임시정부청사를 두 곳이나 가니 수립배경을 비교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상하이 임시정부는 3ㆍ1운동 이후 일본 통치에 조직적으로 항거하기 위해 설립한 곳이고 항저우 임시정부는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의거 직후 일제의 눈을 피하여 상하이에서 이주한 것이라고 한다. 특히 상하이는 중국의 영토였지만 외국인 거주 지역인 프랑스 조계지라서 일본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 땅에서는 힘들었던 독립투쟁을 위해 독립투사들이 상하이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하나라도 더 알고 싶어서 열심히 강의를 듣고 깊이 알게 된 대한민국 독립운동 역사는 중국 수학여행에서 내가 배울 수 있었던 가장 보람찬 공부였다. 또, 독립운동을 했던 분들을 우리는 제대로 대우하고 있는지, 참으로 큰 빚을 졌다는 생각도 들었다. 중국에 와서 독립 운동가들의 행적을 돌아보니, 고귀한 희생을 감사히 여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대한 주인의식이 더 생기는 것 같았다.
모두 안전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4박 5일 동안 수학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동안 막연히 알았던 중국은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대단히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었고 중국에 견주어 우리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좋은 계기였던 것 같다. 우리는 순창군의 혜택 덕분에 어른이 되어서도 친구들과 이야깃거리가 될 만한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국내 아닌 해외에서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할 수 있게 힘써주신 군수님과 군청 관계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또한 우리를 위해 몇 달 동안 준비해주신 여러 선생님께도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내년에 후배들도 이런 기회가 주어졌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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