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재(208) 오래 사는 사람
상태바
밤재(208) 오래 사는 사람
  • 박재근 고문
  • 승인 2018.10.11 14: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육신이 죽어도 죽지 않는 자를 오래 사는 사람이라 한다.”(노자) “육신의 죽음을 싫어함은 집을 나온 철없는 어린 아이가 길을 잃어 집으로 돌아가려 하지 않는 것과 같다.”(장자)
한국인은 죽음을 돌아감이라 한다. 삶이란 무에서 왔고 죽음이란 육신의 짐을 벗어 놓고 본래 왔던 무로 돌아감을 뜻한다. 철이 없어 길을 잃는다는 것은 무소유가 길인데 생각이 미숙하여 육신적 가치관인 소유의 짐을 내려놓지 못한다는 뜻이다. 올 때 맨몸으로 왔으니 맨몸으로 살다가 맨몸으로 돌아가는 것이 본질에 맞게 잘 살다 가는 것이다. 맨몸으로 산다는 것은 장식과 포장을 하지 않고 남과 비교하지 않으며 가식 없이 사는 것이다. 인생을 힘겹게 하는 대부분의 짐은 나와 남을 비교하며 힘을 겨루고 가진 것을 과시하며 남을 지배하기 위해 장식하고 포장하면서 발생한다. 포장의 종류는 의식주 사치에서부터 부귀영화를 위한 모든 것으로 다양하다. 포장하지 않고 산다는 것은 욕심을 버리고 생각을 비워 짐을 내려놓고 사는 것이다.

“육신적 삶을 초월하고 영혼의 삶을 추구하여 삶과 죽음을 하나로 보는 사람은 죽지 않고 영혼의 삶을 부정하고 육신의 삶에만 매달리는 사람은 참한 삶을 살지 못한다.”(장자)
사람은 영혼과 육신으로 구성되어 있다. 육신은 형체를 가진 생명을 밥으로 함으로써 죽임의 대가로 죽음을 대가로 받고 영혼은 생명을 살리고 기르는 도덕을 밥으로 함으로써 살림의 대가인 살림을 대가로 받는다. 오래 살기 위해 도덕을 추구해야 할 이유이다. 육신은 형체를 갖고 있어 쉽게 부서지며 병에 약하고 늙어져 단명하며 영혼은 형체를 갖지 않음으로써 쉽게 부서지지 않고 병들지 않으며 늙지 않음으로써 장수할 수 있어 영원성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 추구하는 삶에는 죽임의 가치가 있고 살림의 가치가 있는데 육신에 속한 사람은 죽음에 속한 상극의 사라질 가치를 따르고 영혼에 속한 사람은 상생의 사라지지 않는 살림의 가치를 따른다.
육신에 속한 죽임의 가치관은 물질적 소유를 추구하며 사람을 물질적 소유를 얻는 수단으로 삼는다. 소유욕은 상극적이어서 서로를 파괴하는 대결과 대립, 분노와 증오, 시기와 질투. 남에 대한 배려를 배제한 독점과 독선을 추구함으로써 불화의 벽을 만든다. 소유의식은 힘을 숭배하며 사람을 상하 귀천으로 차별하고 비교하면서 자기장식과 포장의 이유를 만들며 포장의식에서 거짓과 위선이 발생한다. 소유욕이 사람을 대상으로 하면 남에 대한 존엄성을 무시하고 남의 육신과 정신 마음의 자유를 구속하며 물욕은 정신을 구속한다. 국경은 소유욕의 산물이다. 국가는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타국과 충돌하면서 대화와 소통을 막는 벽을 만들고 벽은 군대와 무력을 만들며 무력에 대한 비용은 인류사회의 약자를 위해 쓰여야 할 인간의 노동의 대가를 동류 인간의 살상을 위해 천문학적 비용을 낭비하게 한다.

“천지자연은 모든 생물이 쉬어 가는 곳이며 세월과 시간은 영원이라는 공간을 지나가는 길손이다.”(이태백)
삶은 여행이며 천지자연은 모든 생물의 삶의 여행을 위한 여행지이다. 올 때 맨몸으로 왔기 때문에 자기 것이란 없고 그럼으로 갈 때 맨몸으로 간다. 우리가 가지려고 하는 재화는 한울의 소유인 땅, 태양, 물, 불, 나무, 쇠 등의 자연 자원에서 나오고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닌 모든 생물의 삶을 위한 것이다. 천지자연은 내가 태어나기 전의 여행자가 이용했었고 내가 돌아간 이후의 새로 올 여행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으로 잠시 빌려 쓰고 돌려줘야 할 것이며 소유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가져선 안 되는 것을 가지려 욕구하면서 온갖 죄악이 발생하고 온갖 죄악이 무성할수록 삶의 짐이 무거워진다. 삶이 여행일진데 빈부귀천의 계급과 신분은 여행 중에 잠시 맡은 연극 속에서의 배역에 불과하다. 삶의 연기가 끝나면 빈부귀천의 지위는 사라진다. 잠시 맡겨진 일시적 배역을 자신의 참지위로 착각하는 무지에서 교만이 생기고 어리석은 교만은 인간을 참한 길에서 탈선하게 한다. 명예란 배역의 연기에 따르는 평가에 불과하다. 감동적인 배역을 함으로서 명예를 얻음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자기를 돋보이고 싶은 욕망 때문에 명예를 추구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으로 순리를 거스른 것이다. 순리를 거스른 명예는 악행의 그림자이며 참 명예는 선행에 따르는 그림자이다.

글 : 박재근 전북흑염소협회 고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금과초등학교 100주년 기념식 4월 21일 개최
  • 우영자-피터 오-풍산초 학생들 이색 미술 수업
  • “조합장 해임 징계 의결” 촉구, 순정축협 대의원 성명
  • 순창군청 여자 소프트테니스팀 ‘리코’, 회장기 단식 우승
  • [열린순창 보도 후]'6시 내고향', '아침마당' 출연
  • 재경순창군향우회 총무단 정기총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