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농업농촌 열정, 존경스러운 종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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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농업농촌 열정, 존경스러운 종기야
  • 김민성 편집위원
  • 승인 2018.10.18 14: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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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금방이라도 사무실 문을 열고 형님! 하고 부르며 들어올 것 같다. 그 잘 생긴 얼굴에 너털웃음에 모자를 벗고 땀을 닦으며 찾아올 듯한테 농사 일이 많은 거야, 요즘 안 오게.
추석 다음 날 저 세상으로 갔으니 20여일이 되었구나. 그 세상은 어떠냐. 언젠가는 다 경험하겠지만 춥지는 않더냐. 외롭지는 않으냐. 그렇게 사랑한 농촌은 어때. 농부라는 직업도 있더냐. 농산물은 다 잘 팔리더냐.
벌에 쏘여 4일간 사경을 헤매다 먼저 간 너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하다. 이곳 복흥은 무심하게도 가을이 무르익어간다. 너만 보이지 않을 뿐, 벼 수확도 마치고 콩 잎도 누렇게 변해가고 단풍도 들기 시작했다. 코스모스도 어김없이 멋들어지게 피었다. 매정하지만 이것이 인간사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오래전이구나. 고향에 내려와 복흥애향협의회라는 단체에 가입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 시작한 것이. 너의 입에서 나온 대화소재는 대부분 농업농촌의 문제, 농산물 유통, 지역사회 발전 방향. 특히 농산물 유통 농협의 중요성이 주관심사였지.
말이 시골 태생이지 농사도 모르는 내가 농업농촌에 관심을 갖고 농산물 유통과 농협 조직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종기 덕분이었다. 그래서 같이 합병조합 설립위원도 역임하고 서순창농협 이사도 같이 했었지. 머리가 쥐날 정도로 복잡한 일도 있었지만 그것을 해결하려는 너의 열정 존경스러웠다.
사고가 나던 날 그러니까 추석전전날 오후 3시나 됐나. 일을 보고 집에서 조금 쉬려고 할 즈음 걸려온 전화. 아산병원이라는데 심정지 상태라고? 벌에 쏘여 119에 실려 갔다고? 무슨 날벼락인가 싶어 어머니를 모시고 아산병원으로 갔더니 응급실 별실에 누워있었고 익산 원광대 병원으로 옮겨야한다더라. 너는 헬기로 이송되고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원대병원으로 갔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실낱같은 희망을 기대하고 마지막 방법을 결정했지만 어려운 상황이었다.
추석 다음날 대전 처가에서 내려오면서 다시 너의 모습을 보았다. 40/20 혈압수치였다. ‘오늘 저녁 넘기기 어렵겠다는 주치의 설명이 있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5시가 넘어 병원에서 나와 복흥에 도착할 즈음 저세상으로 갔다는 전화가 오더구나. 두어 시간 전 온기가 남아있던 손과 발을 만져줄 수 있어서 그나마 덜 서운했다.
지난 토요일은 복흥면민의 날이 있었다. 방범대장으로 질서유지와 주차안내를 해야 하는데 보이지 않더라. 어디 간 거야? 오미자 팔러 서울 갔냐? 고구마 팔러 부산 갔냐.
이승과 저승은 종이 한 장 차이 같다. 몇 해 전 친한 고등학교 동창이 교통사고로 먼저 가고 전화 통화만 못할 뿐이고, 너도 얼굴만 못 볼 뿐이다. 엊그제 만난 어머니도 “집에 있으면 올 것 같다”는 말씀을 하시더라.
종기가 세상을 떠난 후 그런 젊은 사람이 시골에 있어야하는데 그런 열정 있는 사람이 이 지역에 있어야하는데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나 역시 그렇다. 지역농산물 판매라면 개인 일도 미루고 다니는 그 헌신에 감동했는데 누가 그 자리를 대신 할 수 있을까.
너는 반드시 있어야할 사람이다. 박명(美人薄命)이라던가. 그저 아쉽고 또 아쉽고 미안할 뿐이다. 우린 언젠가 다시 만나야 할 운명, 그때까지 편히 쉬고 있어라.
백일홍 나무 앞에 누워있는 종기야. 바쁜 일 얼추 마치고 들르마. 못 다한 농협 농산물 판매 얘기 그때하자.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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