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보물여행(50) 순창 명산 ‘채계산’을 품은 적성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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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보물여행(50) 순창 명산 ‘채계산’을 품은 적성면
  • 박재순 해설사
  • 승인 2018.11.08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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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떠나는 ‘순창보물여행’
마한시대 소석색국…현재 8개 법정리 23개 마을

 

적성면 대산마을로 시집 온 지 올해로 24년이니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네요. 아버님과 남편이 나고 자란 이 곳에서 세 아이들이 태어나 자랐으니 제게도 제2의 고향이 된 곳입니다. 오늘은 적성에 살면서 주워듣거나 읽은 짧은 소견으로 적성면을 소개하겠습니다.
적성면은 삼한시대에는 마한 54개국의 하나인 소석색국(小石索國)에 속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백제에서는 조약돌이 강변에 많이 있어서 였는지 역평현(礫平縣)으로 불렸는데 이 때에는 순창보다 더 발전된 곳이었답니다. 신라 경덕왕 16년(757년)에 적성현(磧城縣)으로 개칭되면서 순화군 소속이 되었고, 고려시대 현종 9년(1018년) 남원의 속현이 된 뒤 복흥면 일대에 위치해 있던 순창이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면서 순창의 속현으로 되었습니다.
고려 충렬왕 때인 1314년 국가의 모든 행사를 관장하는 국통 자리에 정오(丁午)선사가 오르면서 순창군으로 승격되었고 이 때 복흥현과 적성현이 순창군으로 합병되면서 적성현이 폐현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적성방(磧城坊)으로 불리다가 1897년(고종 34년) 방을 면으로 개칭하면서 오늘 날의 적성면이 되었습니다. 1935년 동계면 괴정리가 적성면에 속하면서 8개 법정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2017년말 기준, 고원리ㆍ지북리ㆍ대산리ㆍ운림리ㆍ내월리ㆍ괴정리ㆍ평남리ㆍ석산리 등 8개 법정리에 23개 마을이 있습니다. 세대수 749세대에 인구 1,470명으로 나와 있습니다.

 

임실덕치 두류봉ㆍ남원대강 채계산 ‘경계’

호남정맥의 동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두류봉에 의해 임실군 덕치면과 북쪽의 경계를 이루고 있고,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용궐산이 있는 동계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천태산 끝자락인 평남리에서 오수천이 섬진강에 합수되어 흐릅니다. 동쪽으로는 채계산이 남원시 대강면과 경계를 이루고 남쪽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유등면과 경계를 이루고, 서쪽은 적성면 지북리가 인계면 중산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도로는 서림마을에서 태자마을까지 국도 24호선이 6킬로미터(km)를 관통하고 대산마을 앞에서 석산마을 앞까지 국도 21호선이 남북으로 7km를 통과하고 있습니다. 독집에서 괴정마을 앞까지는 국도 13호선이 지납니다. 1925년 섬진강을 막아 만든 어은정보가 지금도 있습니다. 1934년 일제가 수탈 목적으로 만든 원다리는 지금은 자전거도로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 다리는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의 진입을 막기 위해 미군 전투기가 폭파했다가 다시 복원했답니다. 다리 옆에는 오래된 왕버들이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을 굽어보고 있고 채계산 화산옹바위는 적성면의 흥망성쇠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채계산(釵笄山, 342m) 정상은 송대봉이고, 무량사와 일광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금돼지굴 이야기와 산 능선 칼바위와 우거진 소나무 숲길은 사람들의 발길을 불러들이기에 충분합니다.

명창 장재백ㆍ박복남ㆍ이화중선 흔적 남아

순창에서 남원으로 가려면 원촌마을을 지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예로부터 역이 생겨났고 관리들이 머물다보니 마을이 형성되어 원촌이라 불렀답니다. 섬진강이 흐르고 아름다운 채계산이 자리한 곳에 다리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나룻배가 사람들을 실어 날랐겠지요. 아름다운 풍광에 취하고 술에 취하고 흥에 취해 놀던 곳에 아리따운 기생들(적성삼화) 이야기가 빠질 리가 없겠죠. 제가 시집올 때만 해도 창 한 가락씩 멋들어지게 뽑아내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운림리 매미터는 조선시대 8대 명창이고 동편제 판소리 명창인 장재백(張在伯)이 태어난 곳입니다. 장재백 동생의 아들이 여류명창 이화중선의 남편으로 이화중선이 이 곳에서 살았던 흔적이 면사무소 호적에 남아 있답니다. 전하는 이야기에는 임동마을과 율지마을 산자락에 줄을 연결하여 줄타기가 행해지면 구경 온 수많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답니다. 장재백 명창 뒤를 이어 박복남 명창이 전라북도 무형문화재로 활동하였고 그 자녀들도 국악에 몸담고 있습니다.

문화재…어은정ㆍ좌불상ㆍ정려각ㆍ농소고분

문화재로는 어은 양사형(漁隱 楊士衡)이 동계 구미마을에서 분가하여 평남리에 살면서 지은 어은정(漁隱亭)이 있습니다. 어은공은 과거에 급제한 후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워 선무공신에 봉해진 분이고, 글 솜씨가 좋아 소장을 작성하려는 사람들이 인근 남원 곡성에서까지 찾아 왔다고 합니다. 도왕마을 옆 석산리 산에는 불암사가 있었는데 그 터 위쪽 커다란 바위에 ‘석산리 마애여래좌상’이 암각되어 있습니다. 채계산 일광사에는 혜희스님이 만든 불상으로 추정되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229호인 ‘일광사목조관음보살좌상’이 있습니다.
강경마을 마실팬션 가는 길에는 숲 속 작은 책방과 바위에 새겨진 글들이 있습니다. 남원양씨 문중 기록에 의하면 고려말과 조선조에 일어난 여러 사화를 피해 온 사람들이 터를 이루어 살았다고 전해오고 있습니다. 박효자 정려각은 입석마을 앞 강가 옆에 세워져 있습니다. 여기에 빠져서는 안 될 인물이 지북리에서 살았다는 거부 참봉 양운거입니다. 취암산 동쪽 적성강변 바위에 종호(鐘湖)라고 새겨 놓고 술 한 잔에 시 한 수를 읊다보면 조그마한 주전자로 술 나르기에 바빴답니다. 그래서 바위를 파 술항아리로 만들어 놓고 시정을 즐겼다고 합니다. 물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에도 인색하지 않아 1661년 현종실록에 남아 있습니다. 2017년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된 운림리 농소고분도 있습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쌍룡사지나 음적사 절터도 오랜 문헌에 몇 줄 남아 있습니다.

딸기ㆍ두릅 ‘명성’…채계산 270m 구름다리

섬진강변에는 1977년 조성된 신월마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적성면 소재지인 고원리에는 면사무소, 파출소, 초등학교, 우체국, 농업협동조합, 보건지소가 있고 전라북도 도로를 관리하는 도로관리사업소가 균형발전 차원에서 들어와 있습니다. 내월에는 보건진료소가 있고 순창읍에 상수도를 공급하고 있는 정수장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적성면에서 생산하는 딸기와 두릅이 전국에 이름을 날리고 있습니다. 2013년부터 ‘나와 자연과 지금의 행복을 추구’하는 7개 마을이 연합해 적성 슬로공동체를 꾸려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고, 그 뒤를 이어 관평마을을 주축으로 금돼지권역사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새로운 변화가 일렁이고 있습니다. 섬진강 뷰라인사업의 일환으로 채계산에 270m 구름다리가 2019년 9월에 완공될 예정이며 폭 1.5m에 동시에 1,500명이 건널 수 있도록 설계된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적성면을 방문하여 섬진강변에 카누가 떠다니고 그 옛날 사람들로 북적이던 역평현(礫平縣)의 영화가 다시 찾아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순창군이 추진하고 있는 문화와 관광을 어우르는 관광객 500만 시대를 열어가는 데도 한 몫 할 것이라 생각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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