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속시한줄(22)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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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속시한줄(22) 풀
  • 조경훈 시인
  • 승인 2018.12.06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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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그림 : 조경훈 시인ㆍ한국화가
풍산 안곡 출신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어렸을 때 산촌에 살았던 사람의 가슴에는 누구나 파란풀물이 들어 있을 것이다.
놀이터가 뒷동산 풀밭이었고, 푸른 논과 밭이 삶의 터전이었기 때문이다. 그곳에 밭을 갈아 씨를 뿌리면 어느새 풀이 먼저 돋아났고, 그대로 놔두면 그해 여름은 풀의 세상이 되고 만다.
그 풀의 생명력은 어떻게 생겨날까? 그 생명력은 흙속에 묻혀 있는 풀씨인데 그 풀씨는 몇 년이고 묻혀서 죽은 듯이 있다가 기회만 되면 흙을 뚫고 나온다. 그 풀을 베어 내거나 뽑아내도 다시 솟아나니 그 생명력은 신이 내어 준 한 경지를 누리며 산다 할 것이다.
그런 풀이지만 풀은 교만하지 않고 바람이 불면 가만히 눕는다. 그렇다고 비명한번 없고 그것이 운명인 듯 공손히 받아들인다. 바람보다 빨리 누웠지만, 바람보다 먼저 울었지만, 언제나 다시 일어섰고, 바람보다 먼저 웃었다. 결코 굴복하거나 복종하지 않고 끝내는 푸름의 세상을 만들어 살았다. 그래서 풀처럼 살아온 우리 조상들을 민초라 했다.
우리는 풀처럼 살았다. 역사의 격랑 속에서 바람이 불면 그냥 누웠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일어섰다. 구부러지긴 했으나 꺾이지 않고 살았다. 뽑아냈으나 다시 솟아나는 생명의 끈질긴 힘은 우리와 그 유전인자가 닮았다. 이제 곧 겨울이 온다. 풀을 보내고 다시 그 풀을 내년 봄에 맞이하자. 그때는 그 풀들이 길에 나와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할 것이다. 아니 이 땅에 가정에 평화를 빌어줄 것이다. 우리 같이 풀이랑 이 땅의 평화를 빌자.
이 풀의 시를 우리시대 100명의 시민들이 가장 좋은 시로 뽑았고 김수영 시인은 올해로 40주기를 맞고 있다.*김수영 (1921~1968) 서울출생
시집 <거대한 뿌리>, <달나라> 등, 현실 비판과 저항시를 주로 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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