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뜻이 맞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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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뜻이 맞지 않으니
  • 정문섭 전 농식품부 고위공무원
  • 승인 2018.12.26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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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방예(圓鑿方枘)

圓 둥글 원
鑿 구멍 조 끌 착
方 모 방
枘 자루 예

둥근 구멍과 각진 자루는 틀어져 어긋나 들어가기 어렵다. 즉 사물이 서로 맞지 아니함을 비유한다.

젊은 시절부터 대통령 만들기에 열성을 다해 오던 S의원이 마침내 입각하였다. 하지만 겨우 1년을 좀 더 채우고 자리를 내놓았다. 그간 바쁘다는 핑계를 대던 그가 친목모임에 오랜만에 얼굴을 내밀었다.

“처음에 ‘소신껏 잘해보라’는 격려에 힘을 얻었지. 하지만 취임하자마자 현장에서 많은 일이 터져 그곳을 쫓아다니느라 차관과 국장들로 부터 제대로 보고를 받지도 못한 채 한 두 달이 그냥 훌쩍 가 버리데.”
“그래. 장관 소신대로 잘 되던가?”
“소신이라…, 그곳은 그야말로…. 복잡다단하고 치열한 삶의 현장이었지. 돈을 좇는 자들과 이 돈을 좀 더 많이 내놓으라는 사람들 간의 싸움터였다네. 여론들마다 방향이 제각각이고 청와대의 의중과 관료들의 생각이 뒤엉키다보니 나중에는 내 소신이 뭔지도 모르겠더군.”
“그래도 최소한 2년은 채웠어야 하지 않은가?”
“맞아, 하지만 기본적으로 성장이냐 분배냐를 놓고 여야 간 또 보수와 진보 간 여전히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정치현실 속에서, 게다가 실타래처럼 얽인 현장과 윗선, 나의 소신, 그리고 관료들의 처방이 첨예하게 다투는 그런 소굴에서 어떻게 적절한 방책을 마련할 수 있겠어? 조금이라도 한쪽으로 기울기만 하면 여론부터 시작해서 다들 ‘물러나라’고들 큰 소리를 쳐대니…, 결국 자의반 타의반이 되고 말았지.”
“잘된 거야! 도저히 서로 맞추어 나갈 수 없는 ‘원조방예’한 그런 정치판 소굴을 벗어났으니, S의원. 축하하네. 건배!”
사마천은 《사기》의 굴원·가생(屈原·賈生)열전에서 충신이었던 굴원의 원통함과 억울함을 그의 시를 통하여 토로하였다.
굴원(屈原)은 전국시대 후반 초나라 왕족의 한 사람으로 나라의 흥망성쇠의 도리에 밝고 문장에도 능했다. 왕과 국사를 의논하고 왕의 빈객을 맞이하고 제후를 응대하게 하는 등 회(懷)왕의 신임이 컸다. 왕이 굴원에게 법령을 만들도록 명하였는데, 당시 굴원을 시기하던 상관대부(上官大夫) 근상(靳尙)이 그가 열심히 만든 법령의 초고를 빼앗으려다 거부당하였다. 이에 앙심을 품은 근상이 참언하였다.
“굴원은 법령을 나올 때마다 굴원이 모두 자기의 공이라 자랑하고 자기가 아니면 법령을 만들 수 없다고 자부하고 다닌답니다.”
질투심이 난 왕이 듣고 굴원을 멀리하였다. 이때 굴원이 억울하고 원통한 마음을 갖고 나라를 근심하며 《이소(離騷)》라는 글 한 편을 지었다.
그 후 이어진 경양왕(頃襄王)의 동생으로 영윤(令尹)이 된 자란(子蘭)이 또 굴원을 중상하여 내쫓았다. 억울하게 강남으로 유배를 당한 굴원이 《회사(懷沙)》라는 부(賦)를 지어 읊었다. 울분을 참지 못한 굴원이 마침내 돌을 끌어안고 멱라수에 투신하였다.
굴원이 죽은 후, 제자 송옥(宋玉)·당륵(唐勒)·경차(景差) 등이 문장을 좋아하고 시를 지어 명성을 높였지만, 왕에게 충언을 하는 자가 없어 결국 초는 날로 쇠약해져 진에 멸망당했다.
 
궁정시인 송옥이 스승 굴원에 동정심과 왕에 대한 억울한 마음을 《초사(楚辭)》에 수록된 ‘구변(九辯)’에서 이렇게 나타냈다. ‘둥근 구멍에 네모난 자루를 끼우니, 나는 둘이 서로 맞지 않아 끼우기 어렵다는 걸 원래 알았다네.’ 그 후 이 말은 굴원의 충성스런 정치적 식견과 간사한 신하들의 의견이 본질적으로 서로 맞지 않아 화합할 수 없다는 것을 비유하는 ‘원조방예’라는 성어로 만들어졌다. ‘방예원조(方枘圓鑿)’라고도 한다. 비슷한 말로 ‘방저원개(方底圓蓋)’, ‘원공방목(圓孔方木)’ 등이 있다.
* 단오절(端午節) : 앞서 말한 대로 굴원이 강물에 몸을 던진 뒤, 사람들이 배를 타고 사방으로 그의 시신을 찾았지만 발견할 수 없었다. 이에 사람들은 대나무 통에 찹쌀밥을 넣어 강물에 뿌리고 북을 치며 용주(龍舟)를 저어 강의 물고기들을 쫓아 자신들이 숭배하는 위대한 충인 굴원의 시신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했다고 한다.
후세 사람들은 이처럼 굴원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그가 강에 몸을 던진 음력 5월 5일(기원전 278년)을 제일(祭日)로 만들었다. 오늘날 중국인의 사랑을 받는 명절 단오절이다. 이날 사람들은 용머리로 장식한 용주를 타고 강을 건너는 시합을 벌이고, 또한 갈댓잎으로 싼 쭝즈(粽子, 종자)를 빚어 강에 던지는 등 충신 굴원을 기리는 행사를 대대적으로 개최한다. 우리나라의 단오절과는 사뭇 다른 의미의 명절이다.
* 굴원의 작품 : 굴원은 왕이 아첨하는 무리를 가까이 하고 바른 선비를 멀리하는 것에 대하여 가슴 아프게 생각하고 자신의 억울한 평생을 읊은 장편 서사시 《이소》를 지었다. 이 시는 중국 ‘사부(辭賦, 산문에 가까운 운문)’의 원조가 되었고, 중국 최초의 시인이라는 호칭을 얻게 하였다. 또한 문학성이 뛰어나고 나라에 대한 절절한 충심이 잘 표현되어 있어 후대에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밖에 굴원은 《천문(天問)》·《구가(九歌)》·《구장(九章)》·《어부사》·《귤송(橘頌)》·《회사(懷沙)》 등 작품을 남겼다. 《초사》는 굴원·송옥·경차 등 초나라 사람들이 지은 사부와 한나라 사람들의 모방작을 모아놓은 것으로, 전한시대 유향(劉向)이 편찬했다. 지방의 풍물을 많이 묘사하여 짙은 지방색채를 띠고 있다.

필자 : 정문섭

· 적성 고원출신
· 육군사관학교 31기
· 중국농업대 박사
· 전 농식품부 고위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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