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에서서(45)/ 그 해, 그 이듬해 소한 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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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에서서(45)/ 그 해, 그 이듬해 소한 풍
  • 선산곡
  • 승인 2019.01.10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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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신년 벽두에 눈이 내렸다. 개똥이가 떠나버린 날이었다. 그를 마지막 본 것은 코스모스가 무리지어 피기 시작하던 지난 가을이었다. 이름도 모르는 깊은 산, 어느 병실에서 그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늘 보기 좋았던 그의 웃는 모습, 한바트면 울음이 터질 뻔했던 이유는 그 웃는 모습 때문이었다. 창밖의 햇살이 너무 투명해서 싫었다. 새해 첫날, 그 생각을 하며 술잔을 들었다.

 

한때 정열을 안고 / 살았던 목숨 / 한숨의 재가 되기 위하여 / 저기 어디에 너는 누웠나니 / 나는 무엇을 기다리며 / 이렇게 술잔을 드는 것인가 / 셈으로 맞은 새해 / 창밖은 눈이 내리고 / 창밖은 눈이 날리고 / 세상은 침묵하고 있나니 / 눈물 한 방울 / 너의 가는 길 어디에 뿌려 / 나는 살아 있는 자가 되는 것이냐

다음날, ‘1월 2일 금요일 비설 점점(飛雪點點)’ 날씨의 표현이었다. 잠시 집으로 돌아오는 먼 길, 한숨이었다.

눈 덮인 / 첩첩 산 / 혈맥 같은 길을 따라 돌아오는데 / 저 눈발 같은 한 점 / 세상의 티끌 하나로 너는 가는 구나 / 세상의 불꽃 하나로 너는 사라지는 구나 / 세상의 티끌 하나로 나는 이 자리에 남아 / 세상에 단 하난 듯 한숨 쉬는구나

마지막 날이었다. 눈발이 보였다. 사람들의 마음은 날씨보다 더 춥기만 했다.
날은 흐렸어라 / 눈발은 흩날리고 / 사람들은 추웠어라 / 뜨거운 심장을 얼음으로 태우고 / 너는 눈발로 휘날리고 있는 것 / 너는 재가 되어 그렇게 / 흩날리는 것이냐 / 네가 가는 길에 내리는 눈 / 실은 내가 가는 길에 내리는 눈 // 사람들은 남아 / 추억으로 한 잔의 술을 삼키고 / 한 조각의 미소를 흘리고 / 짧았던 네 운명을 이야기하지만 / 그것은 망각을 위한 몸부림일지니 / 그렇게 망각하는 것이 / 이 한날 살아가는 사람의 길일지니 // 연기는 하늘로 오르고 / 하늘은 연기를 삼키는데 / 비집고 나오는 울음을 삼키고 / 겨우 돌아서는 내 등 뒤에서 / 너는 어찌 나를 / 나를 부르는 것이냐 // 내 이승에 더 머물러 / 상심 하나씩 지워가며 / 세월을 딛겠지만 / 그 망각을 위해 나는 / 얼마나 많은 미명(微明)을 기다려야할까

개똥이는 한줌 재가 되었다. 한줌 재가 되는 시간을 기다렸다. 한줌 재가 되는 운명을 하늘이 알았는지, 한줌 눈을 뿌려주었다. 그 시간만큼만 나도 눈발이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딱 한 해가 흘렀다. 딱 1년 만에 허무하게 실(室)이 개똥이를 뒤따라갔다. 개똥이가 울고 있었다. 그 울음이 내 눈에 보였다.

하늘은 이승에 있는데 / 네가 있는 곳 또한 / 거기란다 // 끝나지 않았음을 아는 것은 남아있는 / 사람들의 몫이라지만 / 어찌 / 바람 앞에 다시 / 네 이름을 드러내는지 / 모를 일이다 // 꽃길 만들어 놓았느냐 / 얼룩진 상처 / 이우는 손길로 너는 / 기다렸느냐 // 한때의 정열은 / 마른 잎 바스러지듯 허무한 것들이지만 / 그곳에서 / 위로할 말이라도 준비해 두었다면 / 저 흐린 공간 / 그 어느 곳이냐 // 너의 님 / 이젠 그림자도 없는데 / 무엇이 남아 네 앞에 서는지 / 알 수 없는데 / 그 님을 기다리는 너는 / 지금 어디 서 있는 것이냐

그 해 무슨 할 말이 있다고 나는 <바람이 나무에게>를 외쳤을까. 해마다 신년 소한 무렵이면 내 마음이 바스스 떤다.

나뭇가지에 걸린 내 상심은 / 차라리 따뜻한 것이었을 게다 / 생각을 지우려 / 바라 본 / 창밖 / 바람이 보였지 / 절기 소한(小寒) 풍(風) / 그렇잖아도 골다공증 있다는 내 뼈에 / 바람만 숭숭 스며들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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