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인물(0) 태백산맥과 백두대간, 그리고 《산경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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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인물(0) 태백산맥과 백두대간, 그리고 《산경표》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19.01.10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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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순창에서는 ‘문화해설사와 함께 떠나는 순창문화여행’에 이어 ‘순창 인물 열전’을 새로 연재합니다. 첫 번째 순서는 우리 선조들의 전통적인 지리 인식 체계를 집대성한 조선후기 최고의 지리학자 여암 신경준입니다. 여암 신경준을 소개하기에 앞서 현행 각종 교과서에 실려 있는 지리 인식과 선조들의 전통적인 지리인식을 소개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순창 인물 열전’은 2주에 한 번 연재합니다. <편집자>

 

▲(우)산맥도. 땅 속의 지질구조를 기준으로 그렸다. 산맥은 강에 의해 여러차례 끊기고 실제 지형에 일치하지 않는 인위적인 선이다.

태백산맥의 탄생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산맥 분류 체계는 전통적인 산맥 분류 체계가 아니다. 동경제국대학의 고토 분지로(小藤文二郞)라는 지질학자가 제시한 개념이다. 우리가 서 있는 땅 위의 지형이 아니라 땅 속의 지질구조(地質構造)를 바탕으로 분류한 것이다.
그런데 산맥의 개념을 찾아보면, 두산백과사전에는 ‘산맥이란 산지나 산봉우리가 선상(線狀)이나 대상(帶狀)으로 길게 연속되어 있는 지형’이라고 정의돼 있다. 일본 지리학사전에도 ‘산맥이란 산정(山頂)이 거의 연속해서 길게 선상으로 연결된 것’이라고 적혀 있다.
고토 분지로는 일본 지리학사전에도 나와 있는 산맥의 개념을 정면으로 뒤집으면서 한반도에서 새로운 산맥 개념을 정립했다. 1903년에 펴낸 그의 ‘조선산악론’을 통해서다. 그는 이 책 서문에서 266일 동안 망아지 4마리와 인부 6명을 데리고 하루 20킬로미터씩 답사했다고 적고 있다. 1901~1902년까지다. 일본의 제국주의적 야욕이 노골화 되지는 않았지만 자원 수탈을 위해서 정보를 수집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니 그의 답사는 그 일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반도의 자원을 침탈하기 위한 목적으로 땅 밑의 같은 지질이 연속된 지형을 파악하고, 거기에 산맥 이름을 붙였다는 설명이다.
우리나라의 초ㆍ중ㆍ고 각종 사회ㆍ사회탐구 교과서에는 “한반도는 태백산맥을 중심으로 14개의 산맥으로 구성돼 있다.”, “태백산맥은 동해안 쪽으로 치우쳐 남북으로 뻗어있는 험한 산맥으로 우리나라의 등뼈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고 실려 있다. 또한 고토가 정립한 지리교과서는 "태백산맥은 한반도의 최장산맥으로 척량산맥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높고 크고 험한 우리나라의 기둥산줄기라는 것이다. “태백산맥은 우리나라를 동서로 가르고 있다”고도 말한다.
태백산맥이 "한쪽으로 치우친 등뼈"라는 것과 "나라를 동서로 가른다"는 주장은 자체로 충돌하는 모순이다. 일반적으로 '동서로 가른다'는 표현은, 나뉜 동과 서가 어느 정도 세력균형을 이룬다는 사실을 전제하는 것이다. 그뿐인가. 태백산맥 그림을 보면 동서균형은 고사하고 나라를 가르기에 턱없이 모자라는 길이의 왜소함이 눈에 띈다. 나라 길이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이다.

《산경표》우리 고유 지리인식 체계 대표

백두대간이란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두류산~금강산~설악산~오대산~속리산을 거쳐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큰 산줄기를 말한다. 백두대간의 개념을 처음 사용한 인물은 도선국사(道詵國師)로 알려져 있고, 백두대간이란 용어는 조선 중기 이익의 《성호사설》에서 처음 등장한다. 이어 조선 후기 지리서인 신경준(순창 남산마을 출신)의 《산경표(山經表)》에서 한반도 산줄기와 갈래, 그리고 산의 위치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백두대간, 장백정간과 13개 정맥으로 산줄기에 위계를 부여하고 체계화 하여 산의 계통을 족보식으로 정리했다.
《산경표》에 나타난 산맥 체계의 특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산줄기의 맥락과 명칭을 체계화 하였다. 즉, 산줄기를 1개의 대간과 1개의 정간, 13개의 정맥으로 분류하고 이름을 부여했다. 둘째, 산맥의 체계가 하천의 수계(水系)를 기준으로 나누어져 있는 점이다. 산줄기의 이름이 그것을 잘 보여주는데, 호남정맥은 영산강과 섬진강을 구분하는 등 주요한 하천이 기준이 되어 있는 것이다. 셋째, 대간, 정간, 정맥 등으로 산줄기에 위계성을 부여한 점이다. 간은 줄기이고, 맥은 줄기에서 흘러나간 갈래라 할 수 있다. 넷째, 산과 산의 분포, 위치를 줄기 또는 맥으로 파악하여 끊어짐이 없이 이어지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다섯째, 백두산이 국토의 중심 또는 출발점으로 인식되어 있는 점이다. 《산경표》로 대표되는 조선의 산줄기 체계는 적어도 1900년까지 조선의 공인개념으로 사용되어 왔다.

백두대간은 지리학, 태백산맥은 지질학

1903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우리에게 상식처럼 각인된 산맥 개념에 정면으로 이의를 제기한 사람이 1980년도 초, 고지도 연구가 이우형 씨다. 이 씨가 복원해낸 《산경표》는 조선 영조 때 신경준이 편찬한 《산경표》가 기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산경표》를 찾아냄으로써 잊힐 뻔한 우리 민족 고유의 지리 인식 체계를 복원해냈다면 이를 세상에 널리 알린 이는 의사이자 산악인인 조석필 씨다. 1993년 조씨는 《산경표를 위하여》라는 책을 펴냈고, 이를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보완한 《태백산맥은 없다》를 1997년 4월 펴냄으로써 백두대간이 비로소 세상에서 빛을 보게 만들었다. 그 결과 1990년대 후반부터 일기 시작한 백두대간 종주가 요즘은 종주 등산객들의 상징처럼 되었다.
초기에 백두대간의 부활이 산악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산행이나 등산을 통해 이 땅을 속속들이 알고 싶어 한 산악인들의 열망은 태백산맥, 소백산맥 종주 같은 종주 산행으로 이어졌다. 태백산맥 종주는 태백산맥이 백두대간의 일부와 낙동정맥을 이어놓은 것이므로 거의 의심이 없었다. 하지만 소백산맥을 종주하려던 사람들에게는 상황이 달랐다. 예를 들어 전남 광양의 백운산은 지리산을 지척에서 서로 바라보고 있지만, 소백산맥을 따라가서는 지리산을 가 닿을 수 없다. 하지만 호남정맥을 따라가면 멀지만 닿을 수 있다.
상식적으로 볼 때, 백두대간은 보이는 것 중심이니 지리학에서 다루고, 태백산맥은 보이지 않는 지질 구조 중심이니 지질학에서 다뤄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태백산맥은 지리학의 자리까지 차지하고 앉아 있고, 백두대간은 제자리를 잃고 잊혀 왔다. 일제 식민정책의 정신적 유산들과 잔재를 이제라도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 어느새 1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림재호 편집위원

자료출처 : 백삼현의 바깥세상
사진자료 : 네이버 블로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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