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푸른 도포 입고 갓 쓴 학생들 …‘훈몽재’ 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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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푸른 도포 입고 갓 쓴 학생들 …‘훈몽재’ 강학
  • 박진희 기자
  • 승인 2019.01.23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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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유학 맥 잇고 호남사람 자부심 높아지길/ 국제적 유학 산실로 인정 … 중국유학생 방문

 

▲훈몽재 전경.

어린 학생부터 대학생들까지 많은 학생들이 올 겨울방학에도 어김없이 우리 전통교육의 맥을 이어가기 위해 훈몽재(산장 김충호, 훈장 유승훈)를 찾았다.
지난 17일(목)에는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수료하기 전에 암기와 문답으로 시험을 치르는 강회가 열렸다. 선현들이 강학을 하고 열흘마다 한 번씩 강회를 열어 점검하고 한 단계씩 올라간 방식과 같이 학생들도 점검의 시간을 가졌다.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이 강의실에 모여 푸른 도포를 걸치고 갓을 쓴 채 진지한 자세로 강회에 임했다.
이날 강회를 맡은 고당 김충호(73) 산장은 강당에 모인 학생들에게 “대나무를 보면 백척간두로 크는데 한 번에 자라는 것이 아니라 밑에서부터 한 마디씩 자라는 것이니 공부도 한 번에 장대 뛰기 해서 되는 법이 없다”며 “차근차근 순서를 따라 축적해 가야 대성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 “불교에는 법회가 있고 기독교에는 목회가 있듯이 유학에는 강회가 있다”고 설명했고, “배웠던 것 불러주면 잘 외워 봐라”며 강회를 시작했다. 강회가 시작되자 첫 순서로 지명된 앳된 모습의 초등학생이 여러 학생들과 스승 앞에서 소학의 구절을 한자로 말한 다음 우리말로 풀이해 나갔다. 막히는 부분은 스승의 도움을 받아가며 외웠던 구절을 떠올리기도 했고 참여한 학생들과 스승의 격려를 받으며 소학의 한 구절 한 구절을 읊어 나갔다.
훈몽재에서는 유학 관련학과 대학생들이 대상인 유학전문반, 방학 또는 주말 동안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예절교육, 직장인을 대상으로 선비의 삶을 재조명하는 성인반, 여성의 역할 및 애경사(슬픈 일과 경사스러운 일)에 갖추어야 할 예절 등을 가르치는 여성반을 열어 유학을 전파하고 있다.
유학의 본모습을 보유하면서 후학들에게 전수하려는 노력이 중국까지 알려져 2017년부터는 중국 학생들이 오기 시작했다. 주자학연구소가 있는 남창대학과 주렴계연구소가 있는 호남성의 과기학원 학생 등 유학에 관심이 많은 학생들이 다녀갔다. 중국에서 온 학생들은 보통 열흘 정도 머물다 가는데 아침, 저녁으로 문안인사를 하고 낮에는 중국에서 유래한 유학을 훈몽재에서 체험하고 돌아갔다.
훈몽재는 조선 중기의 도학자인 하서 김인후(1510~1560) 선생이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1548년에 점암촌(현 쌍치면 둔전리)에 지은 강학당으로, 훈몽이라는 이름은 어린이를 가르친다는 뜻이다. 하서 선생은 인종 임금이 세자 시절 스승을 지냈으나, 인종이 세상을 떠나고 문정왕후의 동생인 윤원형 일파가 을사사화(1545)를 일으키자 벼슬을 그만 두고 처가가 있는 순창으로 내려와 후학을 가르쳤다. 송강 정철, 금강 기효간, 월계 조희문, 고암 양자징 등이 훈몽재에서 수학한 대표적인 제자들이다. 하서는 호남출신으로 유일하게 문묘에 배향된 조선 중기 대표적인 성리학자다.
하서 선생이 훈몽재를 처음 지은 곳은 대학암 위쪽이었다고 하며, 임진왜란 때 소실돼 5대손인 자연당 김시서에 의해 1680년 원래의 터 인근에 자연당이라는 이름으로 복원되었다가 퇴락하였다. 이후 후손과 유림들에 의해 점암촌에 복원되었고, 더불어 하서 선생과 김시서, 정철, 이이를 모시는 어암서원이 부근에 건립되었으나, 고종 5년(1867년)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에 의해 철폐되었다. 1951년 한국전쟁 때 불타 없어졌으나, 2005년 전주대학교 박물관의 발굴조사를 통해 원래 유지를 확인하여, 군에서 2009년 11월 하서 선생의 학문적 업적과 정신을 후세에 전승 발전시키며 전통문화 교육장으로 활용하려고 현재 위치에 중건하였다.
군은 하서 선생이 최초 훈몽재를 지은 곳으로 알려진 곳에 강학당을 복원할 계획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발표되지는 않았다고 한다.
김충호 산장은 “훈몽재 유지에 강학당이 복원되면, 군이 기존에 있던 자연당과 강의하던 곳을 숙박시설로 이용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서 “하서의 자손들이 대지를 사서 군에 납부해서 복원하고 강학으로 문을 연지 10년째 되는 훈몽재를 순수하게 하서 선생이 강학을 했던 곳으로만 여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숙박시설은 얼마든지 풍경 좋은 곳에 지을 수 있는데 굳이 훈몽재를 숙박시설로 이용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훈몽재가 원래의 성격에 맞게 보존 되기를 바랐다.
김 산장은 작년에 중국유학생들까지 받으면서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부족한 예산을 채우기 위해 후손들한테 기부를 받아서 행사를 치렀고, 중이 탁발하듯 동냥해서 지원금을 모으는 것이 어려워 군에 그간의 사정을 말해 올해부터 부족한 부분을 지원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 산장은 후손들의 기부와 군의 지원을 끌어내 훈몽재를 지키는 이유는 “호남사람들이 하서 선생과 훈몽재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자기들 문화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길 바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외세 문화가 100년 동안 지배하면서 우리 문화를 통째로 잃어버렸다”면서 “얼마 남지 않은 우리 문화를 잘 살려나가 호남에도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 되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학생들이 훈몽재에서 강회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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