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경지신(骨骾之臣), 목에 걸린 생선가시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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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경지신(骨骾之臣), 목에 걸린 생선가시 같은
  • 정문섭
  • 승인 2019.02.14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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骨 (뼈 골), 骾 (생선뼈 경), 之 (갈 지), 臣 (신하 신)

《사기》 자객열전에 나온다. 생선가시와 같은 신하라는 뜻이다.

모 대통령 시절, K는 청와대 비서관으로 일했다. 오랜 기간 과천청사의 한 부처에서 일하면서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아 발탁된 것이다. 근무 얼마 후 소신을 잘 말하는 비서관으로 이름을 날리었다. 수석 비서관에게 좋은 건의를 할 뿐 아니라 정직하고 직언을 자주 하여 윗분들 특히, 당시 비서실장도 눈여겨보았다. 그러나 다른 수석이 오면서부터 그의 직언은 오히려 ‘대든다.’는 평가를 받아 원 부처로 복귀하게 되었다. 물론 한 계급이 올라가긴 했지만 이후 이어진 정권에서도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했다.

8-9년이 지난 후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다. 예전 비서실장이었던 그 분이 ‘옛적 당신의 소신과 직언이 인상에 남는다.’는 말을 하였다는 것이었다. 장관 임명장을 받은 날, 그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오랜 인고의 시간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훔쳤다.

그러나 그는 2년이 못되어 하차하였다. 그가 잘못된 소신을 직언하여 윗분이 수용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그의 소신은 좋았으나 윗분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인지, 또는 그가 일을 잘못하였기 때문인지 등등∼, 지금은 아무도 모른다. 그가 ‘골경지신’이었는지의 여부는 한참 후에나 알려지거나 판가름 날 것이기 때문이다.

 

춘추시대 후반, 오의 공자 광(光)이 왕이 되려는 욕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오자서(伍子胥)의 추천을 받아 자객 전제(專諸)를 얻어 그를 빈객으로 후대했다. 9년 후 초의 평왕(平王)이 죽게 되었을 때 오왕 요(僚)가 초의 국상(國喪)을 틈 타 동생 개여와 촉용을 장군으로 삼아 초를 치게 했다. 그러나 초가 출병하여 오히려 오 군대의 퇴로를 끊어버리니 귀환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때 광이 전제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시기를 놓치고 싶지 않소. 무엇으로 보나 내가 왕위에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소.”

“맞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왕 요를 칠 때입니다. 그 어머니는 연로했고 아들은 어립니다. 게다가 두 동생이 초에 출정하였으나 귀환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요는 이처럼 밖으로는 초에 고통을 당하고 있고, 안으로는 병력이 비어있는 데다가 직언하는 강직한 신하(골경지신)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왕 요가 우리 편을 어떻게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요왕 12년, 마침내 광이 연회장 지하에 복병을 숨겨 놓고 요를 초청하여 연회를 열었다. 자객 전제가 생선뱃속에 감추어둔 비수로 왕 요를 찔러 죽였고 전제는 요의 수하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광의 복병들이 올라와 평정하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그가 바로 오왕 합려(闔閭)이다. 합려는 전제의 아들 전의(專毅)를 상경으로 삼았다.

 

이 성어는 훗날 《한서(漢書)》 두주전(杜周傳)에 인용된다. 노종도(魯宗道) 우간의대부참지정사는 매우 강직하여 귀족과 척신들이 모두 그를 꺼려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생선머리 가시와 같다며 ‘어두참정(魚頭參政)’이라 불렀다.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한유(韓愈)는 《쟁신론(爭臣論)》에서 양성(陽成)이 간의대부(諫議大夫)로서 직언해야 할 직무를 다하지 않음을 경계하면서 ‘사방의 사람들과 후대의 사람들로 하여금 조정에 직언하는 골경지신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한다’고 표현했다. 그 2년 후에 양성은 한 무고사건을 사력을 다해 간언하여 그 명성을 회복했다.

 

훗날 사람들은 이러한 고사와 전적(典籍)을 인용하여 이 성어를 목구멍에 걸린 생선가시처럼 듣기에 괴로운 직언을 하는 강직한 신하를 비유하는 말로 사용하였다.

돌이켜보면, 필자도 직언을 해봤지만 돌아온 건 별로다. 그 직언이 윗분의 뜻과 맞으면 칭찬을 받지만, 맞지 않으면 ‘개념이 없는 자’라며 꾸중을 받기 십상이다. 맞더라도 ‘나도 이미 그리 생각했다니까’하면서 김을 빼버리는 윗분도 있다. 이처럼 받아들이는 척하면서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반항아로 취급하는 요즈음의 세태에서 진정한 ‘골경지신’을 얻기는 매우 어렵다. 정말이지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 한 번 있을까 말까한 것이다. 오늘도 대다수는∼, 잘못 찍힐까봐 나서야 할 자리에 나서지 않으며 뒤로 숨어 몸보신이나 하고, ‘중간이나 가면 되지’하며 멈칫거리며, 윗분의 의중이나 살피고 추임새나 넣는 가련하고 멋쩍은 군상들을 보여 주고 있다. 영혼도 없이 말이다.

-정문섭

· 적성 고원출신
· 육군사관학교 31기
· 중국농업대 박사
· 전 농식품부 고위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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