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속시한줄(27) 나는 당나귀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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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속시한줄(27) 나는 당나귀가 좋아
  • 조경훈 시인
  • 승인 2019.02.21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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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그림 : 조경훈 시인ㆍ한국화가, 풍산 안곡 출신

 

나는 당나귀가 좋아

             잠(Jammes Francis)

물푸레나무 긴 울타리를 끼고 걸어가는
순한 당나귀가 나는 좋다.

당나귀는 꿀벌에 마음이 끌려
두 귀를 쫑긋쫑긋 움직이고

가난한 사람들을 태워 주기도 하고
호밀이 가득 든 부대를 나르기도 한다.

당나귀는 수챗가에 가까이 이르면
버거정거리며 주춤 걸음으로 걸어간다.

내 사랑은 당나귀를 바보로 안다.
어쨌든 당나귀는 시인이기 때문이다.

당나귀는 언제나 생각에 젖어 있고
그 두 눈은 보드라운 비로드 빛이다.
마음씨 보드라운 나의 소녀야,
너는 당나귀만큼 보드랍지 못하다.

당나귀는 하느님 앞에 있기 때문이다.
푸른 하늘 닮아서 당나귀는 보드랍다.

당나귀는 피곤하여 가벼운 모양으로
외양간에 남아서 쉬고 있다.

그 가련한 작은 발은
피곤에 지쳐 있다.(생략)

먼저, 이시를 읽고 나면 마음이 포근해진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깨끗한 생각 속에 마음씨 좋은 사람들만 모여 사는 마을에 들어간 느낌이다.
시인의 마음속에는 천진스런 다섯 살 난 아이가 살고 있다. 농사짓는 농부의 마음속에는 늘 가꾸며 살아야 하는 논과 밭의 푸름이 있고, 고기 잡는 어부에게는 늘 파도치는 푸른 바다가 살고 있다.
그런데 이 시를 쓴 ‘잠’에게는 한 마리의 고단한 당나귀가 살고 있다. 아무 소득 없이 남을 위해 일만하는 당나귀, 어찌 보면 바보처럼 살고 있는 당나귀, 그 당나귀를 가슴에 품고 같이 사는 것은 같은 시인이기 때문이라 했다.
당나귀는 일을 많이 해 피곤한 몸으로 외양간에 누워서 “소녀야 너는 오늘 무엇을 했니?” 묻고는 “그래, 너는 바느질을 했지?” 스스로 대답한다.

어떻습니까? 우리가 사는 어떤 모습을 보는 것 같지 않습니까?
5살짜리 아이 마음, 농사짓는 아버지 마음, 고기 잡는 어부 마음, 그리고 죽도록 남을 위해 일 해준 당나귀 마음이 어느 절대자의 신 앞에 가서 서있다면 누구를 먼저 안아 주었을까요. 그래서 이 시는 인간이 갖는 가장 깨끗한 생각으로 쓴 위로의 시라고 했습니다. 20세기의 퐁텐이라 불릴 만큼 순정파 자연시인인 ‘잠’은 프랑스 남서부에 있는 투르네 농가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평생을 살다 돌아갔습니다.

●프랑시스 잠(1868 ~ 1938), 프랑스의 순정파 자연시인, 저서 <아침 종에서 만종까지>, <앵초의 슬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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