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에서서(48)/ 그 옛날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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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에서서(48)/ 그 옛날의 봄
  • 선산곡
  • 승인 2019.02.27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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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눈에 부시다. 봄의 전령은 이 산하를 언제 지나갔을까. 잊고 있었던 듯, 들녘에 가득한 햇살을 보기위해 창문을 연다. 탱자나무 울타리 건너 논둑길에, 긴 신 신은 농부 하나 삽 메고 지나간다. 주변에 깔린 정적이 부서진다. 부서진 정적에 밀려 먼 지평에 아지랑이가 춤을 춘다.
문득 서럽다. 아버지 어머니 무덤 위에 쌓인 눈도 녹았을까. 봄은 혼자서 부대끼는 감미로운 슬픔으로 이렇게 조용히 오는가보다. 어느새 이렇게 봄이 왔구나 하는 애잔한 환희. 기쁘기도 하면서 또한 서러운, 묘하게 어긋나는 감회다.
포플러 빈 나뭇가지에 새 두어 마리가 앉아있다. 가슴 하얀 것이 까마귀가 아닌 까치 같다. 반가운 소식이라도 물어오려나, 한참동안 새들을 바라본다. 내 기억의 끝, 가장 먼 옛날은 봄이었다. 그 봄이 되면 막연하고 그리운 환영에 몸살을 앓는다. 어머니의 치마폭을 휘감아 숨었을 때의 그 달콤한 냄새. 안개인 듯, 먼 산 희미한 아지랑이의 나른한 환상은 서러운 그늘을 지녔다.
앉아있던 까치들이 어디론가 날아간다. 저기 먼 산 보아라. 아슴아슴해 지는 것. 스스로에게 말문을 던진다. 먼 산도 가슴에 남은 환영도 아지랑이처럼 희미한데 나무들은 흰 뼈를 드러내놓고 정연하게 서있다. 그 뒤 사방을 둘러보아도 보리밭 푸른 띠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이 산하.
보리밭은 바람을 보이게 한다. 이른 봄 산 넘어 불어오는 미풍은 밭이랑에서 볼 수 있다. 오뉴월이면 보리이삭 일렁이며 누비고 가는 바람결은 얼마나 풍요로웠던가. 이제 보리농사조차 포기해 버리고 만 농촌에서 그 추억 어린 아름다움은 사치스런 감상이 돼버린 지 이미 오래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바라볼 줄 아는 마음을 길러라.”
그에게 했던 말이었지만 진실은 그와 틀리다. 아름다운 것과 아름답지 않은 것의 차이를 내가 알 수 있었던가. 아름다운 것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서부터 찾아야한다고 나는 감히 말하지 못한다. 마음 속 이기심과 시기, 질투에 뒤범벅이 된 스스로가 언제나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 뒤범벅이 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지금 이렇게 혼자임을 즐기고 있다. 모두를 떠난 척 하면서도 그 모두 안에서 흔들려 있는 부끄러운 내 모습, 그게 요즈음의 내 모습이었고 그 모습 보려고 봄은 지금 이렇게 조용히 오고 있다.

 

그때 밀레니엄을 서너 해 앞두고 있었다. 작은 시골마을, 학교 운동장 앞으로 넓은 벌판이 펼쳐져 있었다. 그 이른 봄의 아늑한 평온함이 주는 서러움. 아침이면 멀리 앉은 산은 희미했고 가까이 선 나무에는 늘 까치가 울었다. 누군가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도 하지 않았던 자리, 강이 띠처럼 두른 마을의 아침은 언제나 아름다웠다. 그 들녘은 지금도 그대로일까. 더딘 걸음으로 그 자리에 다시 선다면 그 옛날의 감회를 되찾을 수 있을까.
모두들 열심히 살았다 해도 그 무렵 함께 했던 이들 적잖이 이 세상에 없다. 떠났다고 패배해버린 것도 아닐 텐데 봄이면 그리움과 아픔이 극명해지는 이유는 남은 자 그림자 볼 수 없기는 마찬가지라는 생각 때문이다. 녹슬어버린 추억 속 그 사람들, 제각각 가쁜 숨을 쉬며 어디선가 살고 있을 것이다.
깊이 숨어있던 짧은 글이었다. 읽고 또 읽으면서 나는 무엇에 밀려와 이 자리에 서 있는가를 생각한다. 잊고 정리하는 계단도 이젠 가파르다. 서러움만 그대로 남았다. 다만 아름다웠지, 그 옛날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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