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속시한줄(28) 강마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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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속시한줄(28) 강마을에서
  • 조경훈 시인
  • 승인 2019.03.07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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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그림 : 조경훈 시인ㆍ한국화가, 풍산 안곡 출신

 

江村(강촌) 강마을에서                -두보

淸江一曲抱村流(청강일곡포촌류) 해맑은 강 한 굽이 마을을 안고 흐르는데
長夏江村事事幽(장하강촌사사유) 긴 여름 강마을에는 만사가 여유롭다
​自去自來堂上燕(자거자래당상연) 절로 갔다 절로 오는 것은 들보 위의 제비요
​相親相近水中鷗(상친상근수중구) 친하고 서로 가까이 하는 것은 물가의 갈매기로세
老妻畵紙爲碁局(노처화지위기국) 늙은 아내는 종이에 바둑판을 그리고
​稚子敲針作釣鉤(치자고침작조구) 어린 자식은 바늘을 두드려 낚싯바늘을 만드네
​但有故人供祿米(단유고인공녹미) 병약한 몸이라 필요한 것은 약뿐이니
​微軀此外更何求(미구차외갱하구) 미천한 이 몸에 더 바랄 것이 무엇이랴

중국에서는 최고의 시성(詩聖)을 두백(杜白)이라 부른다. 이는 두보와 이백을 일컫는 말인데 두보는 당시의 사회와 생활 속에서 보고 느낀 사실을 시로 썼고 이백은 좀 초연한 입장에서 낭만적인 시를 썼다. 그러나 두 사람 다 청렴결백했고 바르게 살면서 정의로움을 사랑했다.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에 늘 불탔고, 또 예술과 자연을 사랑했다.
그러나 두보의 시 시계는 언제나 백성들의 현실 그 생활 속에서 함께했다. 유명한 춘망(春望)의 시에서 엿보듯 “나라는 망했는데도 산하는 여전하구나(國破山河在 城春草木深 국파산하재 성춘초목심)라 썼고 그 외에 ‘빈교행(貧交行)-가난할 때의 사귐’, ‘월야(月夜)-달밤’, ‘곡강(曲江)-굽이치는 강’, ‘북정(北征)-북쪽으로 가며’, ‘병거행(兵車行)-병사들과 같이’ 등 1500여 수의 시와 함께 절창의 시를 남겼다. 이 모든 시들은 당시의 백성들과 함께 겪으며 쓴 시로 중국인들은 그 시대의 역사를 시로 썼다 해서 시사인(詩史人)이라 했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빈부의 격차는 있기 마련이지만 “부잣집에서는 술과 고기가 썩어나는데 길가에는 못 먹어 얼어 죽은 해골이 뒹구네(朱門酒肉臭 路有凍死骨 주문주육취 노유동사골)”라는 시구에 이르면 당시의 사회상을 엿보면서 시인의식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위 강촌에서의 시는 이 고난의 여정 중에서도 온 가족이 평화로운 순간을 보내고 있기에 골랐다. 그러나 마지막 구절 “미천한 이 몸에 더 바랄 것이 무엇이랴”에 이르면 지금도 그곳에 살고 있는 듯 경외스러운 마음이 든다.

※두보(杜甫) 712~770, 중국 당나라 때 시인, 1500여편의 시를 남겼는데 중국에서는 시성(詩聖)으로 불리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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