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백구야!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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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백구야! 잘 가~
  • 강성일 전 순창읍장
  • 승인 2019.03.14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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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일(금과 전원) 전 순창읍장

금과 우리 집 짓는 현장에서 건축자재를 지키던 백구(털이 흰색이라 부른 이름)가 일이 끝나서 떠났다. 백구는 공사를 맡은 사장이 데리고 와서 1년여 기간을 우리와 있었다. 길지 않는 기간이었지만 정이 들었다. 집 지을 때 나는 광주에 있었기 때문에 처음엔 백구를 잘 몰랐다. 집사람은 매일 와서 일하는 분들 간식도, 일도 챙겼지만 나는 열흘에 한번 정도 왔다. 남자 주인이 현장에 있어야 업자와 인부들이 공사를 제대로 한다고 조언을 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이는 직장 다닐 때 경험 때문 이었다.
공무원 생활하면서 곤혹스런 일 중 하나가 민원인이 내용을 알지 못하면서 주변 말만 듣고 짐작해서 자기주장을 할 때였다. 원만하게 대응하는 동료들도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안 되는 민원은 내 딴엔 더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했지만 대부분은 서운하게 생각했고 까칠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집짓는 일이 내겐 큰일이지만 공사에 대해 알지 못하면서 주인이라고 나서고 싶지 않았다. 집짓기는 사장에게 이런 내 마음을 전하면서 돈만큼은 지어달라고 했다. 대신 집사람이 매일 와서 고생을 했고 나는 기회가 되면 일하는 분들에게 밥을 사는 정도였다.
그런 분위기에서 내가 현장을 몇 차례 가니 백구가 나를 알아보고는 꼬리를 흔들었다. 기특했다! 그리고 묶여만 있는 백구가 애처롭게 보여 물도 떠주고 간식도 주기 시작했다. 외로웠는지 내가 가면 팔짝팔짝 뛰며 반겼고 만져 주는 걸 좋아했다. 우리는 그렇게 교감을 했다.
백구가 현장에 온지 얼마 있다 새끼를 뱄다. 묶여있는 백구의 발정을 눈치 챈 동네 수캐가 와서 아빠가 되었나 보다. 작년 여름부터 젖꼭지가 커지더니 10월엔 자기를 닮은 흰둥이를 5마리나 낳았다. 백구는 진돗개 정도의 크기인데 아빠로 추정되는 개는 몸집이 커서 새끼들도 골격이 좋았다. 대신에 젖을 물리는 백구는 점점 수척해졌다. 아빠 개는 한 번도 와보지 않았다. 묶여있는 백구 혼자 새끼를 키웠다. 나로서는 개 간식을 사서 주는 것이 애잔한 백구를 위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새끼들은 무럭무럭 자랐고 간식 주기도 쉽지 않았다. 흰색 강아지가 5마리나 되니 어떤 애를 주었는지 구분이 안됐다. 서로 먼저 먹겠다고 한꺼번에 달려들면 내가 밀리기도 했다. 약하고 작은 새끼부터 우선 줬다. 어미 백구는 측은해서 많이 줬다. 간식을 줄 때 백구에겐 한 번도 손이 물리지 않았다. 받아먹는 타이밍이 정확하고 노련했다. 새끼들은 간식을 들고 있는 내손을 덮쳐서 가죽 장갑에 구멍이 나기도 했다.
우리 방에서 백구와 새끼가 있는 곳 까지는 10여 미터 정도 거리라 다 보고 들을 수 있었다. 백구의 모성은 강했다. 새끼들과 놀면서도 훈련을 시켰다. 우리 집이 산과 연접해서 밤에는 산짐승이 오곤 했다. 어느 날 이슥한 밤에 백구 짖는 소리가 날카롭게 들렸다. 기괴한 짐승 소리도 들렸다. 묶여있는 백구가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대치 하는 것 같았다. 깊은 밤이라 나가지는 못하고 창문을 열고 소리쳐 백구를 응원하니 산짐승이 갔는지 조용해졌다.
그 뒤에도 몇 차례 더 그랬다. 그때마다 창문을 열고 응원 해줬다. 묶여 있지만 새끼를 한 마리도 잃지 않고 키워냈다. 그리고 사랑을 받으면 꼭 보답을 했다. 내가 가서 쓰다듬고 간식을 주면 내 얼굴에 격렬하게 뽀뽀를 했다. 처음엔 물릴까봐 걱정을 했지만 백구의 순한 눈빛을 보면서 긴장을 풀었다. 집사람은 나를 ‘개아저씨’라고 놀리기도 하면서 백구와 새끼들을 예뻐했고 배설물도 치워줬다.
공사가 끝나서 백구가 떠날 때가 되었다. 마음이 울적했다. 이별의 간식을 넉넉히 주면서 말했다. 다음 생엔 사람으로 태어나서 네 의지대로 살아라. 묶여 살지 말고… 꼭~~ 안아주고 돌아오는데 백구 울음소리가 들렸다. 1년여 동안 같이 있었지만 처음 듣는 울음소리였다. 본능적으로 헤어진다는 것을 아는 것 같았다. 발길을 돌려 바라보니 백구의 눈에는 눈물과 함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내 마음도 젖어 들었다. 나는 백구를 연민으로 대했지만 백구는 나에게 신뢰와 사랑을 보여 주었다.
“백구야! 아프지 말고, 배고프지 말고 살거라~! 좋은 추억 고맙다! 네 모습 오래 기억 될거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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