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신탄탄/ 의리만이 능사가 아닌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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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신탄탄/ 의리만이 능사가 아닌 것을
  • 정문섭 박사
  • 승인 2019.03.14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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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漆 옻 칠, 身 몸 신, 呑 삼킬 탄, 炭 숯 탄)
정문섭이 풀어 쓴 중국의 고사성어 193

《사기(史記)》 자객열전(刺客列傳)에 나온다. 몸에 옻칠을 하고 숯을 삼키다.

 

모시던 윗사람이 감옥에 들어갔을 때 끝까지 곁을 지키며 모든 것을 자신이 짊어지고, 검찰에서 ‘내 선에서 처리된 사건이며 윗선은 없다.’며 스스로 경찰에 출석했던, 하지만 그 후에 결국 징역을 살았던 J라는 사람이 생각난다.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의리의 사나이'로 회자되었었다.

최근 두 전직 대통령이 구속된 가운데, 그 주위의 모습이 많이 상이하여 주목을 끌고 있다. 한 사람에 대하여는 요란한 플래카드와 더불어 수십 명씩 떼를 지어 다니며 ‘000를 석방하라’고 외치는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다른 한 사람에 대해서는 이른 바 최측근이라는 사람들마저 자발적으로 나와 그의 죄를 고발하며 증언하여 사면초가에 빠지게 하였다.

이제 그 측근들의 태도가 이처럼 다른 것을 보노라니, 오늘 소개하는 고사성어 ‘칠실탄탄’이 꼭 ‘의리’로만 여겨져야 할 것인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춘추시대 말, 북방 강국이었던 제후국 진(晉)은 왕권이 약해 육경(六卿 : 범范, 중항中行, 지백智伯, 조양자趙襄子, 한강자韓康子, 위선자魏宣子)이 국정을 담당하고 있었다. 6경 중 범씨와 중항씨는 먼저 멸망했고, 나머지 네 사람이 세력 다툼을 벌이게 되었다. 그중 세력이 가장 강한 지백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나머지 셋에게 토지를 할양할 것을 요구했다. 힘이 약한 한강자와 위선자는 이에 굴복하여 토지를 할양했으나 조양자는 거절하였다. 이에 지백이 조양자를 공격했고 조양자는 완강하게 버티었다. 조양자는 오히려 한과 위를 설득한 후 연합군을 형성하여 지백을 멸망시켜 버리고 그의 땅을 셋이 나눠가졌다. 이로써 진은 조나라·한나라·위나라로 나뉘어 삼진(三晉)의 땅으로 불리게 되었다.

예양(豫讓)은 능력이 출중한 사람으로서 처음에는 범씨와 중항씨를 모셨으나 명성이 오르지 않으므로 지백을 섬기게 되었다. 지백이 그를 존경하고 총애하였다. 조양자가 지백을 죽이고 그 두개골에 옻칠을 하여 술잔으로 사용하였다는 말을 들은 예양이 분개하여 한탄하였다.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하여 죽고, 여자는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용모를 꾸민다고 들었다. 지백은 나를 알아준 사람이다. 내 기필코 원수를 갚고 죽어서라도 이를 지백에게 알려 준다면 내 혼백도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그는 이름을 바꾸고 죄인의 무리에 몸을 숨겨 조양자의 궁에 들어가, 비수를 품고 변소의 벽을 칠하는 일을 하면서 그를 죽일 기회를 찾고 있었다. 조양자가 변소에 가다가 갑자기 살기를 느껴 수색을 한 결과, 비수를 품고 있던 예양을 잡았다. 심문 결과 지백을 위해 원수를 갚으려고 한다는 예양의 대답을 듣고 그의 의기를 높이 사 풀어 주었다.

얼마 후, 예양이 몸에 옻칠을 하여 문둥이처럼 꾸미고 숯을 머금어 벙어리가 되어 남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모습을 바꾸고,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며 걸식을 하면서 복수의 기회를 찾았다. 그의 부인조차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는데 한 친구가 예양을 알아보고 울며 권했다.

“먼저 조양자의 신하가 되어 그의 신임을 받은 후에 복수를 하면 어떻겠는가?”

“남의 신하가 되어 두 마음을 품을 수는 없네. 내가 이러는 것은 천하 후세에 남의 신하된 자들이 두 마음을 품고 주인을 섬기는 자를 부끄럽게 해주기 위해서라네.”

그 후 얼마 안 되어 조양자가 외출을 했는데, 예양은 그 길목의 다리 밑에 숨어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조양자가 다리에 이르자 갑자기 말이 놀랐다. 이번에도 예양은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잡혔다. 조양자는 그의 충정에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그대는 일찍이 범씨와 중항씨를 섬겼고 지백이 이 둘을 멸망시켰다. 너는 그 복수는 하지 않고 오히려 예물을 바치고 지백을 섬겼다. 이미 지백이 죽었는데도 어찌하여 그를 위하여 이토록 끈질기게 복수를 하려 드느냐?”

“범씨와 중항씨는 나를 범인(凡人)으로 대하였기에 나도 그들을 범인으로 대우하였을 뿐이다. 하지만 지백은 나를 한 나라의 선비로 대우하였소. 그래서 그에게 한 나라의 선비로서 보답하려는 것이오.”

“그대가 지백을 위해 충성한 것은 이미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내가 그대를 석방하는 것도 이미 충분하였으니, 더 이상 그대를 용서할 수가 없구나.”

“명군은 남의 아름다운 이름을 숨기지 않고, 충신은 이름과 지조를 위하여 죽는 의로움이 있다는 말을 들었소. 이전에 당신이 나를 관대하게 용서한 일로 천하 사람들 가운데 당신의 어짊을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게 되었소. 오늘 일로 나는 죽어 마땅하나, 다만, 당신의 옷을 얻어 그것을 내가 칼로 베어 원수를 갚으려는 뜻을 이루도록 해 준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소. 이것은 내가 감히 바랄 수 없는 일이지만, 내 마음속에 있는 말을 털어놓은 것일 뿐이오.”

조양자가 그를 의롭게 여겨 자기 옷을 예양에게 내주었다. 예양이 칼을 빼들고 세 차례 뛰어 올라 옷을 벤 후 외쳤다.

“나는 이 일을 지하에 계신 지백님에게 보고하리라.”

바로 칼에 엎드러져 자결했다. 조나라의 뜻있는 선비들이 이 말을 듣고 모두 눈물을 흘렸다.

 예양이 자기를 알아준 지백의 원수를 갚기 위해 온 몸에 옻칠을 하고 숯을 먹어 벙어리가 되면서까지 자신의 모습을 바꾼 데서 유래하여 후세 사람들에 의해 ‘칠신탄탄’이라는 성어가 만들어졌고, 은인을 위해서라면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해내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자기가 한때 모셨던 보스를 위해서 ‘의리’를 가진 사람들을 영화나 드라마에서 미화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보스가 분명히 나쁜 죄를 지었고 그에 일조하여 무조건 복종하고 따름으로서 그 죄가 더 커졌다면, 사실상 우리가 지켜오고 또 지키고 싶은 ‘사회정의’를 무너뜨린 원흉이다. 더욱이 다수의 일반국민들에게 큰 피해를 줬다면, 그 자는 당연히 같이 죗값을 단단히 치러야 하는 사람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사람들마다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에 따라 이론이 있을 수 있겠지만, 아마도 우리사회가 원하고 바라는 것은 그 보스가 뭔가 잘못하여 나쁜 죄를 지을 경우 그를 따르던 사람은 이를 거부해야 할 뿐만 아니라 나중에라도 그의 잘못을 고발하고 증언하는 ‘용기’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글 : 정문섭 박사
     적성 고원 출신
     육군사관학교 31기
     중국농업대 박사
     전) 농식품부 고위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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