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박정희 시대, 국가가 재건한 일제 잔재
상태바
[시론] 박정희 시대, 국가가 재건한 일제 잔재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19.03.14 16: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해방 74년이 넘는 세월에도 우리 사회에는 유무형의 식민문화 잔재들이 우리들의 의식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그 동안 식민잔재가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것은 그만큼 일제의 통치가 악랄하고 치밀했던 데도 원인이 있었지만, 이를 청산하고 제거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모자랐던 것도 큰 이유이다. 아니, 상당 분야에서는 잔재가 아니라 본류가 그대로 건재하기도 했다. 그 결과 정치ㆍ경제ㆍ문화ㆍ군부ㆍ경찰ㆍ교육 등 국가의 동맥을 친일 본류 세력이 차지하여 참다운 민주민족국가를 제대로 세우지 못한 근본 원인이 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 사회에서 사라질 운명에 처했던, 아니 사라져야 했던 식민잔재는 이승만 시대에 위기를 벗어나더니 특히 박정희 시대에 오히려 국가 통치 시스템으로 확고하게 되살아나고 뿌리 내렸다.
5ㆍ16 쿠데타가 일어난 후 ‘재건운동’이란 것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동네 사람들은 아침 일찍 마을회관 앞이나 학교 운동장에서 라디오에서 나오는 ‘재건체조’도 따라해야 했다. 이 재건체조는 일제 때 의무적으로 했던 ‘황국신민체조’를 부활시킨 것이었다.
군사정권은 일제가 1917년 조선인을 통제하기 위해 운영한 반상회 제도도 부활시켰다. ‘국민재건운동’과 결합시켜 한 때 ‘재건반(再建班)’이라는 명칭으로 운영되기도 했고, 유신 이후인 1976년 5월 말부터 관주도로 본격적으로 반상회를 운영하면서 전국적인 정례 반상회의 날(매월 25일)이 제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가 식민통치를 위해 강제한 각종 문화나 제도는 특히 교육 현장에 많이 남아있다. 초ㆍ중ㆍ고등학교 학생들은 ‘애국조회’ 시간에 운동장에 줄을 선 채로 일제의 ‘교육칙어’ 대신 ‘국민교육헌장’을 외어야 했다. 더욱 강도 높게 일제식 교육을 받아야 했던 ‘유신체제’ 아래서 각종 학교 행사 때 행해진 ‘국기에 대한 맹세’는 일제시기 ‘황국신민의 서사’를 본뜬 의식이었다. 남학생들은 후크를 찬 교복과 교모를 착용하고, ‘두발검사’와 군대 내무검사 같은 ‘용의검사’를 받으며 체벌이 난무하는 암울한 학창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일본제국 해군의 세일러복은 여학생 교복(세라복)으로 부활되었다.
황국신민 정신을 주입하기 위해 시행하던 애국조례며 학교장 훈화, 일본식 군국주의 교육의 잔재인 ‘차렷과 경례’, 불량선인을 색출하기 위한 주번제도며 복장 위반이나 지각생을 단속하던 교문지도도 바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이어졌다.
유신은 식민지 지배구조의 재현이었으며 박정희 1인을 위한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총화였다. 일제시기 황국신민교육이란 명목으로 자행된 수많은 교육범죄들이 유신이란 이름 아래 되살아나 학생들을 복종하는 기계로 만들었고, 우리는 그것이 식민 잔재인지도 모르는 채 그저 ‘추억’으로 간직하고 살아왔다.
그들은 유신을 한국적 민주주의라 외치며 ‘조국근대화’와 효율성이라는 미명 아래 전체주의적이고 군국주의적인 일제 잔재들을 부활시켰다. 국가에 의해 일제잔재가 제도화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용되면서 어느덧 우리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3ㆍ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광주교육청을 시작으로 전남ㆍ전북ㆍ서울 등 전국 시ㆍ도교육청이 친일 음악인들이 만든 ‘친일 교가’를 바꾸는 작업에 속도를 내고, 교육계에 뿌리를 내린 식민 잔재 전수조사에 나선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번 기회에 교육계에 뿌리 깊게 남아있는 모든 식민 잔재를 거두어 내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금과초등학교 100주년 기념식 4월 21일 개최
  • [순창 농부]농사짓고 요리하는 이경아 농부
  • 우영자-피터 오-풍산초 학생들 이색 미술 수업
  • “이러다 실내수영장 예약 운영 될라”
  • [열린순창 보도 후]'6시 내고향', '아침마당' 출연
  • 재경순창군향우회 총무단 정기총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