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추 기자’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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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추 기자’ 찾기
  • 림양호 편집인
  • 승인 2019.03.20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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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猛追)

농촌에서 태어났는데 농부는 아니다. 들꽃 이름 하나 제대로 아는 게 없다. 이른 봄 노란 꽃이 개나리인지 산수유인지 자신이 없다. 꽃이야 예전부터 많이 보지 못했다 치고 학교 오가며 본, 풀 이름도 알지 못하는 빛깔만 촌놈이다.
태어나서 30년 넘게 살다 병역 마치고 농민을 돕는(?) 조합에 다녔고, 분수를 벗어난 잘못으로 타향을 떠돌 때도 도심보다 시골 가까운 곳에서 살았는데 아직도 꽃ㆍ풀의 이름도 효능도 모른다. 누가 “먹던 냉이조차도 밭에 있는 건 냉이인 줄 모르겠더라”더니 남 말이 아니다. 봄들과 온 산에 먹을 것이 지천이라는데,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맹추다.
시골에 살면서 도시 사람 흉내내다 시골에서 얻을 수 있는 것도, 도시에서 얻을 것도 놓친 가난한 사람이라는 열등감에 편찮다. 시골살이와 도시 생활을 견줘 앞뒤 우열을 가릴 순 없지만, 어디서나 성실한 사람보다 뒤처지는 건 당연한 이치인데 이제야 보이기 시작하니 무척 안타깝다. 늦은 후회와 각성으로 시골에서 자란 것이 자산이 되기를 바란다. 행여 도시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것들도 누리지 못하고, 시골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도 누리지 못하는 일이 또 생기지 않기를 간곡히 빌면서.
그런데 요즘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맘껏 뛰놀고 그 자연을 충분히 누리기보다는 도시 나들이에 더 관심 있어 보여서 안쓰럽다.
평생을 임금 노동자로 살면서, 경쟁력 없는 경쟁에 내몰리고, 문화라는 미명의 소비를 위해 때론 양심을, 종국에는 가치까지 내려놓아야 하는 전철을 따르지 않을까 답답하고 분하다. 아이들이 없다고, 노인들만 득시글거린다면서 지방정부도 학업 성적이 좋은 아이들을 위한 정책만 펼친다. 큰돈을 쏟아 붓는 아카데미, 캠프, 영재교실, 인재숙. 이곳저곳 모두 그런 식이다. 인구가 줄어서 걱정이라면서 지역을 떠날 아이들만 지원하는 꼴이다. 자연에서 뛰놀고 마을에서 함께 일하며 놀이ㆍ배움ㆍ노동이 어우러지는 지역을 꿈꾸는 것은 이상인가 아니 환상인가. 고향 시골에 남아 그냥 부대끼며 더불어 사는 꿈을 꾸면 안 되는 세상인가?
엊그제 농어촌 지역에 산재한 조합장 선거를 했다. “농민의 경제적ㆍ사회적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전국적으로 조직된 농가 생산업자의 협동 조직체”인 농협도 ‘농민’보다 ‘농업인’이라 부른다. “농사를 짓고 싶거든 농민이 아니라 농업경영인”이 되어야 하고 보조금에 약삭빠르고 부채 늘리기에 용감해야 ‘억대 연봉 대농’이 된다. 농사가 ‘정성껏 지은 만큼 나와 남을 먹여 살리는 귀한 일’이 아닌지 오래고, ‘농고’라는 이름이 사라진 지도 오래다.
식량을 생산하는 농사, 농업보다 더 귀중한 것은 무엇인가. 정보화 시대라며 스마트폰 만들어 파는 대기업이 우선이니, ‘4차산업’ 운운하는 요즘의 농촌은 요람이 아니다.
어디 농민뿐인가. “순창에서 살 사람을 찾”기도 어렵다.
“주민의 이야기를 제대로 전하는 작은 지역신문을 함께 만들 사람. 전공ㆍ학력은 무관합니다.” <열린순창> 기자를 모집하는 문구다.
취업 알선 회사에 등재된 인재들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시골 작은 신문을 만들겠다는 이를 찾지 못했다. “나를 가꾸는 큰 버팀목이 될 회사, 정시 퇴근하는 직장, 정년이 보장되는 안정적 직장, 비전과 성장성이 확실한 직장, 존경할 만한 상사가 있는 직장, 업계 최고의 보수를 지급하는 직장” 어느 하나에도 딱 부러지게 답할 수 없어서 “같이 일하자”는 제안이 망설여진다.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세상에 <열린순창>은 청년에게 어떤 곳일까.
태어나고 자란 동네 이야기와 진자리 마른자리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빠삭한 이웃 이야기를 보태거나 자르지 않고, 감추거나 더하지 않고 소개하는 일을 함께할 사람을 찾는 일이 쉽지 않다.
돈을 많이 벌고 출세하는 직장은 아니지만, 주민과 지역을 살리는 데 힘을 보탤 수 있는 곳에서 함께 일할 ‘맹추’ 아닌 사나운 기세로 쫓아가서 진실을 밝히는 ‘맹추(猛追)’ 기자를 찾으면서 ‘횡설수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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