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트로트는 전통가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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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트로트는 전통가요인가?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19.03.27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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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말하는 ‘뜨거운 감자’ 중에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트로트의 국적 논쟁이다. 트로트가 ‘한국 것’이냐, ‘일본 것’이냐 하는 것이다.
근대 일본의 대중음악 양식인 엔카(演歌)는 1920년대부터 식민지 조선에 상륙하기 시작했다. 일본 총독부는 그들의 문화적 어법을 소학교의 음악교본부터 권번이라고 불렀던 전국 기생학교의 커리큘럼에 이르기까지 차근차근 주입하기 시작했다.
엔카는 ‘라시도미파’ 5개의 음만을 쓰는데, 이 음계를 요나누키 음계라고 한다. 리듬의 특성은 2박자 중심 음악이다. 흔히 ‘뽕짝’ 리듬이라고 한다. ‘쿵짝 쿵짝’거리는 게 기본이고, 2번째 박자가 쪼개지면 ‘쿵짜작 쿵짝’이 된다. 반면에 우리의 전통적인 박자는 3박자 중심이다.
우리의 판소리나 민요는 탁성,즉 걸걸한 소리이다. 그런데 엔카는 두성과 비성을 섞어서 만든 아주 깨끗하고 맑은 소리를 기조로 한다. 그리고 높은 음역(高域) 부분에서 바이브레이션을 특징으로 하는데 흔히 음을 꺽는다고 하는 것이다.
일본의 엔카가 한국에 상륙하고, 엔카를 넘어서 점점 한국적인 노래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을사늑약으로부터 꼭 30년이 흐른 1935년에 이르러서는 일제의 음악 문법은 더 이상 한반도에서 어색한 것이 아니게 됐다. 바로 이 시점에 하나의 노래가 이 음악 문법을 거의 완벽하게 식민지에 연착륙시킨다. 바로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다.
해태타이거즈 광주 홈구장의 응원가이기도 했고 호남인들의 향토가인 <목포의 눈물>은 한국 대중음악 사상 최초의 주류 장르인 트로트의 전성시대를 가져온 기념비적 노래다. 전남 목포 출신인 이난영은 트로트의 가장 중요한 본질을 단숨에 포착한 불멸의 여왕이었다. 흔히 꾀꼬리 같은 목소리라고 불렀던 청아한 톤, 그 속을 서늘하게 흐르는 애상적 정조, 비음이 스며드는 가운데 꺾어지는 고음역 바이브레이션의 화려한 장식 등 트로트의 숱한 후계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요구됐던 이 모든 요소들이 이난영에 의해 완성되었다.
<목포의 눈물> 이전에도 <황성옛터>, <타향살이>가 있었지만, 이들 노래의 특징은 선율은 일본의 요나누끼 음계를 따라가고 있는 트로트지만 박자는 3박자이다. 그런데 그것을 일거에 뒤집고 2박자 전성시대를 연 노래가 <목포의 눈물>이다.
사람들이 이 <목포의 눈물>에 완전히 매료되었던 결정적인 이유는 당시 대중들이 이 노래를 항일저항가로 생각했다는 것이다. 잃어버린 나라에 대한 슬픔과 연모의 정을 가진 노래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특히 2절 가사가 그렇다.
‘삼백년 원한 품은 노적봉 밑에/ 님 자취 완연하다 애달픈 정조’
노적봉은 임진왜란 때 목포 앞바다에서 왜군을 전멸시킨 이순신 장군의 전략기지다. 삼백년  전이라는 건 임진왜란이다. 그 노적봉 밑에 님의 자취가 완연하다고 한다. 이때 님은 잃어버린 조국이 된다. 일본의 문법으로 만들어진 노래이지만, 정작 대중들은 애달픈 민족의 저항 노래로 인식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노래가 입에서 입으로 퍼지고, 비록 일본에서 온 문화이지만 우리 서민 대중의 정서를 반영하는 문화로 굳건하게 자리 잡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트로트 국적논쟁이 벌어진다. 트로트가 한국 전통가요라고 부르는 측과 일본 전통가요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는 측이 논쟁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일본의 엔카 황제인 고가 마사오는 죽기 직전 '엔카의 뿌리는 한국이다'는 말을 남겨 트로트 전통가요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트로트는 분명 일본 제국주의의 이식문화이자 가슴 아픈 문화다. 하지만 일본의 영향을 받은 음악이라고 해서 우리의 대중음악이 아니라고 따로 규정지을 필요도 없고 버려야할 문화도 아니다. 그 시작이 어떠했건 트로트는 그동안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던 동반자로서의 대중음악이다. 다만 우리 것인 줄 알고 부르던 노래가 일본식 음계와 장단을 따른 음악이라는 것은 알고 부르자는 것이다. 그리고 더불어 ‘전통음악’이라는 잘못된 명칭도 사용하지는 말자는 것이다.
 

림재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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