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속시한줄(30) 눈 내리는 밤 숲가에 멈춰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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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속시한줄(30) 눈 내리는 밤 숲가에 멈춰서서
  • 조경훈 시인
  • 승인 2019.04.03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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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그림 : 조경훈 시인ㆍ한국화가, 풍산 안곡 출신

 

 

이게 누구의 숲인지 나는 알 것도 같다
하기야 그의 집은 마을에 있지만
눈 덮인 그의 집을 보느라고
내가 여기 멈춰 서 있는 걸 그는 모를 것이다

내 조랑말은 농가 하나 안 보이는 곳에
일년 중 가장 어두운 밤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
이렇게 멈춰 서 있는 걸 이상히 여길 것이다

무슨 착오라도 일으킨 게 아니냐는 듯
말은 목방울을 흔들어본다
방울소리 외에는 솔솔 부는 바람과
솜처럼 부드럽게 눈 내리는 소리 뿐

숲은 어둡고 깊고 아름답다
그러나 나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잠자기 전에 몇 십리를 더 가야한다
잠자기 전에 몇 십리를 더 가야한다

<눈 내리는 밤 숲가에 멈춰서서> 

-프로스트(Robert Frost)

이 시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쓴 일기 같은 느낌을 준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친구를 찾아가면서 눈이 오는 어둠 속에서 숲과 호수를 만나게 되니 잠시 멈추었을 것이고 바로 수첩을 꺼내어 이 시를 썼을 것으로 짐작이 된다. 특히 시는 멈추어있으면 써지지 않는다. 부단히 움직이면서 새로운 것들과 만나야 한다. 대개 명작들은 여행 중에 얻어진 것들이 많다. 내가 여행 중에 쓴 시 한편을 소개해본다.

내 영혼을 / 가장 편한 곳에서 / 만나고 싶거든 / 고향이 보일 때까지 / 나를 그 곳으로 먼저 보내놓고 / 여행을 떠나라 // 구름이 말하는 의미와 / 하늘이 주는 순종과 / 나무가 서 있는 시와 / 들판이 안겨주는 삶이 그곳까지 나를 이끌고 가서 / 가장 편한 곳에 나를 놓아둘 것이다 // 지금 만나본 하얀 길이 그리스도라면 / 방금 지난 마을은 석가모니다 // 푸른 산, 구비치는 강, 나무와 숲, 철석이는 바다 / 그리고 밤과 낮 / 마주치는 사람과 사람 / 그렇게 겹쳐지는 풍경 속에서 만나면 // 이 세상은 가장 큰 성서다 // 떠나라 / 길이 잠길 때까지 가라 / 그 끝에서 가장 편히 쉬는 나를 만나리라
-나를 만나러 가는 여행-

프로스트가 여행을 통해 얻은 이 시는 ‘가지 않는 길’과 더불어 미국인들이 많이 애송하는 시다. 그의 고향 뉴잉글랜드의 시골 풍경을 배경으로 농민들의 소박한 생활 속에서 삶과 영적 충족에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첫줄 ‘이게 누구의 숲인지 나는 알 것도 같다’와 맨 끝줄 ‘잠자기 전에 몇 십 리를 더 가야 한다’는 말을 두 번이나 강조한 것을 보면 우리의 생활을 성찰케하고 삶의 책임을 다하라는 충고이기도 하다.

※프로스트(1874-1963) : 미국 뉴잉글랜드 출신. 저서 <소년의 의지>, <보스턴의 북쪽>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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