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에 진 빚 갚겠다”는 ‘향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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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진 빚 갚겠다”는 ‘향판’
  • 림양호 편집인
  • 승인 2019.04.11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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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살아보니 우리나라의 자원이 수도권에 집중돼 있고, 지방에 거주하는 국민의 뜻은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절감하는 때가 많았습니다.” “만일 헌법재판관에 임명된다면, 생 대부분을 지방에서 살아온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방분권의 가치가 최대한 실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30여년 동안 ‘향판’(지역 법관)이었던 문형배 헌법재판관 후보가 여야 국회의원들 앞에서 헌법 정신 속 지방분권을 역설하며, 헌법재판관 임기 6년의 목표가 ‘지방분권’에 있음을 분명히 밝혔단다.
그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장학금을 받아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는데, 사법시험 합격 뒤 장학금을 준 이를 찾아갔더니 ‘(고마움을) 갚으려거든 사회에 갚아라’라고 해서 그 말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 요즘 주요 이슈에 대한 견해를 묻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 애쓰면서도 일부 논쟁적 답변도 피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대법관, 헌법재판관 후보로 이미 3차례 추천된 적이 있고, 재산 6억7200여만원을 신고하고도 “전관예우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퇴임 후) 변호사 개업하지 않겠다”라고 말했다니 엊그제 국민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으며 변명하기에 급급했던 장관 후보들의 ‘비굴’한 모습이 떠올라 한층 믿음직하다.
많은 사람은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는 특별한 사안(람)에만 영향을 미친다고 여기는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노동 시간ㆍ나이 규정, 일제강점기 관련 사법 농단, 정당 해산 판결 등 사회 구성원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어떤 사람이 대법관, 헌법재판관이 되느냐에 따라 사회 구성원의 삶의 질과 무늬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엉터리 판결에 절대 힘을 보태지 않고, 어떤 경우에도 ‘사법 농단’에 얽히지 않을 재판관을 세우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엉터리’ 공직자를 골라내는 일도 게을러서는 안 된다.
‘그의 판결은 또렷또렷했다. 그는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알아듣지 못하면 한 번 더 또렷하게 일러주었다.  좋으면 좋은 감정을 싫으면 싫은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고, 옳다고 생각하면 옳다고 틀렸다고 생각하면 틀렸다고 말했다. 자기 생각이나 감정이 드러나면 안 되는 것처럼 행동하는 판사들과 달랐다. 재판부의 생각과 감정도 피고인 등 에게는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어서 일부러 그렇게 했다. 자기 판단이나 감정을 숨기지도, 시대적ㆍ역사적ㆍ현실적 맥락 위에서 경중을 따지기보다 기계적으로 판단하거나 정실에 따라서 선고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공직자의 부패ㆍ비리ㆍ뇌물 사건에는 무거우냐 가벼우냐를 꼼꼼하게 가려 엄정하게 판결하고, 고의성이 없고 가벼운 사안은 과감하게 선처하며, 소수자나 사회적 약자에게는 인간적으로 배려하는 판결을 내렸다. 2007년 카드빚 때문에 자살하려고 자기가 묵고 있는 여관에 불을 질러 구속된 피고인에게 ‘자살’이라는 단어를 10번 외치게하고 (“자살자살자살자살자살자살자살자살자살자살”), “우리에게는 ‘살자’로 들린다. 죽어야 할 이유를 살아야 할 이유로 새롭게 고쳐 생각해보라.”며 <살아 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 책을 선물하고 풀어줬다는 일화에서 ‘실패하더라도 주저앉지는 말라’는 격려가 물씬하다.
“전체 판결의 1%밖에 안 되는 화이트칼라범죄에 대한 온정주의 판결이 법원 인상의 99%(불공정하다)를 결정했다. 믿음을 찾으려면 공무원ㆍ기업가 등 사회지도층 범죄를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법원의 이들에 대한 관대한 처벌은 성장 과정과 환경, 사회적 지위가 비슷한 사법 당국의 온정적 태도에도 원인이 있다. 법관을 비롯한 법조인의 교제 범위가 화이트칼라에 편중돼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법조의 기업 친화적 분위기도 기업가를 범죄자로 처리하지 않는 데 일조한다.” 그가 오래전 창원지방법원 부장판사 때 한 말이다.
그를 오랫동안 지켜본 한 지방신문 기자는 지난해 대법관 후보 물망에 오른 그를 “ ‘서오남’(서울대 출신, 50대, 남자) 이라는 굴레에 가두어지는 인물이 아니다. 기득권 주류에 휩쓸릴 사람이 아니다. 그가 대법관이 되면 좋은 또 다른 이유다.”라고 말했다. 30년이 지난 지금도 “사회에 감사도 하고 보답도 하겠다”는 ‘향판’ 이야기가 요즘 사사건건 정쟁으로 치닫는 정치판의 미세먼지를 날려버린 듯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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