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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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 선산곡 수필가
  • 승인 2019.04.11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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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분다 (1)

 

아침잠을 깬다. 눈을 뜨지 않고 뒤척인다. 푹 잤다는 결론은 없다.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는 무거운 의식, 나는 점점 쇠약해지고 있는가. 신체에 찾아오는 통증의 정도를 스스로 진단해봤자 무슨 필요가 있을까. 나잇값으로 오는 신호이려니, 체념을 앞세운다. 별로 쓰지 않다.
눈을 뜬다. 전자벽시계의 숫자가 두 개로 보인다. 원래보다 10여분 앞당겨 놓았지만 어느 날부터는 본디의 시각을 뒤따라가는 낡은 시계가 벽에 걸려있다. 날이 갈수록 흐름이 빨라짐은 저 시계나 내 존재의 이유나 다를 바 없다.
두어 번 눈을 끔벅거리다가 정확한 시간을 읽는다. 불편하다. 지난 해 백내장 수술을 했지만 눈 속 이물감은 여전하고 사물들은 명료하게 보이지 않는다. 병원을 다시 찾았더니 눈물이 부족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했다. 눈물은 액체여만 하고 눈으로만 흘려야하는가. 세월 따라 가슴으로 흐른 눈물이 육체의 눈물마저 마르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 눈에 눈물이 부족하단다.
“엄마 눈이 슬퍼 보여.” 며칠 전 딸아이가 아내에게 했던 말이었다.
“네 아빠가 더 슬퍼 보인다.” 아내가 그 말을 되받았다. 나는 그때 슬퍼 보인다는 눈으로 웃었다. 눈물 말라 뻑뻑해진 눈으로 웃었다. 그 생각, 뻑뻑한 눈으로 시계를 본다. 새벽 5시가 조금 넘었다.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 어제만 해도 움츠렸던 꽃망울이 드디어 개화를 시작했다. 여느 꽃과 달리 벚꽃의 아름다움은 늘 탄식을 부른다. 그 탄식은 낙화의 아름다움까지 이어진다. 한꺼번에 아름답게 지는 낙화의 의미를 어떤 나라의 무사들은 민족성으로 끌어안았다. 그 섬뜩한 차용(借用)과 용렬함에 속아서는 안 된다. 꽃이 민족성을 가르치지 않는다. ‘내 살던 고향에 복숭아꽃 살구꽃’보다 훨씬 많은 왕벚꽃의 원산은 우리나라다. 꽃은 꽃일 뿐이다.
벚꽃 길에 나가 사진 몇 장 찍는다. 꽃가지 배경을 지우기 위해서는 망원렌즈를 사용해야한다. 내 경험으로는 벚꽃 접사(接寫)가 가장 어렵다. 꽃송이 한둘은 허전하고 꽃무리 전체는 심도(深度)가 표현되지 않는다. 먼 곳, 하얀 물감 비벼놓은 듯 무리 진 풍경이 훨씬 아름답지만 사람들은 나무 아래 서기를 더 좋아한다.

사진엽서 몇 장 만들어 본다. 자작엽서다. 그러나 누구에게 편지를, 누구에게 엽서를 쓸 것인가. 내 자잘한 일상을 전할 용기도 이젠 사라지고 없다. 그 대상도 이젠 내 마음에서 하나 둘 떠났다. 못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편지를 의례로 대응한 일들이 잦아졌다. 의례의 편지는 말 그대로 의례일 뿐이다. 내가 한때 썼던 편지는 의례가 아니었다. 날마다 토했던 그 언어들은 삶의 몸부림이었을 뿐이다.
한 때 내 편지를 기다리던(?) 그 많았던 사람들은 지금의 나를 어떻게 기억할까. 내 편지로 책을 내겠다던 종수형도 가셨고 광신이도 갔다. 공교롭게도 성이 같았던(朴) 두 사람. 그 별렀음이 독이 되었을까. 그 빛바랜 언어들은 지금쯤 의미 없이 지워졌고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제 나는 안다. 내가 만약 그때의 언어들을 지금도 주절거리고 있다면? 사랑은 웃기고, 눈물은 찌질 하며, 한숨은 바보 같고, 고독은 철없기 짝 없음을.

☞선산곡 수필 <길위에 서서>를 마무리 하고 이번 호부터는 <바람은 분다>를 2주마다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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