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재(221) 용기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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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재(221) 용기에 대하여
  • 박재근 고문
  • 승인 2019.04.17 16: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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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에 항상 이기는 도가 있고 이기지 못하는 도가 있으니 항상 이기는 도를 부드러움이라 하고 이기지 못함을 강함이라 한다. 사람들은 이것을 알지 못하고 강함만을 취하려 한다. 옛말에 이르기를 강함은 나보다 약한 자에게 앞서는 것이요 부드러움은 나보다 강한 자에게 앞서는 것이다. 나보다 약한 자에게 강한 것은 나와 같은 자를 상대하면 위태롭고 나보다 강한 자에게 부드러운 것은 위태롭지 않다. 강함을 지키고 유지하는 것은 유연함이다.”(육자, 주 문왕의 스승)
남과 나를 함께 살게 이어주는 것을 인(仁)이라 하며 사랑이라고 한다. 인과 사랑보다 부드러운 것은 없고 인과 사랑보다 강한 것은 없으며 인과 사랑보다 지혜로운 것은 없다. 인과 사랑은 만물을 기르면서도 겸손하여 자기를 낮추면서 거대한 바다를 이루는 물과 같다.
“강한 용기는 다투며 죽이고 부드러운 용기는 화해하며 살린다.”(노자도덕경 73)
용기가 미덕이 되기 위해서는 생명을 사랑하는 부드러운 것이어야 한다. 지혜로운 용기는 부드럽다. 지혜가 모자란 용기는 만용에 불과하다. 욕망을 위해 남을 상하고 인화를 해치는 것, 나보다 약한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폭력이다. 함께 사는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것을 용기라 할 수는 없다. 참된 이익은 인류 공통의 이익이며 함께 행복한 이익이다. 이익을 위해 남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은 서로를 훼손하는 어리석음일 뿐이며 진정한 용기가 아니다. 인류는 지구라는 한울 안에서 함께 살아야 할 가족이다. 가족은 협동할 대상이지 경쟁의 대상이 아니다. 가족끼리의 다툼은 가정을 파괴하고 인간끼리의 다툼은 서로를 힘들게 한다.
사람은 누구나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한다. 그런데도 세상에 악이 사라지지 않고 득세하는 것은 사람들이 눈앞의 이득과 일신의 안일을 위한 욕망 때문에 악에 힘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불의한 이득은 자신의 존엄성을 떨어뜨리고 사회악을 만든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가난을 즐기며 정의롭게 사는 것이 자기 삶의 의미와 가치를 높이는 진정한 용기다. 불의한 이익은 사회정의를 무너뜨리고 사회정의가 무너지면 인간관계의 신뢰가 무너지고 인간관계의 신뢰가 무너지면 사회가 불안해지고 범죄가 성행하는 험악한 세상이 된다. 불안한 세상, 불행한 세상을 피하고 평화로운 세상,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불의한 이익에 대한 욕망을 단호하게 버리는 것을 진정한 용기라 한다.
‘나’라는 의식은 감정을 만들고 감정은 생각을 만들며 생각은 사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 사람마다 소유의식에 구속된 나를 중심에 놓고 사물이 옳으냐 그르냐를 따지면서 세상의 불화와 다툼을 만든다. 진정한 옳고 그름은 감정과 욕망의 구속에서 해방된 경지에서만이 볼 수 있다. 평화로운 세상,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해 사람에 대한 미운 감정을 버리고 비우는 것이 용기다. 나와 다름에 대한 분노를 버리고 상대를 배려하며 성급함을 참고 때를 맞추어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 지혜로운 용기다. 용기란 남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나를 이기는 것이다. 어리석은 고집을 밝은 지혜로 이기고 비양심을 양심으로 이기는 것이며 거짓된 마음을 참한 마음으로 이기는 것이고 겸허한 마음으로 교만을 이기고 검소한 마음으로 사치스러운 마음을 이기는 것이며 개으름을 성실로 이기는 것이다.
용기란 마음이 절망을 극복하는 것이다. 마음은 사물의 척도이다. 절망은 나 밖의 사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이 사물을 절망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마음이 사물의 의미와 가치를 판단한다는 것은 몸이 아닌 마음이 실질적인 나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자기 것이 아닌 자기 밖의 돈 지위 명성의 득실에 희로애락 한다는 것은 자기 눈이 아닌 남의 눈으로 사물을 보기 때문이다. 절망이란 마음이 자기 밖의 사물에 부림 당하며 발생한다. 마음이 자기 밖의 사물에 구속되지 않고 사물을 지배하는 한 자기 밖의 사물 때문에 절망하지 않는다. 참 나인 마음은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욕정에 의해 가려질 뿐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주인이 되어 사물을 보는 한 절망은 없다.

글 : 박재근 전북흑염소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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