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지만 재미있는 북한말(7)
상태바
낯설지만 재미있는 북한말(7)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19.04.17 16: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북한의 교통용어) 교차로는 ‘사귐길’, 횡단보도는 ‘건늠길’

서기 642년, 백제의 가야성 공격에 딸과 사위를 잃은 신라의 김춘추는 백제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면서 고구려 평양성을 방문한다. 막 정권을 장악한 고구려의 연개소문을 만난 김춘추는 ‘양국의 오랜 다툼을 중단하자’고 제안하면서 백제 공격을 위한 군사 지원을 고구려에 요청한다. 《삼국사기》‘열전 김유신 편’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런데 김춘추가 통역을 대동하고 고구려를 방문했다는 기록은 《삼국사기》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로 보아 삼국시대 우리 조상들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일부 어휘의 의미 차이 외에는 의사소통에 지장을 받지 않은 것 같다. 1400년 전 초겨울 살을 에는 바람을 뚫고 경주에서 평양까지 1200리 길을 왕복했던 김춘추를 떠올리며, 그리고 조만간 펼쳐질 남북 자유 왕래의 그날을 상상하며 도로와 교통에 관련된 북한말을 알아보자.
도로와 도로가 만나는 교차로를 북한에선 ‘사귐길’이라 부른다. 북한말의 경우 한자어나 외래어 사용을 지양하고 철저하게 고유어 중심을 고집하다 보니 가끔 억지스런 경우가 없지 않다. 그런데 서로 전혀 모르는 차들끼리 만나는 장소인 교차로를 ‘사귐길’로 표현한 것이 재미있다. 회전교차로는 ‘도는네거리’라 부른다.
“건늠길을 건널 땐 꼭 손을 들고 건너세요.” ‘건늠길’은 길을 건너간다는 의미로 횡단보도를 지칭한다. 한 탈북 소년이 한국에 온 지 불과 며칠 안됐을 때 일이었단다. 길 건너편으로 길을 건너야 할 텐데, 안전하게 건널 수 있는 하얀 줄로 된 그것이 안 보였다. 10분 이상을 방황하다가 지나가던 나이 지긋하신 분께 여쭈었다. “저~ 아바이, 여기 건늠길 어디 있는 지 아십니까?” 순간 정적이 흘렀고 머리를 갸우뚱 하시더니 그냥 지나치셨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아바이’라는 말도 생소했을 테고, ‘건늠길’이라는 단어도 처음 들어봤을 테니까.
‘거님길’은 산책로를 가리키는 북한말이다. 그런데 산책로의 북한 표현인 ‘거님길’이 남한에서도 사용되는 곳이 꽤 있다. 경남 창원시의 창구와 성산구를 가로지르는 도심 속 ‘창원 거님길’, 부산시 기장군의 ‘고촌 거님길 공원’ 등이다.
‘차마당’은 자동차를 세워두는 주차장의 북한식 표현이다. 주차로 인해 빈번하게 싸움이 일어나는 우리와 다르게 북한의 차마당은 왠지 잔치가 열리는 마당 같은 느낌이 든다. ‘차머무름’은 정차(停車)를 의미하는 용어다.
북한에서는 배기가스를 ‘폐가스’라고 부른다. 폐가스는 버려진다는 의미의 폐(廢)뿐 아니라 신체 호흡기 폐(肺)까지 연상시켜 배기가스라는 말보다 환경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느끼게 한다.
이외에도 영어나 한자어식 표현을 우리 식으로 순화한 북한의 교통용어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눈에 띈다. 리어카는 ‘손수레’, 덤프트럭은 ‘자동부림식 화물차’, 인도(보도)는 걸음길, 브레이크등은 ‘제동등’, 상향등은 ‘원거리등’, 유턴구간은 ‘제돌이길’ 등으로 부른다. 나들목(인터체인지)은 ‘나들길’, 고가도로는 ‘구름다리’라 하고 , ‘이슬길’은 새벽길의 북한말이다. 북한에서 교통경찰관의 명칭은 ‘교통안전원’이다.
쉽게 와 닿는 표현도 있다. 경광등은 ‘색동신호장치’, 견인차는 ‘끌차’, 가시거리는 ‘보임거리’, 도로포장은 ‘길닦기’, 미등은 ‘작은등’, 방음벽은 ‘소리막이벽’으로 부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인계노동 퇴비공장 행정조치 ‘추궁’
  • 10월 18~20일 ‘장류축제’… 매일 밤 ‘장류 가을음악회’
  • 순창북중ㆍ고 총동문회 골프대회
  • 인계 노동 퇴비공장, 불법건축물에 ‘허가’
  • 체육단체 간담회…회장 선출 관심 ‘집중’
  • 귀성객들과 함께하는 우리마을 노래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