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하지욕/ 그래도 참아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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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하지욕/ 그래도 참아야 하는지
  • 정문섭 박사
  • 승인 2019.04.2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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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타구니 과(胯), 아래 하(下), 갈 지(之), 욕 욕(辱)
정문섭이 풀어 쓴 중국의 고사성어 195

《사기》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나온다. 사타구니 아래로 기어간 치욕이다. 이보다 더 큰 치욕이 없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어릴 적 우리 옆 동네 먼 친척 H선배는 중·고 시절 이름난 수재로 한번도 1등을 놓치지 않은 전설이었다. 졸업식 전날 그가 나에게 은밀한 부탁을 하고 갔다. 졸업식에서 그는 우등상을 비롯하여 서울의 유명 대학에 합격하였다하여 준 공로상을 받으며 만년필과 시계, 영어사전 등 많은 상품도 받았다.
해질 무렵 그가 왔다. 교복의 가슴과 무릎이 흙 진창이 되어있었다.
“형, 뒷문 쪽 그 구멍으로 나온다더니, 거기에서 엎어진 거요?”
“아니, 그 놈들, 맨 꼴찌를 하던 그놈들이 머리는 좋아. 거기에서 날 기다리고 있더라고. 내 손에 아무것도 없는 것을 보고 막 두들겨 패더니, 나중에는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나에게 그놈들 바짓가랑이로 지나가라고 닦달하더라고. 덜 맞으려고 참고 엎드려 기었지. 그래도 그 졸업상품들을 뺏기지 않았으니 다행이야.”
나는 그에게 그의 상장과 상품을 건넸다. 그의 집 TV 옆 장식장에는 지금도 이미 낡아 돌아가지 않는 그 녹슨 시계와 만년필이 놓여있다.
*당시(1960년대 초까지)에 일부 공부를 못했던 자들이 졸업상품을 빼앗아가는 나쁜 일들이 벌어졌었다.  
 
회음후 한신(韓信)은 유방(劉邦)이 항우(項羽)를 이기고 한(漢) 나라를 세우는데 가장 결정적인 공헌을 하여 초나라 왕이 되었다. 그러나 나중에 한 고조 유방에게 끝내 토사구팽(兎死狗烹)을 당하여 불운한 사람의 대명사가 되었다 
그는 회음사람으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서부터 손자병법을 탐독하며 장차 명장이 될 큰 꿈을 꾸어 왔다. 관리가 되고 싶어 했으나 추천해주는 자가 없고, 또 장사를 해 생계를 이어나갈 재간도 없었다. 그저 남의 집에 얹혀서 밥술을 얻어먹고 지내는 처지라 사람들이 그런 그를 싫어했다.
그는 일찍이 한 정장(亭長)의 집에서 자주 기식(寄食)하며 지냈는데, 정장의 아내가 한신을 매우 싫어하여 일부러 밥을 챙겨주지 않으므로 결국 그 집을 나왔다. 그가 회수(淮水)에 나가 낚시질을 하며 물로 허기를 채우고 있을 때, 냇가에서 빨래 일을 하던 한 노파가 굶주리고 있는 그를 가엾이 여겨 밥을 챙겨 주었다. 한신이 고마워하며 말했다.
“내 언젠가 은혜를 보답하겠습니다.”
그러자 노파가 화를 내며 손을 저었다.
“대장부가 자기 힘으로 먹지도 못하는 주제에 무슨 말을 하는 건가. 나는 그저 젊은이가 가엾어서 밥한 술 준 것뿐인데 보답은 무슨 보답이오.”
하루는 길거리에서 푸줏간 패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중 두목격인 한 사람이 그의 길을 막아섰다.
“너는 덩치는 커가지고 늘 칼을 차고 다니지만 실속은 겁쟁이일 게다.”
구경꾼들이 모여 들자, 신이 난 그는 한신의 면전에서 욕까지 해댔다.
“네가 나를 죽이고 싶거든 그 칼로 나를 찔러보아라. 만약 죽일 수 없다면 내 가랑이 밑으로 지나 가거라.”
한신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윽고 허리를 굽혀 땅 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려서 그의 가랑이 밑으로 기어서 빠져나갔다(과하지욕). 시장바닥 사람들이 그를 겁쟁이라며 비웃었다.
훗날, 한신은 항우(項羽)의 휘하에 들어가 종리매(鍾離昧)의 추천으로 겨우 낭중이 되었다. 그가 항우에게 여러 책략을 건의하였지만 항우는 ‘하찮은 졸개 따위가 무슨 책략이냐.’며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나중에 유방(劉邦)의 진에 들어갔으나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였다. 다행히 유방의 최측근인 소하(蕭何)가 그와 자주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그가 기걸(奇傑)임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대우를 못 받은 한신이 도망을 치자 소하가 다시 붙잡아 와 유방에게 데려가 ‘국사무쌍(國士無雙)한 인물로 대장군으로 임명해야한다.’고 간곡히 청했다. 많은 장수들이 처음에는 비웃고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한신이 좋은 계책과 훌륭한 지휘능력을 발휘하여 수많은 전투에서 연달아 승리를 거두므로 존경하고 따랐다. 유방이 그를 제나라 왕으로 임명하였고, 그가 마침내 항우를 깨트리자 초나라 왕으로 봉하여졌다.  
이렇듯 출세한 그는 옛적 밥을 챙겨주던 노파를 찾아가 천금을 상으로 주었으나(一飯千金 일반천금) 그 정장의 집을 찾아가서는 백전만 주었다. 그리고 자기를 가랑이 밑으로 기어가게 한 자를 찾아내 중위(中尉)에 임명하고, 모든 장수와 대신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은 장사요. 일찍이 나를 모욕했을 때 내가 죽일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소. 단지 이런 사람을 죽여 보았자 명예가 되는 것이 아니었기에 또 살인자로 찍혀 도망을 다녀야 하는 신세가 될 것 같아 참아냈고, 그리하여 오늘의 공업(功業)을 성취할 수 있었던 거요.”

오늘 소개하는 이 ‘과하지욕’은 훗날 ‘큰일을 위해서 눈앞의 굴욕도 참고 견뎌낼 줄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쓰이고, 한순간의 분노를 참으면 백일의 근심을 면한다는 교훈이 더해졌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자존심을 세워나가는 것은 당연히 중요하다. 하지만 이를 버려야 할 순간이 있을 수 있다. 어찌할 것인가? 이 성어는 만약 당신이 다다르고자하는 목적을 두고 있다면 한신처럼 치욕을 무릅쓰고라도 비굴한 모습을 보일지라도 적절히 물러설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요즈음 ‘갑질’로 인해 사회적 물의가 자주 일어나는 것을 보노라면, 옛 사람들이 ‘이래야 한다.’고 가르쳤던 교훈들이 맞지 않는 것 같다. 요즈음 민주주의의 물결이 전반적으로 출렁이고 있는 추세가 보편화되고 있다. 그간 ‘을’들이 고용안정, 승진, 높은 보수에 얽매여 ‘갑’의 횡포에 끽소리도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감수해야 했던 과거와는 달리 ‘을의 반란’이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고 있고, 사람들이 이에 박수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 성어가 당초 의도했던 ‘어떤 목적을 위해 때로는 자존심을 죽이고 살 때가 있어야 한다.’는 고전적 의미는 점차 퇴색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의사들이 ‘꾸욱 참고 참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건강에 안 좋다. 풀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렇다고 ‘욱’하여 주먹과 발이 마구 날아가기까지 하라고 말한 것은 아닐 것이다.

글 : 정문섭 박사
     적성 고원 출신
     육군사관학교 31기
     중국농업대 박사
     전) 농식품부 고위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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