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점순 할머니 그림 ‘잔잔한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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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점순 할머니 그림 ‘잔잔한 감동’
  • 윤승희 기자
  • 승인 2019.05.02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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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순 할머니의 그림 200여장 꽃ㆍ풀ㆍ동물ㆍ집ㆍ가족 모두 ‘보물’

천연색이 원시적 빛을 발하는 봄 산길을 지나 복흥 칠립마을을 찾았다. 달가운 봄비가 촉촉하게 내린 뒤라 도로 위로 늘어진 녹음의 그림자가 유난히 짙었다. 화가 할머니를 찾아가는 길이어서였을까? 명도와 채도가 각기 다른 다채로운 초록빛 모두가 특별하게 스쳐갔다.
며칠 전 지인이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90(구순) 앞둔 할머니가 그린 그림이라는 간단한 소개 글과 함께였다. 사진 한 장이었지만 보는이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큰 아들 부부, 장태섭(66)ㆍ오은혜(62) 씨와 함께 사는 설점순 할머니(89) 댁은 칠립마을 안 쪽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다.
고운 은발에 맑은 얼굴을 하신 할머니에게 인사하며 작은 꽃다발을 건네자 환하게 웃으시며 “나를 어떻게 알고 예까지 왔느냐”며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셨다. 할머니 그림 얘기를 꺼내니 장롱 한쪽에서 보따리 여러 개를 꺼내 오신다. 그야말로 보물 보따리였다.
할머니는 이십여 년 전에 광양에서 딸과 함께 살았다고 한다. 직장에 다니는 딸이 혼자 집에 계시는 어머니를 안타깝게 생각해서 어느 날 크레파스와 도화지를 사다드린 게 계기였다. 보관하고 있는 그림 대부분이 그 때 그린거라고 했다.
칠순 넘은 노인이 어느 날 크레파스로 도화지에 쉽게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그 궁금증은 며느리 오은혜 씨가 “어머니가 어린 손자들에게 그림을 곧잘 그려주셨다. 어린 손자에게 동물이나 꽃을 알려줄 때 그림을 그려서 설명해 주셨다”며 풀어주었다.
할머니와 한 장 한 장 그림들을 넘겨보았다. 소재와 주제가 다양했다. 특히동물ㆍ꽃ㆍ집 그림이 많았다. 낯익은꽃과 작은 식물 그림은 딸과 함께 살았던 아파트 베란다의 화분들에서, 동물 그림은 그림책에서, 낯선 이국의 건물과 정원 그림들은 텔레비전에서 보고 멋져서 기억했다가 그렸다고 한다. 놀랍기만 하다. 그림을 따로 배우지 않았지만 소재의 특징 묘사나 색감 표현이 예사롭지 않다.
그림을 넘기다 인물화 한 장을 발견했다. 누구냐고 묻자 “사부인(딸 시어머니)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을 때 병문안 갔다 와서 그렸다”면서 병원에 있는 사부인이 많이 걱정되고 많이 생각나서 그렸다고 설명했다.
자세히 보니 도화지에 붙인 그림도 있었다. 입체감을 입힌 그 그림은 다른 종이에 그린 할머니 그림이 아깝다며 손자들이 오려서 새 도화지에 붙여준거라 했다.
그림은 모두 200점 가량이었다. 마지막 장을 넘기자마자 할머니는 보자기에 다시 싸셨다. 그림을 설명하면서는 “그냥 그렸다”, “암 것도 아니다”라며 짐짓 별거 아니라는 듯 말씀하셨지만, 그 그림들을 얼마나 귀중히 여기시는지 그마음이 헤아려져서 애틋했다.
그림 담은 보물 보따리들을 장롱 한쪽에 두고 앉으시는 할머니에게 “그림을 누구한테 전해주고 싶으냐”고 넌지시 물었다. 할머니 대답은, 그 대답은 할머니 집골목에 핀 초롱꽃에 담아두었다.
지금은 몸도 마음도 여의치 않아 그림을 못 그리지만, 예전에는 산책하며 본 꽃과 새와 나무들을 기억했다가 그렸다는 할머니의 말씀을 듣고, 돌아오는 길에 눈에 띄는 할머니 집 근처의 만개한 꽃과 초록의 나무들이 그냥 까닭 없이 안타까웠다.
멋진 그림 보여주신 할머니께 감사드리며, 건강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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