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가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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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가뭄
  • 김효진 이장
  • 승인 2019.05.15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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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풍산 두지마을 이장

가뭄이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물 사정이 여의치 않다. 
곧 수확을 앞둔 양파와 감자는 마지막 목마름에, 갓 파종한 고추와 참깨는 뿌리가 땅심을 받지 못해 안타깝다. 본격적인 모내기철인 요즘, 논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지하수 관정 답도 그렇거니와 강과 큰 봇도랑에서 물을 대던 논들도 시원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며칠 전 인근 마을 주민들과 함께 농어촌공사와 순창군청을 다녀왔다.
풍산면 대가리 들녘은 순창에서 가장 넓고 물 사정이 좋아 벼농사 짓기는 이만한 데가 없다는 곳이다. 그런데 올해는 어찌 세 군데 봇도랑 물이 말라 들녘을 적셔주지 못하고 있다. 막 모내기를 마친 논은 모가 타 들어가고, 애벌, 재벌 로터리를 쳐야할 논들은 우두커니 물 들어오기만 기다리고 있다. 보다 못한 주민들이 단단히 화가 났다. 농어촌공사는 담당지역 책임자를 빼곤 현장의 어려움을 전혀 파악조차 하지 못한 채 처음 듣는 양 한다. 보고를 안 한 건 지, 보고를 뭉갠 건 지 모를 일이다.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게 하나도 없는 농어촌공사다. 과거 농지개량조합(농조) 시절엔 농민들에게 물세를 받아 봉이 김선달이냐며 비난을 한 몸에 받았던 조직이다. 요즘은 농어촌공사 순창지사를 함흥차사라 부른다. 수많은 민원을 제기해도 반응과 대꾸가 없는, 속 타는 현장의 목소리가 전혀 먹히지 않는 벽창호 조직이 되어버렸다.
풍산 대가리 구역 농업용수 공급에 어려움이 생긴 것은 오랜 가뭄도 이유겠지만, 올 겨울부터 시작한 보 건설과 모래 준설작업이 마무리 되지 않은 탓도 크다. 군청 하천관리 담당자에게 준설작업의 추진 배경과 목적을 설명해 달라 했지만 시원한 답은 없었다. 준설한 모래는 어디로 가느냐는 물음에도 답을 하지 못했다. 준설작업이 농업용수 공급에 차질을 주는지에 대해서도 인식하지 못하는 듯 했다. 화가 나기보다 덮쳐오는 절망감에 헛웃음만 나왔다. 누가 무엇을 위해 하천 준설계획을 기안했는지는 추후에 밝혀지겠지만, 담당자가 숙지하고 있어야할 기본적인 정보조차도 파악하지 못한 채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심각해 보였다. 더욱이 하천 준설을 담당하는 업자가 뒤늦게 주민들에게 와서 보 건설과 준설 목적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보며 어이가 없기는 매 한가지였다. 요즘은 군청에서 발주하는 각종 사업에 문제가 발생해 민원을 넣어도 업자가 와서 설명하는 것을 여러 번 보았기 때문이다. 매번 느끼지만 공무원이 업자 내세워 방패막이 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마치 원청에서 하청업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듯 말이다.
이번 물난리를 보면, 가뭄은 늘 반복하여 발생하는 상수일 뿐, 이에 대응하는 공무 시스템의 가동 여부가 변수가 되었다. 농어촌공사는 농업용수의 원활한 공급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방기했고, 군청은 별 의미 없어 보이는 보 건설과 준설사업 발주가 석연치 않다. 게다가 군청의 하천관리 업무부서와 농어촌공사의 용수관리 부서 간 협력이 전무했다는 사실이다. “부서 간, 유관기관과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요구된다)”는 표현은 그저 그들의 협조공문에서나 나오는 글귀일 뿐이다. 사정이 이럴진대 두 기관에서 각종 사업을 진행할 때, 감히 농민과 주민이 고려의 대상이 되리라 언감생심 기대하는 것도 머쓱한 노릇이다.  
시대가 변하고 적폐청산이라는 구호가 남발해도, 공직사회와 공기업은 아직도 그들만의 동굴 속에 갇혀 빛이 비추는 동굴 밖을 돌아보지 못한다. ‘그저 봉급쟁이’일 뿐이라는 주민들의 오지랖 넓은 배려가 그들에게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을 몸에 익게 했고, 요즘 같은 실업시대에 와선 ‘철밥통’이라는 과히 기분 나쁘지 않은 별칭까지 선사하고 있다. 정약용의 목민심서 한 번 읽어보지 않은 수많은 예비 공무원들 역시 공직자로서의 사명감 따위는 기대하기 어려워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지구환경이 갈수록 악화되면서 가뭄은 더 빈번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 농민은 자연가뭄보다 더 끔찍한 가뭄을 겪고 있다. 제발 농민이 마음 편히 농사지을 수 있도록, 말 그대로 농업 기반을 조성하는 농어촌(기반)공사로 거듭나길 촉구한다. 농민이 살아야 농어촌공사도 존재하지 않겠는가. 순창군의 군정 혁신 주문은 지면도 부족하거니와, 입이 아플 지경이라 생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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