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분다(4)/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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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분다(4)/ 음반
  • 선산곡
  • 승인 2019.05.22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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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슨이 축음기(유성기)를 발명하여 원통음반을 통한 음악재생이 가능해졌다. 당시의 녹음기술은 오늘날과 달라서 재생시간이 길어야 5분 미만이었다. 연주회장에서 직접 듣는 것이 유럽 사교계의 전통이었지만 보다 짧은 소품들이 서민들의 각광을 받게 된 것은 당연히 진화를 거듭한 레코드 덕분이었다. 클라이슬러를 위시한 많은 작곡가들이 짧고 아름다운 곡들을 쓴 이유가 레코드의 등장과 무관치 않다.
오래전 녹음된 우리 음원들에도 그 특성이 있다. 그 예로 임방울의 <쑥대머리> 후반부 두어 소절이 생략된 것도, 단가인 <호남가>의 끝부분에 순창, 정읍 등의 사설 대목이 빠진 것도 같은 이유이다. 혹자는 그 지방이 무시당한 것이라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오해다. 남도민요의 대표 격인 <육자배기>는 ‘진양조 여섯 박자’라는 뜻으로 길고 느리게 불러야 제 맛인 잡가다. 일제강점기에 에스피(SP)로 녹음된 명창들의 <육자배기>가 원래의 가락보다 빠른 것은 모두 다 레코드 한 면에 몇 소절을 넣어야했던 조치였다.
도넛판이라 불린, 에스피(Standard Play) 레코드는 60년대까지도 제작되었는데 1948년에 이미 만들어진 엘피(LP)의 상용은 조금 늦은 편이었다. 엘피는 롱 플레이(Long Play) 할 수 있다는 뜻의 약자다. 전기모터를 통한 회전수를 줄여 지름 30센티인 한 면이 25-30분 가깝게 연주시간을 넓힌 것이다. 바늘로 재생해야하는 아날로그인 이 엘피는 스크래치에 의한 잡음이 생기기도 했지만 크게 문제되지는 않았다.
첨단시대라는 말이 걸맞게 이제는 디지털로 음원을 재생하는 시디(Compact Disc)가 발명되었다. 표준규격을 정하기 위해 회사에서 시디의 재생시간이 얼마정도면 좋을까 고민을 했다. 세계적인 지휘자 H·카라얀에게 자문을 구하자 카라얀이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면 좋겠다.”고 했다. 9번 교향곡은 대개 80분 정도 소요된다. 그 교향곡을 온전히 듣기 위해 음반을 뒤집지 말자는 뜻이었다. 그래서 오늘날 시디의 재생시간의 표준은 80분이다. 90분, 99분짜리 특별한 시디도 있지만 내가 사용해 봐도 그다지 큰 효율성이 없다.
번호가 699에 도달했다. 699, 꽤 많은 숫자로 이루어진 시디 개체 수다. 처음에는 무작정, 체계 없이 만들어낸 수가 수백이었지만 가요, 국악, 팝, 클래식, 엔까(演歌)에 이어 제3세계 음악 등으로 갈래를 정했다. 프랑스의 상송, 이태리의 칸초네, 포르투갈 의 파두, 그리스의 렘베티카, 스페인의 칸시온, 그 외에 러시아, 중국, 아프리카, 아랍권 음악까지 묶은 것이 ‘제3세계 음악’이다. 원칙은 없지만 편의상 음악평론가들도 그 갈래를 인정해 보여 나도 거기에 따르기로 했다. 클래식이 800이 넘어 1년 넘게 쉬는 동안 ‘제3세계’에 매달린 현재의 시디 수 700이 눈앞에 있는 셈이다. 중복된 래퍼토리가 많아도 듣는 순간에 충실한 이 제작의 무한함은 인터넷 덕분이다. 해적판 레코드 한 장 구하기도 힘들었던 옛날 내 처지에 비하면 결코 과유불급(過猶不及)이 아니다. 단 하나 뿐인 재킷을 스스로 디자인하는 재미, 색인목록을 겸해 재킷을 인쇄해 놓은 책은 벌써 10권 넘었다.
“평생 들어도 다 못 듣겠소.”
아내가 어느 날 한 말이다. 쌓아지는 개체 수를 보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웬만한 곡은 다 들으며 만들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그 과정의 ‘들음’이 풍요로 넘칠 것 같은데 절대 그렇지 못하다. 물론 전부 다시듣기를 할 수는 없겠지만 거실에, 안방에, 서재에, 승용차에, 시골 우거의 방까지 이 음원을 재생할 기기가 있다. 스마트 폰, 엠피 쓰리에 밀려 한물갔다는 시디지만 정말 끝장난 듯했던 레코드의 부활을 보면 첨단적응이 늦다는 게 그다지 나쁘지만은 않다. 이 끝없는 음악세계의 집착에 아내가 시비 걸지 않는 것은 정말 다행이다. 아내는 책이 쌓이는 것은 불만이지만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시디 만들기, 곧 음악 만들기가 내 인생의 마지막 즐거움인 것을 아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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