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설씨부인권선문첩 국보 지정 힘 보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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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설씨부인권선문첩 국보 지정 힘 보태야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19.05.22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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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래정공파 신씨문중에서는 매년 음력 11월 3일에 귀래정 신말주의 정부인(貞夫人) 설씨부인을 기리는 외손봉사를 500년 넘게 지내고 있다. 설씨부인이 신씨 집안에서 그토록 높이 받들어지고 있는 것은 그녀가 인격적으로 존경 받는 조상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규방문학사와 예술사를 고쳐 써야할 만큼 뛰어난 여류문인이기 때문이다.
설씨부인은 남편 신말주와 함께 순창으로 낙향해 있을 때인 1482년(성종 13) <설씨부인권선문첩(薛氏夫人勸善文帖)>을 남겼다. 이 권선문첩은 강천산에 절을 세우고 신도들에게 시주를 권하는 글을 짓고 사찰의 설계도를 그려 돌려보게 한 화첩이다. 전문이 1103자인데 원래는 한 폭의 두루마리로 된 것을 후손이 오래 보관하기 위해 한 폭에 4행 또는 5행으로 된 첩지를 16폭으로 나누어 병풍과 같이 접어 두는 족자로 만든 것이다. 전체 16폭 가운데 14폭은 권선문이고 나머지 2폭은 사찰의 채색도가 그려져 있다.
신사임당, 황진이, 계랑 등 조선 중기 여류문인들의 작품이 거의 시조로 단문인데 비해 이 ‘권선문’은 조선 초기의 작품으로 장문의 산문으로 이뤄졌다. 서체는 여인의 글씨로 볼 수 없을 정도로 활발한 행서로 쓰였는데, 조선 시대 전기에 풍미했던 조맹부체를 방불케 한다.
2폭의 사찰 채색도는 여성이 그린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고(最古)의 채색화다. 지금까지 알려진 조선 중엽 사임당 신씨 작품들보다 50년 이상 앞선 채색화다. 신사임당 그림이 초충(草蟲) 위주임을 감안할 때 <설씨부인권선문첩>은 여성이 그린 산수화일 뿐 아니라 극히 드문 채색화라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게다가 오늘날 사임당의 그림으로 알려진 작품들은 사임당이 그렸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임당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이른바 전칭(傳稱, 전하여 일컬음)작일 뿐이다.
지난 12일, 읍내 남산마을 충서당에서 고령신씨 귀래정공파 종회(회장 신태호)가 2019년 정기총회를 가졌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총회에 참석한 종원들은 1981년에 보물 제728호로 지정된 <설씨부인권선문첩>을 국보로 지정하기 위해 논의했다고 한다.
국보와 보물의 차이는 문화재보호법 제23조에 명시돼 있다. 보물 중에서 더 희귀하고 가치가 높다고 판단되는 게 국보가 된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첫째 보물 중 특히 역사적ㆍ예술적ㆍ학술적 가치가 큰 것, 둘째 제작연대가 오래됐으며 그 시대의 대표적인 것으로서 특히 보존가치가 큰 것, 셋째 제작 디자인이나 기술이 우수해 그 유례가 적은 것, 넷째 형태ㆍ품질ㆍ제재ㆍ용도가 현저히 특이한 것, 다섯째 저명한 인물과 관련이 깊거나 그가 제작한 것 등이다.
이 법령을 놓고 숭례문과 흥인지문(동대문, 보물 제1호)을 비교해보면 숭례문이 왜 국보로 지정되었는지 알 수 있다. 숭례문은 조선 초(1398)에 건립돼 현존하는 도성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됐다. 태조 때 건립돼서 세종과 성종 때에 크게 고친 후 오늘에 이르렀다. 반면에 흥인지문은 숭례문과 비슷한 시기에 건축됐지만, 지금 있는 문은 고종 때 새로 지은 것이다.
일부 문화재전문위원들은 “국보는 보물 중에서도 상징성ㆍ유일성ㆍ완전성이 뛰어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며 “굳이 시기적으로 구분한다면 1592년 임진왜란 이전의 문화재가 국보로 검토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위당 정인보는 1934년 순창까지 내려와 이 <설씨부인권선문첩>을 확인하고, ‘조선조 뛰어난 여류로서 문장에 있어서 설씨 부인이 사임당보다 더 솟을 것 같고 또 사임당에 비하면 선배여서 규방학사에 특필할 만한 광채’라고 그의 <담원문집>에서 극찬한 바 있다.
<설씨부인권선문첩>의 14폭에 적힌 권선문은 힘차고 빼어난 서체로 쓴, 여성이 남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장문의 산문이고 2폭에 담긴 사찰 그림도 조선시대 여성이 그린 가장 오래된 채색도이다.
이처럼 현재 보물 제728호인 <설씨부인권선문첩>은 추가로 국보로 지정될 수 있는 충분한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국보 지정을 위한 추진 운동을 신씨문중이나 설씨문중에만 맡기기에는 부족하다. 군이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나서야 한다. 그리고 전라북도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문화재 지정 절차는 광역자치단체의 문화재 지정 신청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중앙에서 활동하는 향우들도 지혜를 모으고 힘을 보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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