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문서의 심각한 언어 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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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문서의 심각한 언어 파괴
  • 림양호 편집인
  • 승인 2019.05.2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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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로 쓴다고 다 우리말인가?

“골목상권 상가 이용자에게 인센티브 성격의 상품권을 예산의 범위 안에서 지급할 수 있으며, 상품권을 지급받고자 하는 자는 인센티브 지급신청을 하여야 한다.” (순창사랑 상품권 관리 및 운영 조례)
“바닥 목재가 갈라진 부위는 메지 처리 및 그라인딩하고 바닥 목재가 줄면서 목재 간 벌어진 부분은 틈이 없도록 보완하기 바람. … 벽면에 날카로운 카도 부분 정비하기 바람.” (순창군의회 실태조사 결과보고서)

상품권 관리ㆍ운영 조례에서 ‘인센티브 성격’은 ‘장려금 성격’으로 보이고, ‘지급받고자’는 ‘받고자’로 바로잡아야 한다.
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는 외래어가 다수 반복 표기되고 있다. ‘메지’는 여러 의미로 사용되는 건축용어이나, 인터넷 네이버 지식백과를 찾아보니 “건축 용어 가운데 ‘메지’라는 말이 있다. 건축물에서 석재 따위가 이어 닿는 부분을 가리키는 말인데, 모새(가는 모래)에 시멘트를 많이 섞어 접착력이 좋게 한 ‘모르타르’(회반죽)를 바른다. 이 말은 언뜻, 일본말에 심하게 오염되어 있는 건축이나 건설 현장에서 꿋꿋하게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남은 토종 우리말 같은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것 역시 ‘目地’라는 일본말이다. 일본말로 ‘눈금(目)의 재료(地)’를 뜻하는 것이다”라고 적혀 있다. ‘그라인딩하고’는 ‘갈이를 하고’로 쓸 수 있다. ‘카도’는 일본말로 “모난 귀퉁이, 구석, 길모퉁이”로 써야 맞다. 내친김에 “경미한 하자→가벼운 하자, 노후한→낡은, 누락된→빠진, 몰탈→회반죽, 크랙→금, 쇄석→부순돌ㆍ깬돌, 용이하다→쉽다, 강구하여→세워ㆍ마련하여”로 쓰기를 제안한다.
우리말은 갈수록 심각하게 파괴되고 있다. 한문에 이어 지나친 영어 섬기기가 문제다. 특히 관공서에서 ‘공용문서는 한글로 쓴다’는 국어기본법을 잘 지키지 않고, 외래어와 외국어를 남용하고 있다. 이제는 지적도 아니지만 ‘희망 플러스’, ‘클린 재정’, ‘하이 서울’, ‘서울 리뉴얼’, ‘신뢰 프로세스’, ‘정책 브리핑’ … 우리 지역에서도 ‘클린 순창’, ‘섬진강 뷰라인’ 등 다 기억하지도 적기도 어렵다. 모범을 보여야 할 정부와 공무원들이 앞장서서 우리말을 버리고 영어가 섞인 말을 너무 많이 쓴다.
영어 간판, 어려운 행정ㆍ학술 용어, 맞춤법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기관과 언론도 문제다. 우리 말글을 바르게 이끌어 가야 할 국가기관과 언론이 외래어 남용에 앞장서고 있으니 참 한심하다.
외래어 많이 쓰기로 유명한 일본(후생성)에서도 “‘콘세푸토’는 영어 ‘CONCEPT’이라며 ‘기본적인 사고방식’이라고 하고, ‘마스타 푸란’은 영어 ‘MASTER PLAN’이라며 ‘기본계획’으로 써야한다”고 했단다. 그런데 요즘 한국의 실정을 보면 더 심해 보인다.
외국의 물건, 문화, 새로운 개념이 우리 속으로 들어오면서 남의 말이 그대로 들어오게 되는데, 이 말이 ‘외국어’다. 이렇게 들어온 외국어는 오랜 기간 쓰이고 변화를 겪으며 일부는 우리말(외래어)로 자리 잡는다. 외래어는 ‘버스, 뉴스, 라디오’ 등 우리말로 바꿀 수 없거나, 대체할 틈도 없이 오래 사용하여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아는 외국어에서 빌려와 우리나라 말처럼 사용하는 말이다. 반면, ‘밀크’(우유)나 ‘댄스’(춤)처럼 의미가 같은 우리말로 바꿀 수 있는 말은 외국어다. 하지만 외국어는 물론이고 외래어도 일부러 남용할 일은 아니다. 특히 외국어를 빌려와 사용하다 대체할 우리말을 찾았다면 당연히 우리말을 사용해야 한다. 우리말로 바꿀 수 있는 말까지 외국어로 표현하면서 ‘유식ㆍ박식’ 자랑하면 안 된다. 외국어를 사용하기 전에 충분히 생각해서 우리말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우리말로 써야 한다.
어려운 외래어와 외국어로 가득한 공공 언어를 쉬운 말로 국민과 소통하는 공공 언어로 바꿔야 한다. 관공서가 ‘우리말 수난 시대’를 부추긴다는 비판을 듣지 않도록 공무원들이 더 노력해야 한다. ‘쉬운 언어는 국민의 권리’임을 인식하고, 관공서부터 쉬운 공공 언어를 사용하여 소통에 힘써야 한다. 더구나 농촌 지역의 노령화된 주민을 생각하면 꼭 실천해야 할 일이다. 언어는 그 나라 민족의 얼과 혼, 역사이자 정체성이고 문화의 근본이다. 우리말이 수난 시대를 끝내고 꽃길만 걷게 할지는 우리의 태도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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