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부’ 장현순 씨 “안계시면 내가 허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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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부’ 장현순 씨 “안계시면 내가 허전해”
  • 윤승희 기자
  • 승인 2019.05.30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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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등 책암마을에 주위 칭찬이 자자한 ‘며느님’이 있다는 제보 전화가 왔다. 5월 신록 위로 내리쏟는 햇살의 기세가 한 풀 꺾인 지난 24일 오후,  효부라 소문난 주인공 장현순(71) 씨를 만났다.

문 없는 대문 기둥에는 ‘국가유공자의 집’ 명패가 걸려있었다. 대문을 들어서자 마당 한 쪽에 크기가 다른 솥, 두 개가 걸려있다. 큰 솥은 제법 솜씨를 내 아궁이까지 만들어져 있었다. 더운 열기를 시원한 물 한잔으로 눌러 앉히고, 막 첫 대화를 나누려던 찰나에 차 소리가 들렸다. 장 씨가 일어서며 “풍산노인복지센터에서 일과를 보내시고 지금 아버지(정판동ㆍ94)가 오시는 거”라며 현관을 나섰다. 복지센터 차량 도우미와 며느리 장 씨가 부축했지만 지팡이를 짚고 걷는 어르신 모습이 정정해서 마음이 놓였다. 정판동 어르신은 현관에 신발을 가지런히 모아두고 마루로 올라서 지팡이도 한 쪽에 세워두었다. 방으로 들어가 겉옷을 벗고 침대 위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며 휴식을 취했다. 옆에서 조용히 어르신 거동을 살펴주던 장 씨는 앉으면서 먼저 한마디 건넸다. “저렇게 쉬시다가 살그머니 주무셔요.”

▲세 아들 중 누가 제일 예쁘냐는 질문에 딸같은 ‘셋째 아들’을 말하며 웃는 장현순씨.
시부모님 공경하고 잘 봉양하는 효부라는 얘기 듣고 찾아왔어요.
=누가 그런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내 할 일 하는 것뿐이다.(손사래를 치며 수줍게 말했다).

어르신 일과가 어떻게 되나요.
=평일과 격주 토요일에는 풍산노인복지센터에서 낮 시간을 보내신다. 아침 드시고 8시 조금 넘으면 복지센터에서 모시러 온다. 복지센터에서 점심과 저녁 식사까지 하고 오신다.

어르신들 주로 집안에 계시면 노인우울증 등 건강에 안 좋다고 들었어요.
=맞다. 그래서 아버님이 귀찮아하셔도 꼭 복지관에 나가시도록 권한다. 사람들도 만나고 운동도 하시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대문에 걸린 국가유공자의 집 명패를 봤어요.
=6ㆍ25 전쟁에 참전하셨다. 그 때 부상을 입었는데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고 한 쪽 손이 약간 불편한 정도다.

어르신이 모습이 정정해 보여 마음이 놓여요.
=아직 큰 병은 없다. 지팡이를 의지해 느리지만 걷고 식사도 잘 하시고 잠도 잘 주무신다.

대화를 나누다 바라본 장현순 씨의 얼굴이 편안하다. 문득 살아온 이야기들이 궁금해졌다.

▲낮에는 복지센터에서 보내다 한 낮 볕이 수그러들즈음 집으로 돌아온 정판동씨(94)가 며느리 장현순씨 손을 잡고 마당을 걷고 있다.
언제 책암마을로 시집 오셨어요.
=남편은 25살, 나는 23살 때. 나는 남원 대산에서 나고 자랐다. 친정 친척 중에 초등학교 소사(과거 행정기관, 학교 등에서 경비, 잔심부름을 위해 고용한 사람)하는 분이 있었는데 시아버지도 대강초등학교 소사였다. 두 분이 알고 지내다 소개해 맞선을 봤다. (수줍게 웃으며) 그냥 괜찮았다. 마음에 들었다. 몇 달 만에 결혼했다.

결혼할 때 얘기 좀 해주세요.
=추운 겨울에 했다. 적성까지 트럭인가 타고와 여기 시집까지는 걸어왔다. 고무신 신고 땡땡 언 길을 걸어왔는데 춥더라. 나중에 들으니 친정아버지는 울면서 오셨다고 했다.

처음 시집생활은 어땠어요.
=나는 3녀1남 중 맏딸인데 남편은 4남2녀중 장남이다. 시집와서 보니 고등학교 다니는 시동생들이 있었다.(웃음) 시할머니, 시아버지, 시어머니 모두 이 집에서 함께 살았다.

‘이게 시집살이구나’라고 느낀 적은
=(웃으며) 철없이 시집와서 그런지 시집살이 그런 것도 모르고 살았다. 그냥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만 했다. 시할머니가 예뻐해 주셨다.

자녀분은 몇 두셨어요.
=아들만 셋이다. 결혼 이듬해 큰 아들이 태어났다. 그리고 두 해 터울로 둘째 셋째를 낳았다.

아들 자랑 좀 해주세요.
=(얼굴이 활짝 피며) 특별히 자랑할 것은 없다. 아이들이 잘 자라주었다.

소녀 적 기억나시는 때가 있지요.
=대산초등학교 다닐 때가 생각난다. 그 때는 모두 가난했다. 우리 집도 형편이 어려웠다. 그 때 할아버지가 풍으로 쓰러져 친정어머니가 모셨는데 친정어머니가 효부상도 받고 그랬다.

이 때 휴대폰이 울렸다. 큰 며느리 문연숙(40) 씨 안부전화였다. 며느리 생각을 듣고 싶어서 잠깐 통화를 부탁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 자랑부터 시작했다. “어머니가 얼마 전에 상도 타셨다.” 무슨 상을 탔냐고 묻는데, 장 씨가 방에 들어가 상패를 들고 나왔다. 2017년 구곡순담 100세 문화한마당에서 받은 표창패였다. “시부모님을 오랫동안 공경하고 봉양하여 건강하게 장수하실 수 있도록 큰 효행을 실천했기에 귀감으로 삼고자 드리는 상”이라 쓰여있다.

▲손을 잡고 집 안으로 들어서면서 시아버지 정판동씨 표정을 살피는 며느리 장현순씨.
무슨 상인가. 어머니는 쑥스러운지 말씀안하신다.
=아마도 그러신 거 같다. 어머니가 할아버지 정말 극진히 모신다. 식사하실 때도 반찬 골고루 드실 수 있도록 매번 올려주신다.

맏며느리로서 어머니 자랑
=정말 긍정적이시다. 여러 어려운 상황들이 있었는데 불평하지 않고 늘 기도하시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신다. 그리고 자식들을 늘 믿어주신다. 그런 부분들이 자식들에게 힘이 된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신지 10년 정도 됐다. 그 때 어머니 연세가 60이 넘었는데 일을 시작하시더라. 운전면허증도 따셨다. 힘들 때 자신을 다독이고 이겨나가는 모습 보면서 많은 걸 느꼈고 존경스러웠다.

며느리와 전화통화를 마치고 장 씨와 대화를 이어갔다. 며느리와의 통화 뒤여서인지 자식들 이야기로 말을 이었다.

못 다한 아들 자랑 좀 해보세요.
=(표정이 밝다) 큰 아들은 지금 마흔일곱이다. 대학교를 2번 나왔다. 수학과 나와서 수학 선생하다 전북의대에 다시 들어가더라. 지금 경기 부평 큰 병원에서 과장 의사다. 둘째는 물리치료사고 셋째는 신학대 나와서 홍성에서 목사다. 다들 제 몫하며 잘 살고 있어 좋다.

며느리가 시아버님 돌아가셨을 때 얘기를 잠깐 했어요.
=특별히 아픈데 없이 살았는데 가을에 겨울 잠바를 입고 춥다고 하더라. 보건소에 다녀오고 전주 병원에 입원하지 한 달 만에 돌아가셨다. 그 때 일도 새로 시작했다.

60 넘어 새 일을 시작했는데 두렵지 않았나요.
=집에 있으면 생각도 많이 나고 그래서 잊어볼라고 일을 시작했다. 마침 요양보호사 일을 하던 이웃이 그 일을 소개해줬다. 7년을 일했다. 남편이 운전을 했는데 그 빈자리가 크더라. 그래서 운전을 배웠다. 4번 떨어지고 붙었다.

운전면허증 딸 때 기분이 어땠어요.
=그냥 땄는가보다 했다.(크게 웃음)

많이 웃으시고 건강해보여서 마음이 좋아요.
=맞다, 아픈데 없다. 엊그제도 알바 갔다 왔다. 대강(면)은 조경, 나무를 많이 심으니까 봄에 풀매는 일이 많다.

하루 일과를 소개해 주세요.
=새벽에 교회 다녀와서 아버지랑 아침밥을 먹는다. 그 때 ‘아버지 나 일 같다 와요’하면 아버지가 ‘또 가냐’ 그러신다. 어느 날은 아버지가 ‘오늘도 가냐’고 먼저 물을 때도 있다. ‘오늘은 안가요 아버지’라고 대답하면 좋아하신다. 일하러 다니면 아버지가 ‘내 통장에 돈 있으니 빼서 써’라고 말씀하신다.

두 분 대화가 정겹다. 또 생각나는 대화를 얘기해 주세요.
=깔끔하셔서 식사하실 때 항상 손에 휴지를 들고 입가를 닦으신다. 그래서 ‘아버지 왜 그렇게 닦아 싸’ 하면 아버지가 ‘너도 늙어 봐’ 하신다. 그러면 ‘아버지 나도 늙었어’ 라고 대답하며 서로 웃곤 한다.(이 얘기를 하며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농사도 지으세요?
=집 주위로 밭이 있다. 고추도 심고 깨도 심었다. 고추 모 500개 심었다. 형제들이랑 나눠 먹고 그런다.

그 때가 제일 행복했다고 생각되는 때 있지요.
=아이들이 장가가기 전에 이 집에서 함께 모여 살았을 때가 제일 좋았던 거 같다.

하고 싶은 말씀이나 바람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지금처럼 건강하게 계시다 가시면 좋겠다. 자식들은 할아버지 요양원에 계시면 엄마가 조금 편할 거라고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집에 계셔야 든든하다. 혼자 있는 거보다 든든한게 있다.

장 씨는 인터뷰 내내 웃었다. 며느리 말처럼 긍정적이고 밝다. 시부모 공경과 봉양을 당연한 일상인 것처럼 말해서 ‘효부’라는 말이 과장된 치장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 찍으면서 혹시 긴장할까봐 기습질문을 했다. “세 아들 중에 누가 제일 예쁘세요?” 바로 “셋째 아들”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딸 같은 아들”이란다. 저런 환한 웃음을 선사하는 셋째아들이 어떤 아들인지 알고도 남음이 있었다. 다른 형제들이 시샘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막내라 다른 형들도 예뻐한다”고 덧붙였다. 대문을 들어서며 보았던 솜씨 좋은 아궁이도 그 예쁜 셋째아들 솜씨란다. 그 솥에 고추장도 담근다는 어머니의 웃는 얼굴에 행복과 사랑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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