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여쾌오/ 그런 놈과 같이 있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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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여쾌오/ 그런 놈과 같이 있다는 게
  • 정문섭 박사
  • 승인 2019.06.04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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羞(부끄러울 수), 與(더불어 여), 噲(목구멍 쾌), 伍(대오 오)
정문섭이 풀어 쓴 중국의 고사성어 197

《사기》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나온다. 번쾌(樊噲)와 한 무리가 된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다.

  이 성어를 풀이하다 보니 남쪽 해안가 Y군에 사는 친구가 ‘정치인 S’에 대해 들려준 얘기가 새삼 떠오른다.
  S는 시골 초등학교 5학년 여름에 큰 도시로 나가 중·고등학교를 졸업하여 서울 모 대학을 다녔다. 외모가 번듯하여 방송사기자가 되었다. 어느 날 한 유력정당이 ‘젊은 피’라는 명분으로 그를 영입하여 마침내 큰 도시에서 큰 표 차로 상대를 따돌리고 당선되는 영광을 안게 되었다.
  그런데 그가 의원이 되고 유명 정치인이 되는 데는 사실 고향사람들의 후원이 컸다. 초등학교 동창들은 돈을 아끼지 않으며 후원하는 이가 많았는데 그중에는 개인적으로 빚을 내서 지원하다가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도 있었다. 그들이 S를 만나고 싶었지만 S는 그들을 만날 생각도 없었고 전화도 받지 않았고 ‘감사했다’는 문자 메시지 하나도 보내지 않았다. 사람들의 입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배은망덕한 놈'이라고.
  한 절친이 S를 만나 이런 소문을 말해주며 충고하였다. 그가 소파에 비스듬히 누우며 귀찮은 듯 거만한 웃음을 지었다.
  “어이 친구, 봉황의 뜻을 어찌 참새가 알겠는가. 그런 자들한테 후원을 받은 기억도 지우고 싶어. 그런 사람들과 같이 어울렸다는 것이 정말이지 창피하고 수치스럽기만 해. 정말 지겨운 ㅊㄴ들!”
  나중에 그가 더 높은 자리로 발 돋음 할 기회를 잡았지만 그 결과는 참패였다. 그의 경박한 태도와 결정적인 순간에 저지른 말실수가 주요 패인이었다. 특히 그를 후원했던 많은 고향사람들이 반대편에 서서 열심히 뛴 것을 본 사람들이 ‘왜 그토록 반대하는지‘를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유방이 항우와 천하통일을 놓고 다툴 때 한신을 대장군으로 삼은 것은 큰 행운이었다. 한신이 능력을 발휘하여 조나라와 제나라를 평정한 후 제나라의 가왕(假王)으로 봉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유방이 그를 견제하여 거절하려고 했으나 장량(張良)이 ‘항우를 이겨 천하를 얻기 위해서는 한신이 요구한 것을 들어줘야한다.’고 건의하므로 이를 받아들여 제왕으로 봉했다. 그러나 유방은 항우를 물리친 후에 바로 한신을 초왕으로 봉하여 그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막았다.  
  그때 과거에 항우의 휘하에 함께 있었을 때 친하게 지냈던 종리매(鍾離眛)가 한신에게 몸을 의탁하러 왔다. 평소 종리매에게 여러 차례 괴롭힘을 당한 유방이 그를 압송하라고 했으나 한신이 차마 그리하지 못하고 차일피일 미루었다. 어떤 자가 ‘한신과 종리매가 모반을 한다.’고 밀고하므로 제후의 회합을 핑계로 한신을 불러들이려고 하였다. 꺼림칙하게 생각하고 있던 한신에게 어떤 자가 ‘종리매의 목을 갖고 알현하라.’고 권하였다. 한신이 종리매와 이 일을 상의하였다.
  “유방이 초나라를 공격하지 못하는 것은 내가 공(公)에게 있기 때문이오. 만일 나를 잡아 자진해서 유방에게 잘 보이려고 한다면 내가 오늘 죽게 될 것이고 아마 공도 머지않아 뒤따라 망할 것이오. 당신은 장자(長者)가 아니오.”
  종리매가 꾸짖으며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하고 말았다. 한신은 유방에게 종리매의 목을 바쳤지만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다. 유방은 한신의 능력을 두려워하여 우선 병권을 빼앗고 이어서 그의 지위를 회음후(淮陰侯)로 강등시켰다. 한신은 그제야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했다.
  “과연 사람들의 말이 맞구나. 교활한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가 삶기고, 높이 나는 새가 사라지면 좋은 활도 감춰지는 이치를 모르다니(토사구팽).”
  그 후 한신은 고조(유방)가 자신의 재능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알고 병을 핑계로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밤낮으로 유방을 원망하면서 마음속으로 강후와 영음후로 봉해진 주발(周勃)이나 관영(灌嬰) 등과 같은 반열이 된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였다. 어느 날, 한신이 번쾌(樊噲)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번쾌는 무릎을 꿇고 공손하게 절을 하며 그를 맞았다. 잠시 머문 후 한신이 떠나려 하자, 번쾌는 자신을 신하라고 부르며 이렇게 말했다.
  “대왕께서 누추한 곳을 찾아 주시다니 신의 영광입니다.”
  그러자 한신은 문을 나서며 웃으며 말했다.
  “내가 결국 번쾌 등과 같은 지위가 되고 말다니(수여쾌오).”
  번쾌는 원래 개백정 출신으로 유방을 도와 천하를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워 벼슬이 좌승상에 이르렀으며, 후에 무양후(舞陽侯)에 봉해진 사람이었다.

  이 성어는 한신의 불길한 앞날을 예언하는 일종의 암시적 표현이었다. 대장군을 거쳐 한때 제나라와 초나라 왕을 지냈던 자신이 어느덧 권력투쟁에서 밀려나 회음후로 내려가 ‘자기보다 한수 아래로서 한참 못 미친다고 생각했던 번쾌 등과 같은 대우를 받는 신세’가 된 자신의 입장을 자조하는 말이었다. 훗날 사람들은 이 성어를 ‘용렬한 사람과 어울리거나 동등한 대우를 받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긴다.’는 말로 비유하여 사용하였다. 

글 : 정문섭 박사
     적성 고원 출신
     육군사관학교 31기
     중국농업대 박사
     전) 농식품부 고위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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