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기억해야 할 문화재 지킴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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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기억해야 할 문화재 지킴이들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19.06.19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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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이래 수많은 침략 때문에, 식민지 치하와 한국전쟁의 포탄 속에서, 그리고 돈만을 밝히는 속물 동족 때문에 이 땅의 수많은 문화재들이 사라져 갔다. 눈물로 바다를 건너 일본 곳곳에, 낮선 외국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그 많은 우리 문화재들. 10만여 점 이상의 국보급 문화재가 해외에 떠돌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감동적인 것은 소중한 문화재를 지킨 선각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며, 때로는 상관의 명령을 거역하면서, 또 전 재산을 털어 귀중한 문화재들을 지켜냈다.
6월 22일은 ‘문화재지킴이의 날’이다. 문화재청이 작년에 이날을 제정하게 된 배경에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역사적 사건과 관련이 있다.
‘문화재지킴이의 날’로 제정된 6월 22일은 정읍의 선비 안의와 손홍록이 전주사고의 실록을 내장산으로 옮겨 온 날이다. 1592년 4월 조선을 침략한 일본이 부산을 함락하고 북상하며 성주와 충주, 서울 춘추관 사고에 보관해 오던 ‘조선왕조실록’이 20여일 만에 모두 전소되고 전주사고마저 위험에 처한 상황이었다. 안의와 손홍록 등이 전주사고로 달려가 <조선왕조실록>과 <고려사> 등 64괘짝을 내장산 용굴암으로 옮겨 일 년이 넘도록 지켜냈다. 전란 속에서 자발적으로 역사와 문화재를 지켜낸 이들은 문화재 지킴이의 선구자였다. 이로 인해 《조선왕조실록》은 온전히 후세에 전해질 수 있었고, 오늘날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전 세계인의 문화재가 되었다.
1950년 지리산 남서쪽 구례군에 자리하고 있는 화엄종의 본산 화엄사에 위기가 닥쳤다. 6.25(한국전쟁) 전후로 지리산은 남부군, 빨치산들의 본거지가 되었다. 당시 제18전투경찰 대대장이었던 차일혁 총경에게 빨치산들의 은신처를 없애기 위해 “화엄사를 전소하라”는 유엔사령부의 명령이 하달됐다.
“절을 불태우는 데는 한나절이면 족하지만, 절을 다시 짓는 데는 천년이 걸려도 부족하다”며 항일운동가 출신 차일혁 총경은 명령을 거부했다. 차일혁은 묘안으로 각황전의 문짝 하나만 떼어내서 불태우는 것으로 화엄사를 지켜 냈다. 4점의 국보와 8점의 보물 등 문화유산의 보고인 화엄사를 지킨 차일혁은 부당한 명령을 거부한 대가로 그 뒤 한직을 전전했다.
간송 전형필은 휘문고보 시절 미술교사였던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을 만나면서 민족 문화재에 눈뜨기 시작했고, 일본 조도전대학에 유학할 때인 23세에 위창 오세창을 만나면서 인생의 행로를 정했다. 전형필은 이후 오세창에게서 서화골동을 보는 눈을 키워나갔다. 전형필에게 ‘산골짜기 흐르는 맑은 물과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라는 뜻의 아호 ‘간송(澗松)’을 붙여준 사람도 바로 그다. “문화 수준이 높은 나라가 합병된 역사는 없다”는 신념으로 조선의 독립을 굳건히 믿으며 일제의 수탈로부터 민족의 얼과 혼을 지켜내자는 뜻을 함께했다.
일제강점기 24살 젊은 나이에 논 800만 평, 지금 돈으로 6천억 원의 재산을 상속받은 거부 전형필. 그러나 돈과 안목이 있다고 해서 아무나 쉽게 갈 수는 없는 그 길을 간송은 택했다. 1938년 성북동에 최초의 개인 박물관인 ‘보화각’(지금의 간송 미술관)을 짓는다. 그리고 간송은 삼국시대부터 조선말에 이르기까지 전 시대에 걸쳐 서화 조각과 공예, 조형미술 등 모든 분야의 유산을 모았다. 조선시대 풍속화가 신윤복의 <미인도>와 <혜원풍속도>, 한글의 창제 목적과 원리를 밝힌 <훈민정음 해례본>까지.
전형필은 일본에 사는 영국 출신 변호사 가스비의 수집품 20점을 기와집 400채, 요즘 서울 아파트 최소 시세로 1200억 원에 해당하는 거액을 지불하며 문화재를 되찾아 왔다. 또 큰 기와집 한 채가 1000원 할 때 1만1000원을 주고 원본 <훈민정음 해례본>(국보 70호)을 사들인 것은 우리의 유일무이한 문화재를 일제의 손으로부터 지켜낸 민족사의 쾌거라 할 만하다. 이처럼 그는 전 재산을 팔아가면서 일제에 넘어갈 뻔한 우리 문화재들을 지켰다.
6월 22일은 우리의 역사와 정체성을 지키는 ‘문화재지킴이의 날’이다. 오늘날 우리나라가 문화강국의 지위를 누리게 된 데에는 모든 것을 걸고 문화재를 지켜낸 문화재 지킴이들의 숭고한 문화재 사랑이 있었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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