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약조로/ 이슬처럼 사라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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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약조로/ 이슬처럼 사라지는
  • 정문섭 박사
  • 승인 2019.06.26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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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태로울 위(危), 같을 약(若), 아침 조(朝), 이슬 로(露)
정문섭이 풀어 쓴 중국의 고사성어 198

《사기》 상군열전(商君列傳)에 나온다. 위태로움이 아침 이슬과 같다.
테니스장에서 TV를 보던 ㄹ이 지나가는 말을 하였다.
“저 친구 ㅈ, ㅊㅇ이 ㅇㅇ시장으로 있을 때에 측근 중의 측근이었는데…, 이제는 ㅊㅇ를 치는 최전방 저격수가 되어 버렸네.”
사람들이 관심을 표시하며 ㅈ와 어떤 관계냐고 물었다.
“제 대학동기입니다. 그때는 저 정도 인물이 될 줄은 몰랐는데. 이제는 유명한 정치평론가가 되어 있네요. 분기에 한 번 하는 동기 모임에 꼭 나오는데 그의 말을 듣다보면 맞는 말이 많아 들을 만 합니다.”
“ㅊㅇ와는 왜 헤어졌답니까?”
“한 마디로 토사구팽당한 거죠. 자기를 하늘처럼 떠받치던 사람들을 다 내친 거죠. 충성을 다하던 측근들도 그가 그렇게까지 돈만 밝히는 파렴치한 자인지 몰랐다며 다 떠났답니다. 일부 남아 있는 사람들? ㅊㅇ가 좋아서 안 떠난 게 아니고 그간 자기가 지지해온 게 아까워서 또 남들이 배신한 사람이라며 손가락질 당할까봐 할 수 없이 붙어 있는 거라고 말합디다. ㅈ는 ㅊㅇ에게 ‘권불십년이란 말이 있습니다. 지금의 지위가 영원할 것이라 과신하지 마십시오. 아침이슬처럼 사라질 것이니 뒷정리나 잘 하세요.’라고 한마디 하고 나왔다고 합디다. 지금 그 말이 딱 맞아떨어진 셈이죠.”  

전국시대 후반, 공손앙(公孫鞅)은 위(衛)왕 후궁의 소생이었으나 위나라에서는 뜻을 얻지 못하게 되자 진으로 들어왔다. 그의 실력을 인정한 효공(孝公)이 그를 발탁하여 상국에 임명하였다. 상앙은 효공의 신임과 지지를 바탕으로 10년 동안 변법(變法)을 단행하고 강압 정치를 펴 진을 부강하게 만들었다. 효공이 그의 업적을 표창하기 위해 상(商)지방의 땅 15개 읍(邑)을 하사하고 그를 상군으로 호칭하게 하였다.
상앙의 변법은 공평무사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처벌을 받은 자들은 눈물도 없는 냉혹한 법이라며 원한을 가졌다. 특히 태자가 법을 어기자 상앙은 ‘법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위에서 이를 어기기 때문이다.’라며 태자를 처벌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태자는 왕위를 이을 신분이어서 처벌할 수 없었으므로, 그 대신 태자의 후견인인 공자(公子) 건(虔)을 처벌하고 태자의 교육을 담당한 공손가(公孫賈)를 자자형(刺字刑)에 처했다. 공자 건이 4년 후 또 범법을 하므로 코를 베는 형벌에 처했다. 이로 인해 상앙은 태자와 그 측근들의 깊은 원한을 사게 되었고 군주의 종실이나 외척 중에 그를 원망하는 자들이 많아졌다.
이 무렵 조양(趙良)이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상앙이 먼저 말을 꺼냈다.
“난 그대와 계속 교제하기를 원하오. 그대는 어찌 생각하시오?”
“저는 굳이 사귀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불초하여 재상의 명령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나에게 탐위(貪位)·탐명(貪名)한 자라고 비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나의 통치방식에 무슨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이오?”
조양이 요순의 도(道)와 주나라 무왕의 경우를 예로 들고, 인심을 얻는 자는 흥하고 인심을 잃는 자는 무너진다. 덕을 믿는 자는 일어나고 힘을 믿는 자는 멸망한다는 옛 성현의 말을 이용하며 상앙에게 충고하였다.
“상군께서 저질은 몇 가지 사건을 보면 아무래도 인심을 얻지 못할 것 같습니다. 백성들의 이익보다는 큰 궁궐을 짓는 데만 관심을 가지고, 태자의 태사와 태부를 욕 먹이며 공자들을 핍박하였습니다. 뭇 백성들을 무서운 형벌로 다스려 원망이 겹치니 상군 스스로 재앙을 쌓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상군이 타는 수레에는 힘세고 신체 건장한 장사가 옆에 타서 수행하며 창을 가진 병사가 양쪽 옆에서 수레와 함께 달려야만 하고 이 중에 하나만 갖추어지지 않으면 당신은 무서워서 나갈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제가 보건데 상군은 이제껏 하늘에서 내려 준 목숨을 다 누릴 수 없는 행동을 해온 것입니다. 당신은 아직까지도 봉지인 상의 땅을 버리지 못하고 진의 정치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것을 영예로 여겨 백성들의 원한을 사고 있습니다. 만약 지금의 왕이 하루아침에 세상을 떠나 조정에 서지 못하게 되면 어찌 당신을 제거하려는 명분이 적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의 파멸은 한 발을 들고 넘어지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잠깐 사이에 다가올 것입니다(교족이대翹足而待). 이처럼 상군이 처지는 아침 이슬처럼 위태로운데도(위약조로) 아직도 목숨을 연장하여 더 오래 살기를 바라십니까? 다 내려놓으십시오.”
그러나 상앙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따르지 않았다. 그로부터 다섯 달 뒤 효공이 죽고 태자가 왕위를 이었다. 바로 혜문왕(惠文王)이다. 공자 건과 그를 따르는 자들이 상앙이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고 밀고하니 상앙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이 깊은 왕이 바로 잡아들이라는 명을 내렸다. 상앙이 달아나 함곡관 부근의 여관에 묵으려 했다. 그러자 여관 주인이 말했다.
“상군의 법에 따르면 여행증이 없는 손님을 묵게 하면 그 손님과 연좌되어 벌을 받게 됩니다.”
“아, 신법의 피해가 급기야 내 몸에까지 미치게 되었구나(작법자폐, 作法自斃).”
위나라로 도망갔으나 쫓겨난 상앙이 봉지인 상읍(商邑)으로 가서 수하들과 병사를 동원하여 정나라를 쳤으나 결국 진의 군대에 의해 잡혔다. 상군이 거열형(車裂刑)을 받고 그의 가족이 모두 죽임을 당했다.
아침이슬이 햇빛을 받아 말라 금방 없어지듯이 운명의 위태함을 비유하는 것으로 아주 큰 위험에 처해 있거나 인생의 무상을 빗대는 말로 사용하였다. 조로지위(朝露之危)라고도 한다.

글 : 정문섭 박사
     적성 고원 출신
     육군사관학교 31기
     중국농업대 박사
     전) 농식품부 고위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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