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분다(8)/ 편지
상태바
바람이분다(8)/ 편지
  • 선산곡
  • 승인 2019.07.24 15: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글씨로서 자기의 마음을 남에게 전달하는 것이 편지다. 편지를 쓸 때면 내용도 중요했지만 육필에 더 정성을 들였다. 틀린 글자는 물론 단 한 자 보기 싫게 써진 글자가 있어도 그냥 넘기지 않았다. 마지막 서명이 불량해서 다시 쓴 적도 있었다. 편지나 엽서 글이 붓과 먹으로 쓴 예술성 깊은 옛 서찰에는 비할 수는 없다. 그러나 편지에 드러낸 육필은 하나의 작품이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렇게 이웃에 편지를 써 왔다. 내가 편지 쓸 수 있도록 거기 계셔주신 것, 그 감사의 마음으로 썼던 편지들이 족히 수천 통은 넘었다. 왜 편지 안 써? 당연한 듯 편지 써주기를 바란 사람들이 한 말이었다. 군에 간 아들조차 아빠의 편지를 기다린다고 했다. 일과가 끝나면 날마다 수신자부담 전화를 하면서도 아들은 아빠의 편지를 받으면 힘이 솟는다고 했다.
30여 년 전이었다. 운동장 모서리, 산수유 껴안은 학교담장 건너 우체국 건물이 있었다. 편지를 쓰면 직접 부치는 ‘우체국 창구’의 정서는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쉬는 시간 부치러 가기 전 벤치에 앉아 잠깐 쉴 때였다. 곁에 앉은 동료직원이 내 편지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겉봉투 글씨가 어디서 본 듯하다고 했다. 모악산 밑에서 근무할 때 어떤 선생님께 편지가 온 날이면 난리가 났었다는 표현이 조금 거창했다. 가만히 짚어보니 내가 보낸 편지였다. 윤독(輪讀)된 내용은 잊었지만 글씨는 기억난다고 했다. 내 편지를 받았던 그 사람과 글씨를 기억해준 사람이 함께 근무했었음을 그때 알았다.
편지에 대한 일화가 제법 많다. 내 편지를 편지수집가에게 공공연히 팔아먹었다는 친구가 있었는데 편지를 수집하는 사람도 있었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편지를 부쳐달라는 내 심부름을 받은 제자는 길을 묻는 낯 선 사람에게 들고 있던 편지를 빼앗겼다고 먼 훗날 고백하기도 했다. 누구의 동료는 내 편지를 복사해서 외우고 다녔다는데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람이 남에게 보낸 편지를 설마 그랬을까.
좋은 일만은 아니었다. 50년 전 편지 한 통이 필화(筆禍)가 되어 따돌림 받았던 우정의 고통도 있었다. 군에서 휴가를 나온 나에게 날마다 편지를 써 달라던 선임의 요구는 애원에 가까웠다. 모아두었던 편지 한 통을 누군가 훔쳐갔다고 애달아하던 기호 형도, 약수통 물이 흘러 엽서 한 장이 젖어서 며칠을 속상해했다는 광신이도, 문갑에 잘 모아두고 있다고 자랑하던 종수형도 이젠 이 세상에 없다. 그들 따라 그 많은 편지들도 재가 되었음을 나는 안다. 나는 그 편지들을 나는 어떻게 썼을까. 연정을 담은 끈적거리는 언사를 썼을 리도 없었고 틀에 박힌 안부는 당연히 외면했던 그 사연들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었을까.
가끔, 내가 보낸 편지를 잘 보관하고 있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돌려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가당찮은 요구였지만 모두 정중한 거절을 받았다. 내 편지의 값어치가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진 것은 사실이었다. 꽤 오래 전이지만 지금 어느 지방 신문사대표는 내가 보냈던 편지를 전부 복사해서 다시 내게 보내주기도 했다. 그 마음을 지금도 나는 잊지 않고 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오래전에 편지 쓰기 대회가 있었다. 그 무렵 우수상, 대상을 받은 작품(?)들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궁금했다. 그러나 그 편지글을 읽은 적이 없다. 지금 생각하니 내가 지닌 색깔과 비교되는 혼탁(混濁)을 경계한 것은 아니었을까. 편지는 그냥 내 생활이었다. 그 생활의 리듬이 어느 순간에 잉걸 사위듯 꺼져버렸다. 일기를 쓸 시간에 수필 한 편을 써라, 편지 한 장 쓸 시간에 시 한 편을 써라. 오래 전 누군가가 내게 한 말이었다. 그의 말을 따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언제부턴가 일기도 편지도 쓰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 시간에 시 한 편, 수필 한 편 쓴 것도 아니다. 그냥 게을러서? 그것도 아니다. 글줄 쓰는 사람으로서 편지가 주는 위상이 같잖아서도 아니다.
지금 편지를 자주 쓰지 않는 이유는 없다. 격식을 지우면서 그 사람과 내통할 수 있는 정열이 꺼진 탓일 게다. 가끔 들었다 다시 놓는 펜. 돌아서서 생각해본다. 전처럼 나는 다시 편지를 쓸 수 있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금과초등학교 100주년 기념식 4월 21일 개최
  • [순창 농부]농사짓고 요리하는 이경아 농부
  • 우영자-피터 오-풍산초 학생들 이색 미술 수업
  • “이러다 실내수영장 예약 운영 될라”
  • [열린순창 보도 후]'6시 내고향', '아침마당' 출연
  • 재경순창군향우회 총무단 정기총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