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분다(9)/ 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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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분다(9)/ 명연
  • 선산곡
  • 승인 2019.08.07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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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연(名演)

유튜브의 역사는 짧다. ‘You는 모든 사람을, Tube는 미국 속어로 티브이를 의미한다. 유튜브는 당신이 원하는 티브이, 당신이 원하는 콘텐츠를 선택해서 보는 티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조어’라고 인터넷에 나와 있다. 덕분에 레코드나 시디를 통해 귀로만 들었던 음악을 이제는 영상과 함께 좀 더 쉽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일부분일 뿐이지만 세계적인 거장의 지휘,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솔리스트, 관현악단 파트별 연주자들의 모습이나 소리로만 들었던 악기들을 보며 실감나게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인터넷 유튜브를 뒤적거리다보면 가끔 명품 중의 명품연주를 만나기도 한다.

 

레코드 2장으로 된 아르히브 레이블, 총각시절 구입했던 칼 리히터의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집>은 지금도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소장목록 중의 하나다. 레코드 흠집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해 카세트테이프에 녹음을 해서 그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듣고 또 들었다. 많은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있지만 내게 칼 리히터가 지휘하는 뮌헨 바흐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그 누구도 능가할 수 없는 최고라는 신념으로 굳어있다. 검색어 ‘칼 리히터’ 하나로 유튜브에서 만난 <관현악 모음곡집>. 내 눈물의 약은 있구나. 내 상처에 약은 있구나. 레코드를 올리지 않고도 절망의 아픔을 치유하듯 모음곡을 전부 들었다. 실황이 아닌 스튜디오 녹음이어서 네 개였던 모음곡이 바뀔 때마다 리히터의 얼굴 사진도 네 번 바뀌었다. 1시간 반의 단순한 영상이었지만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베토벤의 교향곡 7번 2악장. 흔히 알려진 레퍼토리도 아니었는데 그야말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악장이 된 것도 그리 오래되지 않아 보인다. 베토벤의 9개 교향곡 모두가 너무 유명한 탓도 있지만 특히 7번은 어떤 계기 없이 내게도 천천히 다가온 명곡이었다. 그 중 2악장 알레그레토의 연주시간은 약 8분 정도. 이 악장은 팝으로, 상송으로 따로 독립되어 불리기도 한다. 그 2악장을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지휘를 한다. 그의 손짓, 고통을 위무하는 듯 장엄하기만 중간부분을 리드하는 지휘자의 손짓에 눈물이 난다. 눈을 감고 지휘하는 카라얀도, 아바도의 지휘도 그냥 넘어갈 수 있었는데 클라이버의 지휘를 보는 순간 울컥해진다. 그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위대한 지휘자의 힘 때문이다. 그의 지휘에 위로 받고 있는 것이다.

박수소리에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등장한다.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연주다. 아나체크 카스프스지크의 지휘아래 연주가 시작되었지만 1악장의 긴 서주 때문에 그의 손은 아직 건반 위에 있지 않다. 눈을 감고 연주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그녀의 머리가 백발이다.
둘째형의 발인 날이었다. 형이 재직했던 학교의 관악대가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2번 3악장을 연주하며 상여 앞을 행진했다. 그 악장은 장송행진곡으로도 불린다. 관악대의 연주는 내 감상(感傷)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었다. 합주가 가끔 어긋났어도, 빨랐어도 거슬리지 않았다. 관악대의 연주가 그냥 감사했고 눈물겨운 명연주라는 생각뿐이었다. 쇼팽의 그 곡을 연주한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음반이 내게 있었다. 레코드를 올릴 때마다 그 심상(心傷)의 여운이 떠올라 늘 가슴 아팠다. 관악대의 연주가 울렸던 날의 하늘 때문이었다. 그 마르타 아르헤리치, 백발의 그녀가 연주를 시작한다. 내 청춘의 끝자락이었던 그 때, 그 하늘을 올려다보았던 시절이 떠오른다. 백발인 그 연주를 보고 있는 나도 염색약에 감추어진 백발이다. 세월은 그렇게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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