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와 함께 살펴본 20세기 후반의 한국사회(6)
상태바
대중가요와 함께 살펴본 20세기 후반의 한국사회(6)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19.08.13 15: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66년의 대중가요와 한국사회 ②

한동안 이 땅에는 대중음악의 ‘별세계’가 존재했다. 바로 ‘미8군 무대’라고 부르는 세계다. 1960~70년대에 빛나는 활약을 보인 한국의 대중음악인들을 얘기할 때 전설처럼 언급되는 바로 그 무대이다. 전국 각지에 미군 주둔 캠프가 있었고 그곳에는 미군을 대상으로 하는 클럽이 있었는데 그곳 무대가 미8군 무대이고 여기에서 연주하거나 노래하는 이들을 미8군 연예인이라고 했다. 미8군 무대는 당시 국내 음악인들에게는 최고의 무대였다.

▲매혹적인 저음가수 문주란
한국 대중음악 발전 산실 미8군 무대
마릴린먼로, 엘비스프레슬리 공연

휴전 이후 미군이 대규모로 주둔하게 되는 1950년대 중반 이후, 미8군 무대의 체계가 잡히기 시작한다. 그전까지는 미군위문협회(USO) 공연단이 한국을 직접 방문해 위문공연을 벌이는 일이 계속되었다. 마릴린 먼로와 엘비스 프레슬리도 한국전쟁 중 또는 휴전 이후 방한해 공연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일상적이고 체계적인 미군 위문공연을 위해선 한국 연예인을 편재하는 방법 외엔 없었다.
1957년경 미8군 쇼 무대에 한국 연예인을 송출하는 용역업체들이 앞 다투어 등장했다. 이때 생긴 화양, 유니버설, 삼진 등의 용역업체들은 산하에 쇼 단체들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했다. 경쟁이 치열했던 이유는 미군 당국이 쇼에 대한 심사(오디션)에 엄격했기 때문이다.
미8군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왕도는 없었다. 최신 레퍼토리를 입수해 끊임없이 연습해 실력과 흥행성을 배가하는 길이 유일했다. 악보가 거의 없던 시절이었기에 미군 라디오 방송을 녹음하고 최신 음반을 입수해 일일이 채보하면서 소속 용역회사 창고에서 연습했다는 얘기는 미8군 무대 출신 음악인들의 공통된 후일담이다.
미8군 쇼 무대에서 단련한 음악인들은 60년대부터 한국인 대중을 상대로 ‘일반 무대’에 본격적으로 진출해 파란을 일으켰다. 미8군 출신 음악인들은 이봉조, 김희갑, 신중현, 김홍탁 등의 연주자(및 작편곡가)들과 최희준, 한명숙, 현미, 패티김, 윤복희, 펄시스터즈 등 수많은 미8군쇼의 스타들이 한국 대중음악의 전면에 등장했다. 그들은 미8군 무대에서 익힌 실력으로 가요계의 물줄기를 바꾸며 한국 대중가요의 르네상스를 이끌게 된다.

샹송가수 최양숙
국내 최초의 샹송 여가수 최양숙

최양숙은 ‘국내 최초의 샹송 여가수’로 대중에게 서서히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서울대 음대 출신이라는 학벌 프리미엄, 우아한 분위기, 아름다운 외모와 매력적인 보컬은 60년대 남성 팬들의 마음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성악에 기초를 둔 클래식한 창법으로 가요를 노래한 최양숙은 60년대 대중가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가수로 평가받고 있다.
1966년은 그녀의 음악 인생에서 최고의 해였다. MBC 10대 가수에 선정되고, 제 2회 TBC 방송가요대상에서 최희준과 함께 남녀 가수상을 수상하며 최정상의 인기가수로 떠올랐다.
<황혼의 엘레지>는 65년에 발표하고 66년에 크게 히트한 노래로 60년대를 대표하는 대중가요이자 최양숙의 대표곡이 되었다. 최양숙은 67년 <호반에서 만난 사람>을 발표하고, 70년에는 고은 시인의 노랫말로 된 <세노야>와 <가을편지>를 발표한다. <세노야>는 양희은의 노래로 크게 인기를 얻었고, 김민기 작곡의 <가을편지>는 75년에 뒤늦게 크게 사랑을 받은 노래다.

트위스트 물들인 <울릉도 트위스트>

60년대 슈퍼 걸그룹 이시스터즈는 <울릉도 트위스트>을 비롯해 <목석같은 사나이>, <화진포에서 맺은 사랑>, <남성금지구역>, <날씬한 아가씨끼리>, <좋아졌네> 등을 히트시키며  68년 펄시스터즈가 등장하기 전까지 국내 걸 그룹계의 절대 권력자였다.
경제 재건이 국가적 모토였던 당시, 온 나라를 신나는 트위스트 리듬으로 물들인 밝고 경쾌한 <울릉도 트위스트>는 고단한 삶을 살던 당대 대중에게 밝고 흥겨운 분위기를 선사한 시대의 명곡이다.
이 곡은 ‘울릉도’와 발음이 유사한 ‘울렁울렁’이란 표현도 신선했지만, 당대 유행했던 트위스트 댄스 리듬을 발 빠르게 도입한 제작자 황우루의 기획이 돋보였다. <울릉도 트위스트>는 한서경, 디제이 디오시(DJ DOC) 등 많은 후배가수들이 리메이크했으며, 지금도 세대와 성별을 초월해 노래방에서 국민가요로 사랑받고 있다.

▲ 이시스터즈(국민방송 화면 갈무리).
최고의 저음 소녀가수 문주란

한국 대중가요 사상 최고의 저음 여가수로 평가받는 문주란. “너무나도 그 님을 사랑했기에 그리움이 변해서 사무친 미움”으로 시작하는 <동숙의 노래>는 한국 대중가요에서 전혀 들어보지 못한 매혹적인 저음의 허스키한 음색이었다. 17세 소녀 가수 문주란은 애절한 감정을 호소력 있게 표현한 이 노래로 단숨에 스타로 떠올랐다.
<동숙의 노래>를 부른 문주란의 음색과 가창력은 심금을 울렸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를 비롯해 수많은 명곡을 작곡한 백영호는 “소녀 가수 문주란의 노래를 극장쇼에서 처음 들었을 때 매력적인 저음 음색에 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라고 밝혔었다.
문주란의 서글프고 애절한 저음은 당대 최고의 인기가수 이미자의 맑고 고운 고음과 많이 비교됐다. <동숙의 노래>, <타인들>, <내 몫까지 살아주오>, <돌지 않는 풍차>, <주란꽃>, <파란 이별의 글씨> 등 주로 백영호와 박춘석 곡을 노래했다.
70년대에는 <공항의 이별>, <공항대합실>, <공항에 부는 바람> 등 이른바 공항 시리즈 노래를 히트시키며 이미자, 남진, 나훈아와 함께 70년대 가요계의 톱스타로 전성기를 구가했다. 80년대 이후에도 <백치 아다다>(나애심의 원곡 리메이크),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 등을 발표하며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극장쇼 스타…
정원, 쟈니리, 트위스트김, 이금희

60년대는 민간방송의 개국 러쉬로 방송의 비중이 중요해지기 시작했지만 극장쇼는 여전히 방송에 버금가는 비중 있는 무대였다. 패티김, 이미자, 한명숙, 현미, 최희준 등은 말이 필요 없는 60년대 스타들이지만 극장쇼의 진정한 스타는 정원, 쟈니리, 트위스트김의 소위 ‘양아치 삼총사’와 이금희였다.
이들은 극장쇼에서 <비밥파룰라(Be-Bop-A Lula)>, <언체인 마이 하아트(Unchain My Heart)> 등의 흥겨운 팝송으로 젊은이들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정원은 가을시즌송의 명곡 <허무한 마음>과 엘비스 프레슬리의 <하운독(Hound Dog)>을 번안한 <사냥개>로, 쟈니리는 <뜨거운 안녕>을, 이금희는 팝송 <씽씽씽(Sing Sing Sing)>과 <키다리 미스터김>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
  • 양전섭 향우, 육군 준장 승진
  • 인계퇴비공장…군청은 감사, 주민은 반대
  • 높이 160cm 가량, 길이는 딱 30걸음
  • 재경순창읍향우회 제25차 정기총회
  • 강천산배 배드민턴대회, 순창ㆍ적성 ‘우승’
  • 순창 그라운드골프, 새만금배 단체전 우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