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분다(10)/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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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분다(10)/ 단상
  • 선산곡
  • 승인 2019.08.21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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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 멀티 전원을 누르는 소리가 난다. 이른 새벽이면 아내가 오디오 전원을 눌러 준다. 잠시 후면 음악이 흐르겠지. 때로는 고정해둔 FM방송이, 때로는 간밤에 장착해둔 시디피에서 음악이 흐르기 시작한다. 이른 새벽 소리가 크지 않을까 잠시 아내는 오디오 기기에 그 음악이 시작되기를 기다린다. 대낮이었다면 들리지도 않았을 음량이 이른 새벽이면 이웃에 방해가 될지 모른다는 경계심으로 다가오는 모양이다. 음량을 조절해 주고 나가는 아내도 내가 이미 잠에서 깨어있다는 것을 안다. 그렇게 시작되는 하루, 푹 잔 느낌은 없는데 중간에 깨지는 않았다. 어제는 그렇게 끝난 모양이다.

 

빗소리가 들린다. 간밤 열대야에 뒤척였던 일이 거짓말 같다. 이대로 더위가 물러간다면 좋겠지만 절기는 아직 처서(處暑)에 미치지 못했다. 작년처럼 긴 폭염이 아니라니 그나마 다행일 뿐이다.
“무서워.”
여름이 되기 전 자주 했던 말이었다. 지친 현실에 대한 고통 지우기가 우선이었던 우리들에게 무더위까지 가중되는 것은 더 없이 두려운 일이었다. 그딴 더위가 무슨 대수라고, 생각은 앞서 갔지만 현실은 비교에만 그치는 게 아니었다. 몸과 마음에 덧 댄 고통을 견디기 쉽지 않았다. 그 한복판에서 시간의 흐름이 더디다고 늘 푸념을 했다. 지긋지긋하다는 말도 두고 썼다. 더불어 단절은 스스로 내건 방패였다. 전화가 두려웠고 우편물이 무서웠다. 물놀이는커녕 탁족(濯足)도 해보지 않았고 남들이 다 하는 바닷가 근처도 가보지 못했다. 야영장비는 그대로 창고에 쌓여있고 시골집 잔디는 우북장성이 되었다. 그 여름이 간다. 빗소리가 들린다. 비야 금방 그치겠지만 여름의 고통을 씻는 소리로 들린다.

포스터 한 장 눈길을 끈다. 몸의 특정이 커피와의 상극임을 알리는 약국 벽에 붙은 포스터. 꽤 오래 전, 커피는 독이라고 의사는 내게 말했다. 그 말에 따라 작별커피라는 글을 쓰고 커피를 마시지 않기로 했다. 초조함, 무력감이 찾아왔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러나 오랫동안 길들여진 평생의 버릇이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그 인내심은 겨우 한 달이었다. 차(茶)의 종류는 수 없이 많지만 그 어떤 종류도 커피를 대체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났다. 에라 모르겠다하고 다시 커피를 마셨다. 커피는 차가 아니다. 다도의 예가 커피에는 해당되지 않아 다행인지도 몰랐다.
커피는 독인가. 커피의 성분이 뼈의 성분을 얼마만큼 유실시키기에 저 포스터는 연고 하나 사러 온 고객의 정신을 심란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독인지 모르는 카페인이 내 정신의 활력소가 되었음은 충분했다. 커피는 독이 아닌 산소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내안에 도사린 정신의 독이 천천히 소멸되어가도록 커피가 나를 위로해온 것도 사실 아닌가. 나는 그 동안 독을 위해 독을 삼켜왔는지도 모른다. 저 포스터의 경고를, 그와 똑같은 의사의 권고를 받아들여야할까를 천천히 생각하기로 한다. 이 몸의 뼉따귀와 이 몸의 뇌세포에 무엇이 득이 될 것인지는 천천히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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