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서울로 가는 전봉준'과 '녹두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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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서울로 가는 전봉준'과 '녹두꽃'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19.08.21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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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만경들 건너가네 / 해진 짚신에 상투 하나 떠가네 / 가는 길 그리운 이 아무도 없네 / 녹두꽃 자지러지게 피면 돌아올거나 / 울며 울지 않으며 가는 / 우리 봉준이 / 풀잎들이 북향하여 일제히 성긴 머리를 푸네 // 그 누가 알기나 하리 / 처음에는 우리 모두 이름 없는 들꽃이었더니 / 들꽃 중에서도 저 하늘 보기 두려워 / 그늘 깊은 땅 속으로 젖은 발 내리고 싶어하던 / 잔뿌리였더니 // 그대 떠나기 전에 우리는 / 목 쉰 그대의 칼집도 찾아주지 못하고 / 조선 호랑이처럼 모여 울어주지도 못하였네 / 그보다도 더운 국밥 한 그릇 말아주지 못하였네 / (중략) / 봉준이 이 사람아 / 그대 갈 때 누군가 찍은 한 장 사진 속에서 / 기억하라고 타는 눈빛으로 건네던 말 / 오늘 나는 알겠네 // 들꽃들아 / 그날이 오면 닭 울 때 / 흰 무명 띠 머리에 두르고 동진강 어귀에 모여 / 척왜척화 척왜척화 물결소리에 / 귀를 기울이라
- <서울로 가는 전봉준> 안도현

전봉준은 1894년 11월 우금치싸움과 태인 싸움에서 패배한 뒤 수행 몇몇과 함께 11월 30일에 내장산 백양사로 이동했다. 백양사에 은신할 때 김개남이 태인군 산내면 종성리(현 정읍시 산내면)에 은신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궐기하기 위해 수행원들과 함께 태인으로 가던 중 12월 1일 저녁 쌍치면 피노리에 이르러 부하 김경천을 찾았다. 김경천은 전봉준을 맞아놓고 전주감영의 퇴교로 이웃에 살고 있는 한신현에게 밀고했다. 한신현은 김영철, 정창욱 등 민정을 동원해 전봉준을 포위했다. 전봉준은 위기에 빠지자 울타리를 뛰어 넘어 도피하려다 다리를 얻어맞아 붙잡히고 말았으니 1894년 12월 2일이었다.
전봉준이 체포되는 과정에서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어 도저히 걸을 수 없어 가마를 타고 서울로 압송되어 갈 때, ‘누군가 찍은 한 장 사진’이 우리에게 알려진 전봉준의 모습이다. 일본영사관 구내에서 한 사진사에 의해 촬영되었다는 이 사진은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이라 믿기 어려울 만큼 의연하고 그 눈빛은 너무나 강렬하다.
안도현 시인은 대학 졸업 기념으로 응모한 19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 당선되었다. 갑오농민전쟁을 이끈 영웅 ‘전봉준이 서울로 끌려간다’가 아니라 ‘서울로 가는 전봉준’이라는 제목부터가 참신하다. ‘백성들은 끌려가는 그를 보며 눈물을 흘린다’ 대신 ‘풀잎들이 북향하여 일제히 성긴 머리를 푸네’라는 비유적 표현, 폭도로 몰릴까 두려워 나서지 못하는 백성들을 ‘모여 울어주지도 못하고 더운 국밥 한 그릇 말아주지 못하였네’로 표현한 이 시는 신춘문예 당선작답게 서사와 서경, 서정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작품이다.
서울방송(SBS)에서 올해 4월 26일부터 7월 13일까지 방영했던 금토드라마 <녹두꽃>이 문제가 되고 있다. 물론 이 드라마는 갑오농민전쟁(동학혁명)하면 떠오르는 녹두장군 전봉준의 일대기는 아니다. 혁명군과 토벌대로 갈라져 서로의 가슴에 총구를 겨눠야 하는 이복형제 중심으로, 혁명과 반혁명이 교차하는 와중에도 삶의 의지를 잃지 않았던 갑오년 이름 없는 백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다.
문제가 된 부분은 47회분에서 김경천 역 대사에 순창이 고향이라고 말하고, 중간 중간에 전북 순창이라는 자막을 삽입한 것이다.
김경천이 정읍 출신인 역사적 사실을 외면하고 마치 순창사람이 밀고해 위대한 혁명지도자 전봉준을 체포되게 해 순창군의 이미지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다는 사실이다.
전봉준을 밀고한 김경천에 대해《정읍군지》(1936년판, 1974년 증보판, 1985년판),《전봉준 평전》(신복룡) 등 여러 자료에서 김경천이 정읍시 덕천면(달천면) 달천리 출신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전봉준을 관아에 밀고했던 한신현(전주 출신)은 금천군수에 제수되었으며, 상금 1000냥을 받았다. 그러나 김경천은 한신현에게 밀고해 전봉준을 체포하게 했지만 동학도였음이 드러나 보상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쫓기는 처지가 되었다. 이후 정읍시 이평면 어느 마을 노상에서 굶어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상금에 눈이 어두워 지도자를 고발하고 비참하게 죽은 배신자 김경천의 출생지를 순창이라고 표현하고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는 SBS의 행태에 군수와 군민들이 분개하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예술작품에서 작가는 상상력을 발휘해 실제 사실보다 더 감동적으로 진실을 전달해야 한다.
그러나 상상력과 왜곡은 전혀 다른 문제다. 드라마 <녹두꽃>과 안도현 시인의 <서울로 가는 전봉준>에서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SBS의 성의 있는 사과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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