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현대사(7) 1967년의 대중가요와 한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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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요현대사(7) 1967년의 대중가요와 한국사회
  • 림재호 편집위원
  • 승인 2019.08.28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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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와 함께 살펴본 20세기 후반의 한국사회(7)

신한당과 민중당으로 분열되어 있던 야당이 신민당으로 통합됐지만 5월3일 치러진 제6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는 신민당 윤보선을 116만 표 차이로 이겼다. 박정희는 서울ㆍ경기ㆍ충남ㆍ호남에서 졌지만 영남에서 윤보선보다 137만 표를 더 얻는 몰표 덕분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한국사회의 고질적 병폐 중 하나인 망국적인 지역감정의 시작이었다. 중앙정보부는 6.8 부정총선 규탄시위를 무력화하기 위해 동백림(동베를린)사건을 발표했다. 이 해에는 어린이 잡지 어깨동무가 발간되고, 신동우 화백의 만화 <풍운아 홍길동>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홍길동>이 대한극장에서 개봉되기도 했다.

1967년 대중가요의 흐름

67년에도 이미자와 최희준의 인기는 여전했지만, 남진과 배호가 문화방송(MBC) 10대 가수에 선정되며 폭발적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고, 정훈희가 <안개>로 데뷔했다.
67년에 크게 유행한 노래로는 남자가수의 경우 남진이 <가슴 아프게>, <사랑하고 있어요>, <우수>, <마음이 고와야지>를 연달아 발표했고, 배호도 <돌아가는 삼각지>와 <안개 낀 장충단공원>으로 인기몰이를 시작했다.
최희준의 <팔도강산>, <옛이야기>, <육군 김일병>(봉봉사중창단) <못잊어서 또왔네>(이상열), <바보처럼 울었다>(진송남), <사랑의 종말>(차중락)도 사랑을 받았다.
여자가수의 노래로는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 <유달산아 말해다오>, <엘레지의 여왕>, 패티김의 절창이 빛나는 <빛과 그림자>와 <무정한 밤배>가 있었고 김상희는 가을을 대표하는 노래 <코스모스 피어있는 길>, <대머리 총각>, <뜨거워서 싫어요>를 연달아 히트시키며  동양방송(TBC) 방송가요대상 여자가수부문 대상을 차지했다. 현미의 <몽땅 내 사랑>, <두 사람>, <애인>, 그리고 <웃는 얼굴 다정해도>(윤복희), <갑돌이와 갑순이>(김세레나), <돌지 않는 풍차>(문주란), <호반에서 만난 사람>(최양숙)도 크게 유행한 노래들이다. 그리고 소녀가수 정훈희가 <안개>로 데뷔해 돌풍을 일으켰다.

 

▲<가슴 아프게> 앨범.

<가슴 아프게>와 남진

 

정두수 작사 박춘석 작곡인 <가슴 아프게>의 원래 제목은 <낙도 가는 연락선>이었다. 그때만 해도 노래 제목의 대부분이 명사로 끝나는 게 전통이었으나 <가슴 아프게>란 부사로 끝나게 노래제목을 단 것이다. 노래는 나오자마자 인기였고, 19세의 한양대 연극영화과 1학년생인 남진은 한 순간에 유명세를 탔다. 이 노래가 대히트 해 영화 <가슴 아프게>에 같은 학과 남정임과 함께 주연을 맡아 가수 겸 영화배우로도 날개를 달았다.
이후 그는 자신이 출연한 거의 모든 영화에서 주제가까지 도맡아 불렀다. 이형표 감독이 연출한 통속 멜로영화 <형수>에서 남진은 미망인이 된 형수와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는 시동생 역으로 출연했다.
이 영화에서도 남진은 <우수(憂愁)>, <마음이 고와야지> 2곡의 주제가를 불렀다. “맺지 못할 인연일랑 생각을 말자”로 시작하는 <우수>는 애절하게, <마음이 고와야지>는 신나고 경쾌한 리듬으로 소화했다.
남진은 이렇게 회상했다. “엘비스 프레슬리의 창법, 무대 액션과 비슷하게 춤을 추며 이 노래를 불렀다. 나의 춤과 노래가 전국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때 10대 소녀들이 ‘오빠’라며 나를 보고 환호했다. 소녀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오빠 부대’의 첫 시작이었던 셈이다.
남진이 여러 영화에서 주연 배우로 영화에 출연하고 주제가까지 불러 히트시킨 67년은 향후 한국 대중음악의 권좌가 남진에게 넘어갈 것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신호탄 같은 해였다.

 

▲<돌아가는 삼각지> 앨범.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

 

신예 작곡가 배상태가 작곡한 <돌아가는 삼각지>는 노래를 부를 가수를 찾지 못해 애를 먹었다. 남일해와 금호동, 남진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배상태가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악보를 들고 청량리 인근에 있던 배호의 허름한  전셋집을 찾은 때는 2월경이었다.
1963년에 <굿바이>로 데뷔한 배호는 1966년부터 당시로서는 불치의 병마였던 급성 신장염을 앓고 있었다. 국내 병원에선 신장 투석도 불가능했던 시기였다.
배상태와 상의해 악보에 없던 쉼표를 여러 개 더 찍고, 가래침을 뱉어내며, 앉았다 일어서기를 번복하며 토막토막 이어간 런닝타임 3분 27초의 명곡 <돌아가는 삼각지>는 그렇게 빛을 보았고 배호의 출세작이 되었다.
출반 되자마자 이 노래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창법, 낯선 분위기로 화제가 되었다. 거칠게 밖으로 토해내는 듯한, 마치 백 미터를 질주해 온 육상선수가 가쁜 호흡으로 노래를 뱉어내는 듯한 긴장감과 비장함.
<돌아가는 삼각지>는 미성 일변도의 대한민국 가요사에 절규를 불어 넣은 최초의 노래다. 이전의 트로트 가수들과 달리 그의 가창은 스탠더드 팝의 남자가수들이 보여준 중후한 저음을 그 특유의 바이브레이션으로 강조하고 절정부에서는 애절한 고음을 구사했다.
한국 트로트 역사에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깊고 풍부한 노래의 매력을 보여주기 시작한 배호는 이때부터 5년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시간 동안 불멸의 연대기를 기술하기 시작한다.

 

▲윤복희(<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 앨범.

미니스커트 열풍의 윤복희

 

윤복희는 5살 때인 1951년, 국내 원맨쇼의 선구자였던 아버지 윤부길을 따라 뮤지컬 무대 생활을 시작했다. 14살 때부터 소녀듀엣 투스쿼럴스를 결성해 활약한 미8군 무대의 인기 스타였고, 이후 4인조 여성 보컬그룹 코리언키튼즈 리드보컬로 66년까지 동남아를 거쳐 미국, 유럽 순회공연을 했다.
66년 귀국한 윤복희는 총 12곡을 수록한 데뷔음반을 발표했다. 이 앨범은 재킷을 장식한 윤복희의 미니스커트 사진으로 사회적 파장을 던진 음반이다.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른 윤복희를 위한 깜짝 미니스커트 패션쇼가 열렸을 만큼 미니스커트는 60년대의 뜨거운 문화아이콘이 되었다. 20대 초반 윤복희의 풋풋한 음색과 대단한 가창력을 느낄 수 있는 이 음반의 타이틀곡은 블루스 팝 계열의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였다. 그러나 히트한 노래는 타이틀곡이 아니라 <웃는 얼굴 다정해도>였다.

안개를 소재로 한
대중가요를 부른 가수들

1967년은 정국이 혼탁했던 해다. 재집권하자마자 삼선개헌을 염두에 둔 박정희의 탐욕 때문에 6.3 총선은 부정선거로 얼룩졌고, 동베를린(동백림) 공안사건, 그리고 한일호 침몰사건(승객 100여명 사망)과 치솟는 물가도 사회를 어수선한 분위기로 몰고 갔다. 이에 그해 데뷔한 정훈희의 <안개>와 배호의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은 ‘안개 가요 열풍’을 몰고 왔다.
대중가요에는 안개를 소재로 히트한 노래가 많다. <밤안개>(현미, 번안곡)가 있었고, 68년 이후에 발표된 노래 중에서도 <안개 속으로 가버린 사람>(배호), <안개 낀 고속도로>(강정화), <안개 속의 두 그림자>(함중아), <안개비>(세모와 네모), <당신은 안개였나요>(이미배), <물안개>(석미경)가 있다.
안개를 노래한 가수들은 공통적으로 당대에 빼어난 가창력을 인정받은 경우가 많았다. 이는 듣는 이의 가슴을 적시는 분위기 있고 풍성한 음색 없이는 ‘안개’를 소재로 한 노래의 감정을 전달하는 게 힘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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