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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의 대중가요와 한국사회
대중가요와 함께 살펴본 20세기 후반의 한국사회(8)
2019년 09월 11일 (수) 림재호 편집위원 ljh0525@openchang.com

1968년은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과 격렬한 시위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해였다. ‘구정 대공세(뗏 대공세)’ 이후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전운동의 확산, 프라하의 봄, 프로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의 징병 거부, 마틴 루터 킹의 암살, 프랑스 68운동 등. 특히 프랑스 68운동은 프랑스 전역에서 기존의 사회질서에 강력하게 항거하는 운동이었다. 이는 남녀평등과 여성해방, 학교와 직장에서의 평등 문제로 확산됐고, 미국의 반전운동 등 국제적으로 번져나갔다.
국내에서는 북한 무장공비(김신조 등)의 청와대 기습 미수사건인 1.21 사태, 푸에블로호 납치사건, 이승복 일가족 4명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던 울진ㆍ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등의 대북문제가 연달아 터져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한 해였다. 그 결과 향토예비군이 창설되고, 주민등록증이 처음 발급되었다. 12월 5일에는 일본 메이지시대의 교육칙어를 연상케 했던 국민교육헌장이 선포되었다. 새로운 세상을 위해 몸부림치던 해외의 움직임과는 달리 극심했던 가뭄 만큼이나 국내 분위기는 암울하기만 하던 해였다.

히트곡 제조기 이미자는 <그리움은 가슴마다>, <여자의 일생>, <황혼의 부르스>, <사랑했는데>, <서울이여 안녕>, <첫눈 내린 거리>를 연달아 히트시키며 가요계의 여왕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패티김은 자신의 수많은 노래 중 가장 애착이 간다는 명곡 <9월의 노래>를 발표했고, 김상희는 <단벌신사>, <빗속의 연가>, <파란 손수건>을 발표했다.
67년에 <안개>로 데뷔했던 정훈희가 <강 건너 등불>, <날개>, <숙명>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인기가수의 대열에 합류했다. <파란 이별의 글씨>(문주란), <무작정 좋았어요>(현미), <가지를 마오>(강소희), <짚세기 신고 왔네>(김세레나), <여인의 눈물>(리타김), <당신의 뜻이라면>(양미란), <박달재 사연>(박재란) 등이 유행했다.
남자가수의 경우 남진은 <별아 내 가슴에>, <지금 그 사람은>, <대학1년생>, <너와 나>, <불타는 연가>를 발표하며 무대와 스크린에서 맹활약하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7월에 청룡부대에 입대(다음 해에는 월남에 파병됨)하며 팬들의 아쉬움을 샀다.
배호는 <누가 울어>, <안개 속으로 가 버린 사랑>, <안녕>, <파도>를 연달아 히트시켰다. 비교적 건강한 몸 상태를 유지하면서 문화방송(MBC) 10대 가수 청백전에 선정되고, 동양방송(TBC) 방송가요대상 남자가수 대상을 차지하며 생애 최고의 해를 보낸다.
차중락은 <철없는 아내>를 발표했으나 11월, 27세의 젊은 나이에 뇌막염으로 ‘낙엽 따라’ 세상을 떠나갔다.
조영남이 번안곡 <딜라일라>로 혜성 같이 나타나 다음해 MBC 10대가수를 예약했으며, 김소월의 시를 노랫말로 삼은 <부모>(유주용), <과거는 흘러갔다>(여운), <가을의 연인>(태원), <두 글자>((박건), <누가 먼저 말했나>(이상열) 같은 주옥같은 노래들이 가요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단벌신사> 김상희 앨범.
<단벌신사> 금지곡 사연

김상희의 <단벌신사>는 31살에도 장가를 못 간 노총각 신세지만 마음만은 진실한 화자의 애인을 노래한 재미있는 가사와 경쾌한 분위기로 크게 히트했다.
그런데 이 노래는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로 방송금지 당했다. 남한에서 유행하는 노래를 모니터하던 북한에서, 당시 크게 히트했던 <단벌신사>의 가사를 인용해 ‘남쪽은 가난해서 신사들도 옷 한 벌밖에 없을 만큼 궁핍하다’며 남한을 비방하는 노래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남북한의 치열한 체제경쟁으로 인한 당시의 웃지 못 할 시대상황이었다.

   
▲양미란(<당신의 뜻이라면> 앨범.
<당신의 뜻이라면>

양미란의 <당신의 뜻이라면>은 황우루가 작사하고 정민섭이 작곡한 한국의 초기 리듬 앤 블루스 중 하나다. 가사는 ‘사랑하는 남자의 뜻이라면 무조건적으로 따르겠다’는 여자의 다짐을 표현한 곡으로 크게 히트했다. 이 노래 덕에 가수 양미란과 작곡가 정민섭은 2년 후 결혼했다. 빼어난 미모에 독특한 음색, 허스키한 창법을 갖춘 양미란은 남편인 정민섭과 콤비를 이루며 이후에도 <달콤하고 상냥하게>, <외기러기>, <흑점>, <휘파람>, <범띠 가시내>를 연달아 히트시키며 7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양미란이 1980년 골수암으로 사망하고, 몇 년 후 정민섭도 폐암에 걸려 아내를 따라 떠났다.

소월 시와 대중가요
대중가요에는 시와 음악의 결합으로 대중의 영혼을 어루만지는 노래가 많다. 그중에서도 대중가요 가사로 가장 많은 시가 사용된 시인은 김소월이다. 소월은 3음보의 민요조 가락으로 전통적인 정서인 한(恨)을 절절하게 노래한 최초의 국민시인이었다. 소월의 시는 가곡은 물론 대중가요로도 무수하게 만들어졌다.
유주용의 <부모>뿐 아니라 동요 <엄마야 누나야>, 정미조의 <개여울>, 라스트 포인트의 <예전에 미처 몰랐어요>, 활주로의 <세상모르고 살았노라>, 장은숙의 <못잊어>, 희자매의 <실버들>, 이은하의 <초혼>, 마야의 <진달래꽃> 등 수많은 노래가 소월 시를 가사로 사용해 널리 알려진 노래들이다.
유주용이 부른 <부모>는 부모가 되어 봐야 부모의 애틋한 마음을 알게 된다는 소월의 애틋한 노랫말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지금도 어버이날이 되면 어김없이 불리며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명곡의 지위를 획득했다. 양희은, 김세환, 이미자 등 많은 가수가 리메이크했다.

   
▲<미워도 다시 한 번> 영화포스터.
<미워도 다시 한 번>

1968년 7월 정소영 감독, 문희ㆍ신영균 주연 <미워도 다시 한 번>이 국도극장에서 상영됐다. 이 영화의 애초 타이틀은 <절창>(絶唱)이었으나 너무 피상적이라 하여 당시로서는 금기시하는 설명조인 <미워도 다시 한 번>으로 바꿨으며 결과적으로 제목 덕도 봤다.
이 영화는 미혼녀와 유부남의 로맨틱한 불륜, 사생아의 운명을 둘러싼 신파적 갈등 등 익숙하고 진부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개봉 극장에서만 37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1960년대 최고의 흥행 멜로드라마로 등극했다. 무려 4편까지 시리즈가 이어지고 무수한 아류작들을 양산했다. 4편까지의 총 관객은 100만이 넘는다. 당시는 단관 개관이었기에 현재로 따지면 매 편이 1000만, 누적 1억 명에 가까운 흥행 실적이 될 것이다. 이 영화의 연속적인 흥행 성공은 한국영화 제작의 동력이 되어 1969년 229편, 1970년 231편, 1971년 202편 등 충무로의 전성시대를 구가하는 견인차가 됐다.
이 영화를 계기로 여배우 문희는 기존의 트로이카 멤버였던 윤정희와 남정임을 압도하며 1세대 트로이카 중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문희의 눈물 연기가 이 영화의 꽃이었지만, 아역 배우인 김정훈의 눈물을 자아내는 연기도 대단했다.
당시의 영화 광고 카피는 “빼앗긴 여심도 없고, 차지한 여심도 없는, 아! 미워도 미워도 다시 한 번!”으로 다분히 신파조였으나 관객들 동원에는 대단히 효과적이었다.
1969년 개봉된 속편(제2편)에서는 남진이 부른 주제가 <미워도 다시 한 번>이 라디오를 타고 퍼져나가며 크게 히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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